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신당하는 민주노동당의 도원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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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21일 08: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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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는 도원결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숭아꽃이 피어 있는 곳에서 3명의 남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는 광경은 영화나 드라마로도 많이 형상화되었지만, 자못 장엄한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김구용 본을 보면 제사가 끝난 후 고을의 장정 3백 명과 통쾌히 마시면서 취했다고 하는데, 3백 명의 남자가 술을 마시는 광경이 과연 얼마나 보기 좋을지는(?) 의문이다.

    맹세 내용도 자못 비장하다. “성은 다르지만 같은 날 죽기를 바라며, 의리를 저버리거나 은혜를 잊는 자가 있거든 그를 죽이소서”라는 내용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의리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지, 대개 경우에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깨닫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리의 양면성

    의리는 인간의 자기보호 본능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힘이 있거나 교활한 자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명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별다른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나 집단에게는 의리는 유일무이한 정치적 자산이라는 점에서 보면 정치적 의리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유비, 관우, 장비도 이 맹세를 얼마나 지켰는지는 의문이 든다. 관우는 유비의 숙적이자 소설에서 마치 인민의 공적처럼 묘사되는 조조의 포로가 되고서도 형수들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호의호식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조조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살려주기까지 한다.

    사실 이 정도면 반역행위에 해당될 터인데, 이 부분은 관우의 인간성과 의리에 포장되어 해프닝으로 넘어간다. 아마 이 정도 이유로 관우를 죽인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큰일이기 때문에 유비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고래로 훌륭한 장수를 구하기 어렵고 오히려 적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왕들은 실수한 장수들에게 관대함을 베푼 전례를 본다면 유비의 판단은 틀리지 않은 것이다.

    도원결의의 맹세는 난세에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점은 유비 3형제가 그 맹세를 지켰는지 보다도 그들의 힘의 원천이 여기서부터 출발했다는 데에 있다. 이들의 약간은 유치해 보이는 이 의식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고, 별 볼 일 없는 인사 3인의 비장한 맹세가 결국에는 천하삼분지계로 꽃 피게 되는 것이다.

    모든 도원결의 성공하지는 않지만, 뭔가 바꾸려면 결의는 필요하다

    이후 유비 3형제가 죽고 유비의 멍청한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더라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후계자가 누가 되었건 간에 도원결의라는 출발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도원결의가 성공하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인간 다수의 결의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1997년, 암행어사제도를 도입하자는 공화당의 허경영 후보와 재벌해체에 대해서 토론하고, 결국 30만표로 1.2%에 그친 권영길 후보와 <국민승리21>이 그 길로 낙향하였다면 현재 민주노동당이 존재했을까. 진보정당 창당을 전제로 한 출마와 창당의 맹세를 하지 않았다면 2004년 총선의 제한적 승리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간명하면서도 단순한 도원결의의 맹세를 보면서 필자는 특히 민주노동당 강령(특히 전문)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생경한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이미 원내정당이 된 민주노동당에게는 인기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강령에 대한 보수세력의 공격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라거나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응대한 당 인사가 있었는가 하면, 강령에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것에 우려하는 분들이 아마도 당내 주요인사들 중 최소한 절반은 넘을 것 같다.

    어찌되었던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도원결의의 맹세만큼이나 간명하면서도 지키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홈페이지에서도 그 내용이 바로 뜨지 않고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야 읽을 수 있도록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민주노동당 강령의 일부 글귀는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에서 ‘폭력’만 뺀 것으로 도원결의의 맹세만큼이나 단순하고 명료하다.

    도원결의 맹세만큼 지키기 어려운 민주노동당 강령

    “민주노동당은 외세를 물리치고 반민중적인 정치권력을 몰아내어 민중이 주인 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세계화된 자본에 맞서는 전 세계 노동자계급, 착취당하는 민중, 억압당하는 민족과의 국제 연대에 앞장서 정의와 평화가 넘쳐흐르는 인류 공동체를 건설해 간다. 민주노동당의 길은 민주와 평등과 해방의 길이다.”
    – 민주노동당 강령 중에서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휴수(攜手)하여 부절(不絶)하는 파괴, 암살, 폭동, 테러로서 강도 일본을 살벌(殺伐)하고, 일체의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조하여 인류가 인류로써 억압치 못하고 사회가 사회로써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 신채호, 조선혁명선언 중에서

    그래서 그런지 거의 매일매일 민주노동당의 도원결의인 당 강령은 당내 주요 인사들로부터 배신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배신이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관우처럼 탐관오리와 소인배들을 무찌른다면 배신 좀 하더라도 민중들이 용서해 주지 않겠는가.

    민주당의 개혁적인 모 의원조차 “주요 사안마다 열린 열린우리당에 얹혀 간다”고 평가하는 마당에 도원결의도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천하삼분지계는 점점 더 일장춘몽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자화자찬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래서 유비 3형제의 도원결의 중 “의리를 저버리거나 은혜를 잊은 자가 있거든 죽이소서”라는 표현이 더욱더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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