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정의당 대표 경선을 보며
    [기자수첩] 심상정과 양경규의 경쟁
        2019년 07월 01일 01: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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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은 오랜 세월 동안 진보정치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상을 향해 걸어가지만 지금 당장 실현가능한 변화를 위해 ‘꿈꾸는 현실주의자’ 되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자, 청년, 임차인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념의 선정적인 아니라 정치적으로 더 큰 책임을 지는 정당이다”

    정의당 새 당대표 선거 첫 유세전에서 심상정 후보의 연설 일부다. 진보정당의 절대강자인 심상정 후보에 맞서 출마한 양경규 후보가 제안한 ‘민주적 사회주의’에 반대한다며 한 말이다.

    양 후보가 같은 날 한 연설에 따르면, 민주적 사회주의는 “국민의 것을 국민에게 과감하게 돌려주는 것”이다. 1%의 부자들이 전체 50%의 땅을 가지는 현 상황을 바꾸는 제2의 토지개혁을 주요 정책으로 하고 있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전면적이고 과감한 자산재분배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꿈꾸는 현실주의자’라는 심 후보의 언급은 이런 내용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거나, 현실 불가능하다는 우회적 비판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정의당 내에 ‘현실주의자’들은 적지 않다. 그들은 정치권 밖에 있는 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종종 “정치는 현실이야”라는 말(한 두 번 들은 게 아니다)로 정체성을 드러내곤 한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진보정당에 더 큰 요구를 하는 이들에게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는 당 관계자들을 비난할 순 없다.

    하지만 진보정당 당 대표 선거라면 얘기가 다르다. 소수의 부자가 부동산을 독점한 탓에 다수의 국민들은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며 유목민처럼 살아가고 있다. 보통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쥐꼬리만한 임금의 대부분을 임대료나 은행 이자를 갚는 데에 허비하고, 부동산을 가진 소수의 부자들은 그 임대료를 받아 다시 부동산을 사들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동네마다 고층 아파트는 올라가는데 정작 내가 들어갈 집은 없다는 한탄이 소수의 사회적 약자들한테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부의 불평등은 부동산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한국 사회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겠지만, 진보정당이 ‘작지만 강한’ 스피커로 내야 할 목소리다.

    심 후보는 지난 27일 김현준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부유세 발의한 사람이 저다. 2004년도에. 그 때 (부유세 법안을 발의한 후에)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다’, ‘과격하다’는 오만소리를 다 들었다”고 말했다. 권영길 전 대표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처음 들고 나왔을 때도 꿈같은 소리였다. 부유세가 먼 과거엔 체제를 부정하는, 꿈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국의 부자들이 부유세를 주장하는 세상이 됐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시대의 정신이 됐다. 한국에서 부유세를 가장 먼저 발의하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제안한 역사는 정치인 심상정과 정의당, 진보정당의 자랑거리이고 정체성이 됐다.

    사실 현실 불가능하다는 판단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이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꽤나 진보적인 정책인 양 들고 나온 기성 정치인을 향해 심상정 후보는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라고 바로잡은 적이 있다.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 노동을 실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최근에 경기도에서 일부 공공기관에 한해 주 40시간 정책을 시범 시행한다는 기사에 “허상이다”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장시간 노동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노동시간 상한제가 꿈이고, 현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남들은 꿈이라는 주 40시간 노동을 심상정 후보는 일찍부터 말해온 것이다.

    “눈사람을 굴리더라도 중심이 튼튼해야 더 크게 굴릴 수 있다”

    2015년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심상정 후보가 <레디앙>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원이나 정의당 지지자들 대부분 2015년 심상정 후보의 말에 동의할 거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중심은 당원이고, 진보적 가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을 저지하고 민주당을 견제하는 것만이 정의당의 역할이 아닐 거다. 자신의 노동조건에 절망을 넘어 체념하는 여론에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다”며 진보적 가치로 설득하고 이끌어온 세력이 지금까지의 진보정당이다. 정의당은 그런 진보정당의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

    30일 대전세총충남북 당직선거 유세 모습

    진보정당은 현실정치 속에서 대중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정치에 매몰돼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잊고, 그것을 꿈이고 현실 불가능한 것이라고 쉽게 저버려선 안 된다는 점이다.

    “정의당, 이대로 괜찮겠냐”는 양경규 후보의 질문을 곱씹어 봐야 한다. 민주당 2중대론은 자유한국당이 씌운 프레임이니 지금 이대로 열심히 하자며, 그래도 많은 유권자가 비례대표엔 정의당을 찍어주지 않느냐고, 정치는 현실이라며, 만족하고 스스로 위로한다면 이런 류의 질문은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프레임 정치에 공격당하는 민주노총을 보자. 자유한국당의 귀족노조 프레임에 반발하면서도,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임금제, 연대파업, 최저임금 투쟁 연대 등 정규직 노조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해나간다. 민주노총 중앙은 비정규직 투쟁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프레임에 저항하려는 이유 때문에 비정규직 연대 투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민주노총이 받고 있는 여론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의당도 그래야 한다. 2중대론을 5만 정의당 당원에 대한 비난이라거나, 적폐세력인 자유한국당의 프레임 정치라고만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그거야 말로 현실을 외면한 정신승리다.

    보다 진보적인 정책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실현 가능성일 거다. 신기루가 아니라, 이뤄낼 수 있는 목표라고 대중을 설득하고 추진하고 이뤄내는 건 정치인의 몫이다. 고 노회찬 의원은 2015년 <레디앙>과 인터뷰에서 “누가 먼저 얘기했냐의 문제보다 누가 실현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가 진보정당의 선명성 강화만을 위한 한낱 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설득하는 건 이를 외치는 양경규 후보의 과제일 거다.

    심상정과 양경규, 양경규와 심상정 두 사람의 7월 1일 SBS-KBS 생방송 토론과 2일 MBC 100분 토론 그리고 6일 MBN 토론이 기대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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