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자유특구와 의료민영화
    “재벌만 배불리는 원격의료 중단하라”
    강원도의사회 등 의사단체도 반발, 집단행동 나설 듯
        2019년 07월 30일 12: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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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지역특구법에 따라 강원도에 원격의료를 허용하면서 의료민영화·영리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시민사회계 등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원격의료로 의료비 폭등만 불러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의사단체들 사이에선 중소벤처기업부와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 요구까지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4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강원·대구·부산 등 7곳을 규제자유특구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중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은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강원도다. 강원도에서 시행될 원격의료는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사는 만성질환 환자의 건강정보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해 진단, 처방 등을 하는 것으로 그동안 공공기관에 한정해 시범사업 형태로만 운영해왔다.

    중기부와 강원도가 낸 자료를 종합하면, 정부는 원격의료를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를 위한 의료서비스 차원이 아닌 산업적 측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원격의료 문제의 담당부처가 중기부인 것 역시 원격의료의 방향성을 드러낸다.

    중기부는 “의료사각지대 해소, 국민 건강증진, 의료기술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사업기간 중 매출 390억원, 고용 230명 창출이 기대된다”며 “의료기 분야에 원격의료, 의료정보 등 규제특례를 부여하여 디지털 헬스케어 신산업활성화로 지역 및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원도도 같은 날 배포한 자료에서 “실증특례를 통해 원격의료가 실생활에서 가능하게 되면 지금까지 각종 규제로 인해 묶여 있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이 활발해 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50여개사의 기업유치, 3천여 명의 고용창출 등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되며 3천억 원의 생산 유발효과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강원도와 특정 질환에 한정된 원격의료를 점차 확산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특구’로 지정된 강원도에서는 1차 의료기관의 의사와 환자 간 원격모니터링이 가능해졌고, 간호사의 방문을 통해 의사와 환자 간 진단과 처방을 지원하는 원격협진이 실시된다. 고혈압과 당뇨병, 만성질환에 한해 제한된 범위에서 시작하지만 드디어 원격진료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며 “좋은 성과를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돼 1차 병원의 이용과 어르신 진료비 절감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시민사회계는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가 의료민영화·영리화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들을 위한 공공병원과 방문의료 확대라는 공공성 유지 정책이 있음에도, 민간기업이 원격의료를 계기로 의료를 산업화하는 길을 터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보건의료노조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29일 오전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격의료는 여러 차례 시범사업에서 한 번도 효과를 제대로 증명한 바 없을 만큼 현재까지 대면진료에 비해 환자에게 도움 된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은 기술”이라며 “오로지 삼성 등 대기업을 포함한 의료기기 업체, SK, LG 등 통신업체, 대형병원 돈벌이를 위한 의료민영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들은 보건복지부의 2014년 자료를 인용해 “동네의원 130~330만원, 환자는 150~350만원의 비용이 소요돼 만성질환자 585만명에 도입할 경우 원격의료에 필요한 장비에만 최대 20조원 이상 지출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의료비로 지출할 이 비용은 고스란히 원격의료 진단지원시스템, 게이트웨이, 혈압·혈당측정기 등을 판매하는 삼성SDS, 메드트로닉, 로슈 같은 국내외 대기업과 서울대병원/SK텔레콤이 합작설립한 헬스커넥트 등 기업 돈벌이가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가 안전과 효과, 비용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원격의료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이것이 보건의료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라며 중소벤처기업부가 원격의료 담당부서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짚었다.

    강원도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근거가 된 규제자유특구는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던 규제프리존법의 다른 이름이다.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을 낸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 등에서 이 법을 ‘경제활성화법’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을 ‘재벌청부 입법’, ‘의료민영화법’이라며 반대했었다. 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당시 이 법을 ‘적폐법안’이라고 날을 세워 비판했었다.

    실제로 원격의료는 시범사업을 통해서도 제대로 된 검증 결과가 나온 적이 없다. 산자부가 2010년~2013년 355억 원을 들여 시범사업을 했으나 1차 시범사업은 객관적 데이터도 없이 만족도만 조사한 결과만 내놨다. 2차 시범사업 역시 환자-대조군 수가 적고 조사기간이 겨우 3개월로 짧아 졸속이라는 평가가 나왔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 또한 지난해 9월 원격의료 사업에 대해 향후 제대로 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본 등은 “보건복지부 담당자들이 언론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번에 실시하는 원격의료는 의원 3곳에서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이 정부가 경제성장과 규제완화에 눈이 멀어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더 심각한 절차적·민주주의적 무시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들은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엔 방문진료이나 공공의료기관 확대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강원도는 18개 시·군 중 15개 지자체 주민 30% 이상이 응급실로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없는 응급취약지이고, 7개가 분만취약지”라며 “정부가 기업 돈벌이가 아니라 진정 국민의 의료 접근권 향상을 목표로 한다면 의료를 순전히 민간에 내맡겨두는 국민생명 방치와 영리화 정책을 중단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도의사회와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회 등 의사단체 반발도 확산되고 있다. 전국의 의사단체들이 나선 데엔 강원도를 계기로 원격의료가 전국으로 퍼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강원도의사회는 26일 성명서를 내고 “노무현 정부 때 첫 도입 논의한 원격의료는 그 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논의를 계속했고 노무현 정부 당시 원격의료 도입을 주장했던 민주당은 야당이 된 후 이를 ‘의료민영화’라며 강력히 반대한 바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당시 그것은 누가 했더라도 잘못된 정책이었으며 원격의료에 관한 정책을 전면 폐기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사각지대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개선하려면 의료전달 체계 정립, 수도권으로 쏠린 의료자원의 합리적 배분, 환자이송시스템의 질적 개선 등에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숙의해야하는 정책결정과정을 무시하고 국민 건강과 우리의 의료현실은 외면한 채 의료를 산업육성의 도구로 삼아 원격의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으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국민 건강과 원격의료 본질에 대한 고심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며 “우리는 진료 원칙을 외면하는 원격의료 정책을 강력히 반대하며 대한의사협회 등과 연계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의회는 25일 입장문에서 “정부 여당은 당시 원격의료를 산업 육성의 도구로 삼지 않는다는 데 당정청이 입장 정리를 끝냈다”며 “1년 전 국민을 위해 반대한다던 (원격의료) 정책을, 이제는 국민을 위한다는 핑계로, 국민의 건강권을 볼모로 삼아 산업육성을 위해 시작했다”고 질타했다.

    의협은 “정부가 시작한 원격의료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민건강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13만 모든 회원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국민의 건강을 주판질 한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 무능한 방관자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의 사임은 우리 요구의 시작이며,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이 전쟁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의료는 절대로 경제시장원리에 맡겨져선 안 된다”며 “현 정부의 원격진료 추진 배경은 국민건강권 확보가 아닌, 산업적 측면의 효과를 더 중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환자의 영상이 담긴 모니터 앞에서 올바른 진료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의료사각지대에 처해 있는 국민의 건강권 회복은 의사를 직접 마주 앉아 대면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조언을 묵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원격의료가 국민의 의료접근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대전협은 “의료 사각 지역에서 근근이 유지해 나가고 있는 1차 의료기관들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며 “폐업하는 1차 의료기관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오히려 원격의료로 인해)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모순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방이 의료절벽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선 정부가 지역별로 응급기관을 지정하고, 의료 인력 확보를 지원해야한다. 공공의료의 확충에 재원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 추진이 현실화됐을 경우 집단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시사했다. 대전협은 “기형적인 의료체계에서 전공의들이 ‘행동’하게 됐을 때의 파국을 현 정부가 목도하고자 한다면, 해당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라”고 경고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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