• "남 조봉암, 북 박헌영 복권해야 통일"
        2006년 07월 27일 12: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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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박사는 소수가 잘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 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랄 뿐이다. – 1959년 7월 31일, 형장에서, 조봉암

    젊은 시절, 진보당 서울시당 상무위원으로 일했던 정태영 선생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기운에 힘입어 ‘조봉암 책’을 내기로 결심하고 1991년 한길사에서 『조봉암과 진보당』을 내놓는다.

    15년이나 지나, 책을 재발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판이 되기도 했지만, 젊은 사람들이 읽기 쉽도록 새로 고쳤어요. 노인네들이 읽어봐야 소용 없는 일이고, 세상 바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지. 현실적으로 운동에 도움이 되도록 용어와 체제를 바꿨어요.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읽길 바래서 책 값을 많이 낮췄어요. 민주노동당은 왜 진보당이 망했는지를 잘 알아야 되요.”

       
     

    정태영 선생은 조봉암이 사형당하고 주요 간부들이 투옥된 것보다는 진보당 자체의 내부 문제가 진보당을 사멸케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운동은 정권의 탄압이나 냉전과 같이 외적 요인들에 의해 좌절되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사실의 모든 것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더 중요한 측면은 진보운동이 현실에 기초를 튼튼히 둔 이념적 좌표를 세우는 데 실패하고, 조직 내 건전한 작풍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당내 정파들의 조급한 헤게모니 투쟁 때문에 분열하고, 결과적으로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었다는 사실이다. 진보당이 그러했고 4.19혁명 직후 혁신 세력이 그러했다.

    “진보당은 남북로당을 제외한 모든 중간 세력이 통합한 당이예요. 신입 당원이 너무 많아서 교육도 제대로 안 됐고, 새 당원이 들어오면 누군가 데리고 나가 술 받아주며 속닥속닥하는 거야. 당이 크다 보니 건달도 들어오고, 통일운동 한 신00 같은 이가 바로 건달이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민주노동당은 50년 전 진보당의 판박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태영 선생은 진보당이 민주노동당에 비해서는 사상과 노선이 분명했다고 평가한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현대정당이었어요. 당시 정당들은 하나같이 정치 거물 따라서 왔다갔다 했는데, 진보당은 나름대로 정책도 만들고 당조직을 만들면서 창당했거든요.

    전쟁 직후라 ‘반동적 용어’로 자기 색깔을 숨길 수밖에 없었지만, 진보당은 분명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었어요. 조봉암의 사상은, 스탈린 사망 후 후르시쵸프가 선언했던 거나 페레스트로이카에도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을 회복’한 사회주의여야 한다는 거지.

       
     

    조봉암과 진보당이 내세운 ‘평화통일’은 이승만이나 김일성 노선과는 완전히 다른 획기적인 것이죠. 조봉암은 코민테른 조선 담당 요원으로 일하면서 국제정세를 알게 됐고, 무력 통일 같은 건 안 된다고 확신한 거죠. 중국에서 일하면서 국공 대립을 목격하고, 6.25의 참상을 직접 목도하기도 했고. ‘평화통일론’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가장 올바른 노선이었어요.”

    진보당이 조봉암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었다는 역사학계의 평가나 1950년대 한국에서 서유럽식 사민주의가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은 책을 찬찬히 뜯어본 뒤로 미루어 두어야겠다.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상임공동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정태영 선생은 기회 있을 때마다 민주노동당 간부들에게 조언해왔다. 정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애매한 소리 하지 말고, 정책을 탁 들어 내놓고 해야 되요. 북로당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어요.

    당명도 사회민주당으로 썼으면 좋겠어요. 사민주의는 가장 선진적이고, 인류 상식에도 맞는 거예요. 현실 체제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평화를 애호하고,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게 사민주의잖아요.”

    예전에는 ‘좌익’이니 ‘간첩’이니 딱지가 붙어 있던 이들도 복권이 되었고, 더러는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이 추서되기도 하지만, 유독 조봉암은 아직도 ‘사형된 간첩’이다. 조봉암에게 죄가 있다면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 개혁을 성공시킨 죄가 있겠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 너무 많은 표를 얻은 죄도 크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민주화가 된 지도 20년이 지났다. 여운형을 포함해 진보 계열의 정치 지도자 대부분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식 문건에서 여전히 조봉암은 간첩죄를 저질러 사형된 범죄자로 남아 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필자는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던 조봉암의 명예가 회복되지 않는 한, 그리고 그와 진보당이 추구했던 정치적 실험이 온전히 평가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불구 상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조봉암이든 박헌영이든 간첩이 아니잖아요. 이승만 김일성 권력에 희생된 거지. 이남에서는 조봉암을, 이북에서는 박헌영을 명예회복시켜야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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