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화평법 등 규제완화 추진
    심상정 “반일 국면 편승 재계에 굴복“
    ”착한 규제와 나쁜 규제 구별해야, ‘안전이 경쟁력’“
        2019년 07월 29일 01: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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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의 일환으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 등 규제완화를 추진하려는 것과 관련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최소한의 착한 규제조차 거부하는 재계의 집요한 요구에 굴복하는 것일 뿐 반도체소재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29일 지적했다.

    심상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정부의 화평법과 화관법 완화 추진에 대해 “정부가 반일 국면에 편승해서 손 안 되고 코 풀려는 재계와 보수 세력들에 끌려 다녀선 곤란하다. 정신을 차리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이같이 말했다.

    심 대표는 정부가 핵심소재의 일본 고의존도의 원인이 과도한 규제에 있다며 노동시간과 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려는 것에 대해 “진단과 처방 모두 잘못됐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건강권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와도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책을 앞세운 위험한 규제완화 추진을 당장 멈추고, 반도체소재 산업의 선진적 생태계 구축을 위한 종합적인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라 핵심소재 국산화를 위해 특별연장근로 허용과 화학물질 관련 규제인 화평법과 화관법을 완화하겠고 밝혔다. 주52시간제와 화학물질 규제 관련 법 모두 노동자와 시민의 최소한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만들어진 법안들이다.

    주52시간제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과로자살의 증가 등 사회적 문제의 해결과 과거 정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을 바로잡기 위해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됐다. 화학물질 관련 법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으로 만들어진 규제다. 기업들이 화학물질 제조, 수입하기 전에 유해성 정보를 정부에 등록 또는 신고하는 등 까다로운 안전관리를 받아야 한다.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재계와 보수진영은 주52시간제를 지키느라 핵심소재에 대한 개발을 할 시간이 없고, 화학물질 관련 법안의 안전관리 규제 때문에 핵심소재의 국산화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와 화학물질 관련 규제 때문에 핵심소재 국산화를 못했다며 노동·안전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재계 등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국내에 확산 중인 반일 감정을 무기 삼아 재계가 숙원과제 해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에서 불산 가스 누출 사고의 모습 자료사진

    심 대표는 “정부가 반도체소재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겠다며 화평법과 화관법 완화, 52시간 근무제 특례 확대, 산업안전법 개정, 법인세·상속세 인하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재계의 요구를 부문별하게 수용할 태세”라며 “이러다간 박근혜 정부 때도 이루지 못한 재계의 숙원과제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더 쉽게 소원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 대표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고순도 불산을 전적으로 일본에 기대게 된 것은 화평법 때문이 아니라, 반도체 기업들이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마땅히 해야 할 기술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2012년 구미 불산 폭발사고 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은 강화된 규제를 피해 국내생산을 포기하고 일본에서 수입하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며 “만약 그때 오히려 기술·설비투자를 강화하고 일본의 안전관리기술, 오염관리 노하우를 배워 국내생산체제를 갖추었더라면 지금쯤은 일본을 넘어설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소재부품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산업이 전후방산업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일본은 반도체 기업들이 소재회사와 협업, 기술 지원, 차세대 반도체 공동연구 등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 왔지만, 한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기업이 기술력과 비용 등을 이유로 소재회사 기술 지원에 소극적이고 차세대 재료에 대해서는 함께 개발하려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반일감정을 앞세워 대대적인 규제완화에 나선 재계의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할 것이 아니라,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공정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심 대표는 “정부가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하더라도 대기업 뒷바라지가 아니라 선진적인 생태계 조성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 구조를 혁신하고, 반도체 장비·소재·부품 기업들이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한 기술 협력이 가능하도록 투자하고 유도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만인율은 일본보다 3배나 높다. 그럼에도 안전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2012년 구미, 2013년 화성 불산 누출사태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교훈을 잊자는 것”이라며 “재계는 화학산업에서 안전관리와 오염관리가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규제 완화에 앞장설 것이 아니라 착한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별하고, 안전이 경쟁력이라는 정책신호를 강력히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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