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부, 전북 상산고
    ‘자사고 지위’ 유지 결정
    전북교육청 “정부, 교육개혁 입에 담지 마라”, 대책위·정의당도 비판
        2019년 07월 26일 05: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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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전주 상산고등학교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의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2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산고의 자사고 지위를 지정 취소해달라는 전북교육청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상산고는 앞으로 5년간 자사고 지위를 보장받게 됐다.

    박 차관은 “전북교육청의 사회통합전형 선발 비율 지표가 재량권 일탈 또는 남용에 해당해 위법하고 평가 적정선도 부족하다고 판단해 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 취소 동의 신청을 부동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사고 지정취소는 교육청이 결정하고 최종적으로 교육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교육부는 전날인 25일 특목고 등 지정위원회에서 시도교육청별로 진행된 운영성과평가회의 절차, 평가지표 내용의 위법성, 평가의 적정성 등을 심의한 결과 이같이 결정했다.

    교육부가 상산고 자사고 취소를 부동의한 근거는 전북교육청이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비율(10%)을 정량지표로 반영한 것과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이 명확히 안내되지 않은 점이다.

    교육부는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부칙에 따르면, 상산고와 같은 구 자사고의 경우 사회통합 대상자 선발비율을 지키는 것이 의무가 아님에도, 전북교육청이 사회통합대상자 선발비율을 정량지표로 반영한 것은 재량권 일탈 또는 남용해 해당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상산고는 전북교육청의 재지정평가에서 기준점인 80점에서 0.39점 부족한 79.61점을 받아 지정취소가 결정됐다. 특히 4점 만점인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비율 항목에서 상산고는 이 비율이 3%에 그쳐 1.6점(C등급)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교육부는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비율 확대 지침에 대한 공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전북교육청은 2013년 12월에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를 위해 구 자사고의 사회통합전형 선발비율 확대를 권장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상산고에 보냈으나, ‘일반고만 해당’이라는 문구를 포함해 사회통합전형 선발비율에 관해 정확한 안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5년부터 매년 고입전형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비율을 상산고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명시한 것도 교육부가 부동의를 결정한 이유가 됐다. 교육부는 전북교육청이 상산고가 제출한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비율 3%’를 계속 승인해왔고, 이 때문에 상산고 측에서 정량평가인 10%로 평가 기준이 설정될 것을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웠다며 “평가 적정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교육부는 상산고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타 지역보다 높은 평가기준점 등에 대해선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박 차관은 “전북교육청은 타 지역과 달리 10점 상향된 80점을 평가기준점으로 설정했으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 권한은 시도 교육감에 있고 평가기준점 설정도 이러한 권한의 하나로 포함된다”면서 “운영성과 평가 절차를 살펴보면 평가 계획안내, 평가 결과 통보, 청문, 교육부 동의 신청 등의 과정에서 특별한 하자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평가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이 같은 결정은 공약 파기 등 상당한 후폭풍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사고 폐지를 요구해온 시민사회계와 정치권 일부는 문재인 정부가 “교육개혁을 포기했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박스 안은 박백범 교육부 차관

    전북교육청 “정부는 더 이상 교육개혁 얘기 말라”
    전북도민대책위 “현 정부 교육개혁 포기”
    상산고 “교육부 부동의 결정은 사필귀정”

    교육부의 상산고 재지정 취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힌 전북교육청은 “함께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시대정신과 보다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자 했던 그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교육청은 “정부와 교육부는 더 이상 교육개혁이란 말을 담지 않길 바란다”며 “오늘의 이 퇴행적 결정으로 잃은 것들은 회복 불가능할 것이며, 교육부는 중요한 신뢰파트너를 잃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고 날을 세웠다. 향후 법적 대응은 법률적 검토를 거친 후에 발표할 예정이다.

    상산고 자사고 폐지-일반고 전환 전북도민대책위는 이날 오후 전라북도 교육청 2층 브리핑 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과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자사고 폐지라는 대 명제를 포기했다”며 “우리는 오늘을 현 정부의 교육개혁을 포기한 날, 근조 ‘교육개혁’의 날로 선언한다”고 규탄했다.

