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서와 엄마 아빠를 빼고 다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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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8일 07: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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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서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 부부는 알려진 거의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다. 피부과를 비롯해 유명 아토피 클리닉을 다니기도 했으며 각종 알러지 검사도 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관련된 자료를 모았고 아토피와 관련된 책을 사다 읽고 또 읽었다.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듣고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냈다.

    그 결과 이런 사실을 알아냈다. 아토피를 낳게 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아토피를 낳게 하는 확실한 방법은 하나도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 영서(왼쪽)가 동생 영찬이에게 밥을 먹여주는 모습
     

    다 바꿔야 했다. 생활습관에서부터 입는 것, 먹는 것, 생활에 관계된 모든 습관을 바꿨다. 가장 먼저 집안에 있는 조미료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음식 솜씨 없는 사람이 그래도 편하게 맛을 낼 수 있는 다**를 아낌없이 버렸다. 처음에는 음식이 도통 맛이 안 났다. 멸치 가루니 뭐니 천연 조미료를 넣어보았지만 MSG의 깊은(?)맛을 재연하지는 못했다.

    다음은 외식을 줄였다. 어차피 우리 가족이 식당의 주방 안을 들어가지 못하는 바에야 사먹는 음식의 안정성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영서가 우리가 만든 음식을 먹거나 외식할 때 같이 먹진 않는다 하더라도 영서엄마와 내가 바뀌지 않으면 영서의 아토피를 낳게 할 자신이 없었다.

    우린 또 지역의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무의미하게 대형 마트에 가서 한아름씩 사갖고 오는 쇼핑 대신에 품목표를 보면서 주문했다. 단지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필요없는 물품을 사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것들만 샀다. 물론 생협의 유기농 제품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 마음대로 살 수도 없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면제품으로 바꿨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합성섬유 제품 옷을 입고 영서를 안지 않았다. 영서를 항상 안고 있어야 했기에 옷들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집안의 온도도 대폭 내렸다. 한겨울에도 난방은 최소한으로 했다. 방바닥이 뜨거워지면 아이의 아토피는 더욱 심해졌다. 겨울에 친한 친구네 가족이 놀러왔다가 추워서 다시는 못 오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래도 익숙해지니 추운 것쯤은 견딜만 했다.

    음식 조절에 본격적으로 나서다

    우린 특히 영서 아토피의 가장 큰 원인을 음식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것은 모유를 통해 영서에게 그대로 전달된다)에서부터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먹게 된 음식을 하나하나 체크해 갔다

    그리곤 조금은 무식하지만 원칙적으로 대했다. 아이의 음식을 제로상태로 놓고 처음부터 시작해 나갔다. 먼저 쌀로만 미음을 만들어 먹였다. 쌀은 알러지가 없는 거의 유일한 식품이라고 들었다. 아무것도 먹일 수는 없어서 쌀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3일간 관찰을 했다. 영서의 아토피가 호전되지도 않고 나빠지지도 않았다. 우린 나빠지지 않은 것에 대해 위안을 삼고 쌀은 영서에게 맞는 음식이라고 규정했다.

    그 다음에는 미음에 양파를 넣었다. 또 3일간 관찰했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두 가지 정도의 음식을 추가했다. 쌀, 양파, 오이, 당근, 버섯, 소고기, 흰살 생선 등 음식을 하나씩 늘릴 때마다 관찰을 하고 기록했다. 음식에 대한 반응은 단 몇 분만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길게는 며칠만에 나타나기도 했다.

    서너달이 지나자 온갖 잡탕으로 된 죽을 끊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영서에게 반응이 나타나는 음식은 철저히 배제했다. 영서에겐 물엿, 감자, 설탕, 카레, 고등어 등의 음식이 아토피를 심하게 했다.

    그리고 집에서 만든 음식이 아닌 모든 과자는 안 먹였다. 계란과 땅콩 등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다. 영서 엄마는 영서의 외출 때마다 영서의 먹거리를 항상 챙겼다. 영서는 또래의 아이들이 아이스크림과 빵과 사탕을 먹을 때 다시마를 갖고 다니며 먹었다.

