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새 주제-뜨거운 논쟁-남은 과제
    By tathata
        2006년 07월 23일 01: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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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별노조는 민주노동당의 발전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산별노조는 민주노동당의 지지층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확대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또 산별노조는 어떤 조직형태와 교섭구조로 완성되어야 할까.

    금속연맹의 산별노조 전환 결정으로 본격적인 ‘산별노조 시대’ 개막을 앞두고 이같은 물음에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2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산별노조 시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제목에서 보듯 이날 토론회는 산별노조, 노동자 정치세력화, 그리고 전망과 과제라는 세 가지 묵직한 과제들이 구분되지 않고 혼재된 가운데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공론의 장이 아닌 수면 아래에서 논의되어 왔던 논쟁들이 이날 불씨가 지펴졌다는 점에서 의미있고 흥미로운 토론회라는 평가다.

    김연홍 금속연맹 정책국장과 이상훈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이 발제를 맡았고, 토론자로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반일효 현대차노조 정책실장,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위원 등이 참여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장상환 진보정치연구소장도 참여해 토론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산별노조는 계급연대 형성 기구”

    김연홍 금속연맹 정책국장은 ‘산별노조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제목의 발제를 했다. 김 국장은 2007년 산별체제 전환의 의미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향한 ‘계급화’의 과정으로 진단했다.

    김 국장은 “기업별 노조체계는 기업 내에 갇혀 직업인과 종업원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를 계급으로 묶어낼 수 없다”며 87년 이후 기업별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산별노조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본원리인 계급연대를 형성하는 일차적 기구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산별노조 건설로) 노동운동이 대표성 위기와 계급적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결정적 단초가 마련된 현실 속에서 당 사업의 향후 과제도 산별노조의 조직화와 맞물려 진행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 광범위한 지지층보다 노동자 계급에 기반 둬야”

    그 전제로 김 국장은 “노동자 정당이 광범한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전에 전략적 동반자로서 노동자 계급을 정치적 구심으로 조직해야 한다”며 노동자 계급에 기반한 민주노동당의 발전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별노조와 당의 동시발전을 위해서는 “노조의 전략적 안정성이 확보되고, 당 역시 선명한 전략적 목표와 사업의 안정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현재 민주노동당이 보여주고 있는 정책의 난맥상과 혼란은 이후 산별노조의 정치세력화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노조의 전략적 목표가 뚜렷해지는 데 반해 당의 전략적 목표가 조합원 대중에게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경우에는 노조와 당의 전략적 공조는 난항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산별노조와 민주노동당의 발전적 관계를 위해 유기적인 정책공조와 인적 결합, 지역활동을 통한 강한 노조와 당의 연대구현, 당과 노조의 역할분담 등을 제안했다.

    “산별노조 방향성 공론화 일천 …정파적 이해 좌우”

    이상훈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은 산별노조 건설의 방향성을 중심으로 발제했다. 이 위원은 금속연맹의 산별노조 건설 결의는 교섭구조의 형태를 둘러싼 혼란이 내재된 속에서 진행됐음을 지적했다.

    그는 “산별노조란 무엇인가 혹은 어떤 산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혼란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산별노조의 방향성과 관련된 민주노조운동 내외부의 사회적 공론화는 일천한 수준이며, 그나마 존재했던 논의 역시도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해 사장되거나 과소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대부분의 유럽국가 산별노조가 전체교섭구조에서 진행되고 있는 점을 들면서, “분산적/경쟁적 산별조직보다는 최대한 집중적인 산별조직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해 ‘통합산별’이 바람직한 상임을 강조했다.

    그는 산별교섭 구조의 결정방향은 사용자의 대응과 민주노조진영의 전략적 선택으로 정해지겠지만, 이는 “향후 노사관계의 형태를 규정하는데 있어 결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또 산별노조 협약의 효력확장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산별협약 확대 적용이 가져올 문제점도 동시에 지적했다. 그는 “기업별 협약은 초기업적 협약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정할 수 없다”며 산별협약이 채택되면 “기업별 협약은 초기업적 협약에 맞게 수정돼야 한다”며 말했다.

    김 국장와 이 위원의 발제는 산별노조시대를 맞아 민주노동당의 발전방안, 산별노조의 방향성을 둘러싼 토론거리를 제시했다. 토론자들은 발제자의 문제제기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으며, 사안에 따라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드러났다.

