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협약 비준과 법개정 ‘동시 추진’
혼란, 갈등 또 반복…노동계 "비준 먼저"
"사용자 공격권 수용, 협약 비준 동시에 협약 위반"
    2019년 05월 23일 03: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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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 법 개정을 동시 추진하기로 했으나 국회 통과 전망은 어둡다. 재계와 자유한국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국회 문턱을 넘는 비준안에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협약의 취지를 온전히 녹여낼 수 있을지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노동계는 조건 없는 ‘선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재계는 협약 비준을 대가로 대체근로 전면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 삭제 등 이른바 ‘사용자 공격권’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사용자 공권격 수용 요구

국회 논의는 협약 비준보단 사용자 공격권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협약 비준에 관한 노사 합의에 실패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비준을 대가로 사용자 공격권 수용 정도가 논의의 중심이 됐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협약 비준에 따른 법 개정 논의와 관련해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익위원안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파업 시 직장점거 금지’ 등 사용자 공격권 2개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정부가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한 직후부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법 개정 과정에서 사용자 공격권을 수용하지 않는 한 협약 비준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3일 오전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강성귀족노조의 경제 발목잡기를 극복하기도 힘든 상황에 결국 ‘노조의 단결권만을 강화시키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서 “여러 가지 보완책 만들기 없이 한마디로 일단 ‘노조 편들기만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공무원, 교원, 소방, 경찰, 해고자, 실업자 등 노조할 권리를 확대시키는 만큼 기업의 경영권 보장 확대하여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ILO핵심협약 비준 대가로 사용자 공격권 수용?
노동계 “협약을 비준하는 동시에 협약 위반”

노동계의 입장은 다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대가로 한 사용자 공격권을 수용하는 것 자체가 ILO 핵심협약 위반이라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장인 신인수 변호사는 이날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를 통해 “ILO 핵심협약 비준에 요구되는 법제도 개선을 위해 사용자에게 선물을 줘야 한다는 것 자체가 ILO 핵심협약 위반”이라며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동시에 협약을 위반하는 꼴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사의 자유 관련 ‘ILO 제87호 협약 8조’에 따르면, 국내법은 이 협약에 규정된 보장사항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목적으로 적용돼선 안 된다. 재계와 자유한국당이 언급한 ‘사용자 공격권’은 단결권을 약화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만약 입법 과정 등에서 사용자 공격권이 수용되면 정부가 비준을 결정한 87호 협약을 비준하는 동시에 위반하게 되는 셈이다.

ILO헌장 제19조 또한 협약의 비준이 협약 또는 권고에 규정된 조건보다도 노동자에게 보다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고 있는 법률, 중재재정, 관습 및 협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간주돼선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사용자 공격권이 아니라 ILO의 노동기본권 보장 권고에 근거해서 법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준·입법 동시추진 방침에
또 다시 혼란, 갈등…정부 책임은 어디로

노동계는 국회에서의 이러한 혼란을 차단하고자 ‘선비준, 후입법’을 요구해왔다. 우선 협약을 비준한 후에 발효까지 걸리는 1년 동안 법 개정을 논의하면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비준·입법 동시추진’을 택하며 국회로 공을 넘겼다. 경사노위의 노사갈등을 그대로 국회에 옮겨놓은 셈이다. 정부가 폭탄 돌리기식으로 협약 비준에 대한 책임을 미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동시입법 추진에 대해 “사실상 협약 비준을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 정부의 입장이 아니냐는 의심 받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민변 등 노동법률단체도 논평에서 “동시추진 또한 법개정 문제에 비준이 발목 잡힐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따라서 기본적 국제노동기준으로 당연명제가 된 지 오래된 핵심협약의 조건 없는 선비준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도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노조법 개악과 거래 없이는 국제 기준의 노동기본권도 보장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라며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그에 따라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이 자체를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고 말았으니 사용자의 억지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사실상 협약 비준에 의지가 없다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협약 비준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야기하는 것에 더해, 관련한 시행령 개정에 미적대는 것도 이러한 의구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등 국제사회는 그간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직권취소, 공무원·교원·공공부문 해직자 원직복직, 노조설립신고제도 개선,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 근로시간면제제도 개선 등 시행령 개정을 통한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해왔다. 국내 노동계도 같은 요구를 해왔지만 정부는 어떤 것도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금처럼 노사를 비롯해 모든 사회구성원의 동의를 얻고자 한다면 ILO 핵심협약 비준은 불가능하다. 코린 바르가 ILO 국제노동기준국장은 지난 9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주최한 ILO 핵심협약 비준 방안 심포지엄에서 영상 발제에서 “입법적인 틀이 완벽해지고 모든 정당이 만족할 때까지 비준을 미룬다면 (노동권 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관행의) 진전은 더욱 지체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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