    음식으로 아토피 원인을 찾는 동시에 가려움증에 대한 대비도 해야 했다. 목초액을 이용했다. 목초액을 희석시켜서 목욕을 했다. 다행히 목초액은 영서에게 맞았다. 목초액으로 씻기고 난 후 가려움증은 얼마간 다스릴 수 있었다.

    가렵다고 할 때마다 목초액 원액에서부터 약간 희석한 것, 많이 희석한 것 등을 골고루 사용해 가려움의 정도에 따라 발라줬다. 목초액을 사용한 사람은 안다. 그것이 상처에 들어가면 굉장히 쓰라리다. 그러나 아이는 아주 시원해했다. 긁는 대신에 목초액으로 발라주니 차츰 염증과 진물이 잦아들고 딱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스테로이드 약과 항히스타민 같은 양약도 썼다. 우린 양약을 써도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시도한 음식으로 갑자기 가려워질 때 스테로이드를 써서 위기를 넘기고 곧 끊었다. 설날에 친척분이 떡국 국물을 무심코 먹였다가 떡국에 들어간 계란 때문에 심하게 난 두드러기는 항상 비상약으로 갖고 다니는 항히스타민 약으로 눌러 앉혔다.

    한번 결정적인 고비를 넘자 아이의 아토피는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쳤다. 머리가 다시 새로 나기 시작했고 거북이 등껍질 같던 손등이나 발등에서 아이다운 피부가 나오기도 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토피는 마치 하향기의 주식시장 그래프를 보는 듯했다. 나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하기는 했어도 분명한 것은 좋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토피는 끈질겼고 집요했고 게릴라처럼 신속했다. 환절기가 되면 어김없이 아이의 손등에 부스럼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등에 수백개의 좁쌀 같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얼굴은 조금씩 깨끗해졌지만 손가락 사이사이, 오금, 귓불과 귀 사이 같이 살이 맞대는 곳에서는 순식간에 짓무르기도 했다.

    이럴 때일수록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했다. 나아지거나 심해지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영서 엄마와 토론했다. 이제는 조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식이요법과 목초액을 쓰기 시작한 지 6개월 가량 되었을 때다.

    오후에 영서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는데 아이가 잠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잠을 재우기 위해 그 동안 얼마나 노력해왔는가? 24시간을 내내 졸며 깨어 있는 것도 자는 것도 아니었던 아이가 책만 읽어주었는데 잠이 들고 말았다.

    그 감격에 우리 부부는 파티라도 하고 싶었다. 두시간을 내쳐 맛있게 낮잠을 자다 깬 아이는 너무 행복해했다. 잠을 못 자 늘 퀭한 얼굴도 아니었다.

    아토피가 좋아지니 여러 가지 부작용들도 놀라울 정도로 사그라졌다. 아이를 괴롭혔던 장염도 거의 걸리지 않게 됐다. 장염이 없으니 똥도 좋아졌다. 수술 시기만 기다리던 치루도 스스로 나아졌다고 한다. 아이가 이제 스스로 자기 몸의 면역력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7살 영서는 이제 아토피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그러나 아토피를 완전히 낫게 하진 못한다. 우린 그럴 생각도 없다. 어차피 불가능한 것이니까 말이다.

    영서는 현재도 모든 종류의 조미료를 먹지 않는다. 어쩌다 먹는 조미료는 며칠 내에 가려움증으로 우리에게 보답한다. 과자에 들어간 이상한 이름의 첨가물과 하얀 설탕은 여전히 금지 식품이다.

    아토피는 분명하게 나쁜 병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영서의 아토피를 미워하거나 원망만 하진 않는다. 어쩌면 영서 아토피는 우리에게 환경과 생활 습관에 대한 경고가 아닌가 싶다. 영서의 아토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생활 습관을 가졌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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