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정치 접근권 가로막는 정파 담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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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13일 09: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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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진보정당 역사에 기록될 추악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가 각 정파의 암묵적 연합으로 창당 초기부터 장애인 당원들이 요구해 온 장애인 할당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장애인위원회는 위원회를 결성하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당헌·당규에 명시된 장애인 할당을 현실화할 것을 요구해 왔으나, 매번 중앙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특히 노동·농민의 과두제, 각 정파의 이해관계 등의 이유로 그러한 요구가 좌절되어 왔다.

    반려만 수차례, 인내의 한계 넘었다

    이에 장애인위원회는 이번 중앙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장애인할당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는다는 각오로 중앙위원회의 진행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7월 9일 새벽 1시경, 장애인위원회에서 현장 발의한 당헌개정안이 상정되었고, 몇 건의 질의와 찬반토론 후 당대표의 제안으로 잠시 정회가 있었고, 1건의 수정동의안이 재청 없이 기각되어 원안 그대로 무난하게 통과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표결 직전, 갑자기 김성진 최고위원이 안건을 좀 더 다듬어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이유로 안건보류를 신청해 사실상 안건 반려를 주도하였고, 표결에 들어가자 190여 명의 재석인원 중 100여 명의 찬성으로 안건이 반려되었다.

    이에 지켜보고 있던 필자가 단상 앞에 뛰어들어 회의를 중단시켰고, 장애인위원회 소속 당원들이 더 이상 장애인들에게 기다림과 설명을 요구하지 말라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또, 유일한 장애인 할당 중앙위원이 번안을 요청하였으나 80여 명만이 찬성하여 기각되었고, 장애인위원회 소속 중앙위원들을 비롯한 몇몇의 중앙위원들은 더 이상 중앙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퇴장하였다.

    ‘대표직 걸고’ 직권 상정 약속

    이에 당 대표는 이후 있을 당 대의원대회에서 ‘대표직을 걸고’ 당규에도 없는 직권상정까지 약속하고, 일부 최고위원들은 절차 운운하며 장애인 중앙위원들에게 회의 복귀를 요구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의 합작과 중앙위원들의 동의로 장애인과 소수자들의 정치접근권이 철저하게 짓밟히는 현장을 목격한 상황에서 이들을 설득할 논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당 내의 고질적인 종파주의의 악령이 당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좀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도 서글펐다. 생각해보자. 190여명의 재석자 중 100여명이 안건반려에 동의했다. 그리고 장애인당원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고, 번안요청을 하였을 때, 80여 명만이 이에 동의하였다.

    이는 결국 장애인당원들의 반발이 중앙위원 개개인의 의사결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100여 명의 중앙위원들은 애초부터 강력한 안건 반려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거나 개인적 결정이 변경될 수 없는 어떠한 조직적 압력이 있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소수 대변할 자격 있나

    더욱이 장애인위원회 소속 중앙위원을 비롯한 일부의 중앙위원들이 퇴장한 상태에서 이후 회의가 속개되었는데, 오히려 참석자가 퇴장 전보다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한 중앙위원의 증언에 따르면 특정 정파의 중앙위원들은 조직적으로 장애인할당 표결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대표를 던지기에는 원칙적인 측면에서 부담스럽고, 찬성표를 던지기에는 자신들의 일정부분의 정치적 발언권을 양보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이다.

    우리가 그렇게 비판하는 보수양당에서조차 10%의 장애인할당이나 장애인 출마자에 대한 가산점 부과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당임을, 노동자 서민, 사회적 소수자의 정당임을 자처하는 민주노동당이 이번 사태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과연 그러고도 민주노동당이 보수 양당을 견제하고 서민과 사회적 소수자를 대변할 대안정당으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말이다.

    아마도 이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고질적인 종파주의가 아닌가 한다. 장애인 할당 안이 통과하게 되면 노동·농민의 각 부문이나 정파에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명시적·암묵적인 할당이 결과적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생각이 중앙위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당내 선거 시기마다 조직선거 논란이 있어왔지만 부문이나 정파 사이의 일정정도의 갈라먹기가 존재해 왔고, 장애인 할당의 문제가 자칫 그 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 동안 이에 관한 논의를 미루게 한 결정적인 이유다. 이에 대표와 최고위원의 주도와 다수파의 동의, 그리고 소수파의 묵인으로 이 안건이 반려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임시 당 대회를 지켜보겠다

    그동안 중앙위원회는 당헌·당규에 명시된 장애인할당에 대한 규정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었고, 이는 명백한 당헌위배다. 장애인위원회의 요구는 중앙위원회의 당헌·당규 준수요구에 다름 아니며, 노동자·서민·사회적 소수자의 정당이라는 당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명확히 할 것에 대한 요구다. 따라서 이번 중앙위원회의 결정은 당헌·당규, 당의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확인하는 것이고, 이는 명백한 해당행위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중앙위원회는 또 다시 당헌위배를 무릅쓰고 장애인할당 안을 반려시킴으로써 당의 정체성을 훼손하였다. 이는 결국 정파적 이해가 당의 기본적인 정체성에 우선한다는 고질적인 종파주의의 재현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번 중앙위원회의 결정은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민주노동당에 거는 희망에 대한 철저한 배신행위이며 당이 스스로의 명줄을 끊는 자살행위라 할 수 있다.

    다행히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는 장애인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이 문제를 최고위원회 안으로 돌아오는 임시당대의원대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이 안건의 처리결과는 우리나라 정치사에 길이 남을 커다란 진보가 되느냐, 아니면 진보정당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사형선고가 되느냐 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대의원, 그리고 당원들의 대오각성이 강력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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