    “산별교섭 요구안 비현실적” vs "유럽에서는 이미 실시“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의 산별교섭 요구안이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라며 날카롭게 비판했다. 은 박사는 산별효력 확장제도를 주장하기 이전에 효력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그리고 다수노조가 소수노조의 단체협약을 제한할 수 있는가, 산별교섭과 지부, 지회의 교섭이 진행될 때 이중쟁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에 대해서 민주노총의 요구안은 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 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이 산별교섭과 산별협약 확장을 관철하려 한다면 기업별 교섭을 없앨 각오를 하는 등 사용자가 수용할 수 있는 양보안이 필요하지만, 민주노총은 아무 것도 내놓지 않은 채 다 달라고만 요구한다”고 말했다. 산별교섭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노동계의 ‘양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김연홍 국장은 “산별노조의 산별교섭과 산별협약은 유럽에서도 실시될 정도로 당연한 요구인데 마치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산별협약 확장이 돼야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평준화를 이룰 수 있고, 그것이 산별노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통합산별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워”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이상훈 연구위원의 산별노조 방향성의 문제제기에 공감을 표시하며 산별노조의 조직형태에 관한 토론을 이어갔다. 

    이 실장은 “산별노조의 장밋빛 전망을 실현하는 데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구조적 한계가 많다”며 “지역·업종·통합·이념 산별 가운데 어떤 산별을 취할 것인지 상당한 논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운동의 발전 과정에서 산별노조를 만들었으나 정파갈등 등으로 산별 내에서 분화가 될 수 있어 통합산별은 조직문화와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실장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한석호 금속연맹 전 정치국장은 “통합산별이 되지 않으면 전문업종 중심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조직되겠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산별노조 조직의 폭은 극히 제한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김연홍 국장도 "금속노조에는 다양한 현장조직과 정파가 존재하지만 통합산별 형태를 띠고 있다"며 "이념산별로 분화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 양보해야” vs "정규직 때문에 차별받나?“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향상을 제안했다.

    장 위원은 “노동운동의 객관적 조건을 배제하고 당 운동의 이기적 관점에서 말하겠다”고 전제하면서 “금속노조 임금단체협상 요구안에서 대공장 노조 조합원이 임금을 일정부분 양보하고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단체협상요구안을 낸다면 금속노조 가입이 급증하고, 그 영향이 공공 민간서비스 영역에까지 확대돼 노조 조직률이 20%, 30%로 치닫게 되는 낙관적 상상을 해 본다”고 말했다.

    대기업 노조가 양보해서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유인할 수 있는 산별교섭 요구안을 내야 노조 조직률이 높아져 당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그는 “산별노조에서 대기업 노동자가 실익을 구하지 않으면서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실익이 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장 활동가만이라도 중지를 모아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공장 노조의 ‘양보론’에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도 동의를 표했다. 문 대표는 “산별노조가 계급적 연대의식으로 임금과 고용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산별노조를 통해 연대임금을 복지와 연결하고, 사회적 임금을 확산하는데 이제부터 당의 정책역량을 과감히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봉) 6천만원 받는 조합원이 2천만원을 받는 조합원에게 도움을 주도록 당이 역할을 한다면 당에 표를 찍겠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연홍 국장은 대기업 노조 ‘양보론’이 “마치 정규직 노동자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해를 입은 것처럼 말하는 있기 때문에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 노동자의 수준만큼 끌어올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서는 대기업 노조의 임금과 근로조건의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반면, 금속연맹은 이같은 접근이 자칫 근로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경계하는 것이다 .

    논쟁은 여기서 더 진척되지 않았으나, 민주노동당과 노동운동 진영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업장의 격차해소를 위한 해법에 대해서는 온도 차를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대목이었다.

    산별노조 임금협약 단계적 적용은 어디까지?

    장상환 진보정치연구소 소장은 사업장 규모에 따른 산별노조 임금협약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장 소장은 서울대병원노조의 보건의료노조 탈퇴 사례를 예로 들며, 산별노조 하에서 임금단체협약 적용의 단계적 접근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주호 정책실장은 “산별교섭에서 임금을 다루지 않게 되면 교섭은 당위적인 수준을 넘지 못한다”며 “임금교섭은 조합원의 관심을 높이고, 산별교섭의 비용을 줄이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산별노조가 사업장 규모에 따라 임금단체교섭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임금은 산별교섭의 중추라는 주장이 서로 맞선 것이다.

    “조합원이 당의 동원책이냐 …정치세력화 전향적 고민 필요”

    반일효 현대자동차노조 정책실장은 민주노동당과 노조가 맺고 있는 현 실태의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 실장은 “현장에서 조합원들은 당의 결정만을 수용하기를 요구당해 반감이 강하다”며 “산별노조를 맞아 정치세력화에 대한 전향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 실장은 “선거시기만 되면 조합원들은 당의 동원책이 되어서 당이 민주노총에 요구하는 방침을 그대로 강요받고 있는데, 현장 조합원과의 괴리가 올바른 정치세력화 과정인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반 실장은 특히 민주노동당의 당원 확대 사업이 갖는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무리하게 당원을 확대하여 정강과 강령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주변인맥에 의해 당에 들어오고, 이들이 당의 정책과 활동에 실망을 하고 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5.31 지방선거의 패배도 이같은 문제점의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반 실장은 또 ‘기계적인’ 여성할당제도 확대 도입과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에 대한 접근 없이 노조와의 연대에만 중심을 두는 당의 활동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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