    대책위는 “문재인 정부는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일 뿐, 약속 따로 행동 따로”라며 “공공성강화 전북교육네트워크를 비롯한 전북지역 33개 단체와 학부모는 상산고의 자사고 폐지 부동의에 대해 강력 규탄하며 이번 결정에 대해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전북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 결정에 강하게 반발해온 상산고 측은 “당연한 결과이자 사필귀정”이라고 밝혔다.

    상산고는 “앞으로 더 이상 교육에 대해 이념적·정치적으로 접근하여 학생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고 학교의 자율적 운영을 저해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며 “지난 17년 동안 진보와 보수 정부를 거치면서 뿌리 내려온 학교에 대해 모든 악의 근원인 양 존폐를 운위하는 식의 정책은 학교뿐 아니라 교육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인기영합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일반고의 실질적인 교육역량 강화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학생, 학부모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학교자율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교육부 판단 존중” 자유·민평 “환영”
    정의당 “교육부, 부동의 결정 근거 빈약…정치적 판단”, “자사고 구하기” 비판
    자유당 “사필귀정, 교육의 자유 회복하는 계기 돼야 

    상산고의 자사고 지위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였던 정치권은 교육부의 판단에 즉각적으로 입장을 냈다.

    정의당은 “책임을 회피하려다 자기모순 빠졌다”며 교육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상산고의 자사고 지위 유지의 결정적 역할을 한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비율’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여영국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교육부는 교육부의 계획과 지표대로 수행한 평가 행위를 재량권 일탈 혹은 남용에 해당해 위법하다고 판단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모순과 사실관계 오류는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교육부는 더 이상 시대적 흐름에서 일탈하지 말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권한을 남용하지 말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도 이날 논평을 내고 교육부의 상산고 지정취소 부동의 결정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정책위는 “교육부는 정량지표로 반영했다고 주장하나 전북교육청은 ‘정량 + 정성지표’로 평가했다”고 짚었다. 정량지표대로 평가했다면 상산고는 D 등급인 0.8점을 받아야 했으나 정성평가가 반영돼 한 단계 높은 C등급인 1.6점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이 명확히 안내되지 않아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비율 기준 10%를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교육부의 판단에 대해서도 “2013년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은 자사고들이 관여한 것”이라며 “교육부는 자사고 교장단 및 학부모연합회와 모두 5차례 면담을 거쳐 사회통합전형은 ‘10%까지 확대 권장, 재지정평가로 유도’하는 형태로 확정했다. 자사고가 충분히 알고 있을 사안”이라고 했다.

    정책위는 “교육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권한을 남용한 쪽은 전북교육청이 아니라 교육부”라며 “대선공약인 외고, 국제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교육부가 구해야 할 것은 자사고가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이라며 “지금이라도 자사고 시행령 개정에 착수하던가, 고교체제 개편 3단계에 착수하던가 하여 대통령 공약도 지키고 교육혁신도 이루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자사고 폐지와 일반고 전환을 공약했던 만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평가를 유보한 채, 수습에 나선 모습이다.

    이해식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교육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교육 정상화의 후퇴가 아닌, 시도교육청의 재량과 권한이 적절했는지를 판단한 행정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의 토대 위에서 제도를 운영하고자하는 교육부의 방침을 존중하며, ‘자사고 폐지를 위한 평가’라는 일각의 주장은 불식되기를 바란다”고 부연했다.

    자사고 폐지 기조가 교육의 하향평준화라고 주장해온 자유한국당은 “사필귀정, 교육의 자유 회복하는 계기 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희경 대변인은 “수월성 교육과 학생‧학부모의 만족도엔 눈감고 오로지 좌파이념, 평등주의 미신에 사로잡혀 하향평준화의 길로 교육을 몰아가고 있다”며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권의 교육자유 말살을 끝까지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취소를 반대해온 민주평화당도 박주현 수석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교육부의 부동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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