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태 의장에게 내일은 없다"
        2006년 07월 08일 04: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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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의장이 취임한 지 근 한 달째다. 김 의장 표현대로 "1년같은 한 달"이었다. 이 기간 동안 김 의장 체제의 미래를 전망케하는 징후적 사건이 둘 있었다.

    하나는 김 의장이 6월 29일 청와대 만찬에서 노대통령과 "한미 FTA는 생존과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철저한 사후 보완대책을 강구하자"고 합의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이달 5일 하반기 경제운영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확대당정협의에서 ‘실용파’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일이다.

    두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경제 정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비하면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교육부총리 임명이나 김두관 전 최고위원의 보궐선거 공천설로 빚어진 논란 따위는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정치는 명분 싸움이다. 지금 여당의 위기는 곧 명분의 위기다. 유권자들이 왜 자신을 지지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위기의 실체다. 이번 지방선거는 ‘민주세력’, ‘평화세력’, ‘양심세력’ 따위의 낡은 수사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지금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먹고 사는 문제다. 바로 경제문제에서 명분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는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금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고 말하지 않는 정파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어떻게 살릴거냐다.

    신자유주의의 페달을 더욱 세게 밟는 방법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누가 돼도 똑같다는 얘기다. 그런데 같은 값이면 ‘능력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족족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자유주의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지금 여당에서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은 김 의장이 유일해 보인다. 아마도 이게 김 의장이 현재 쥐고 있는 정치적 종잣돈이 아닌가 싶다.

    세력관계로 보면 실용파가 당내 다수파인데도 민주파의 운명이 매번 당의 운명을 대표하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다. 여당의 지난 지방선거 패배가 민주파의 패배였다면 민주파의 정치적 회생을 통해서만 당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보여줘야만 한다.

    김 의장이 취임 일성으로 ‘서민경제 회복’을 말한 것은 그런 면에서 적절한 것이었다. 김 의장은 각종 인터뷰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케인즈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의장이 취임과 함께 ‘서민경제회복추진위원회’를 의욕적으로 구성하려 했던 것도 ‘김근태식 경제노선’을 실천하기 위한 당내 진지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서민경제회복추진위원회’의 초라한 행색처럼 신자유주의에 대한 김 의장의 문제의식은 립서비스에만 그치고 있다.

    김 의장이 청와대 만찬에서 노대통령과 한미FTA에 대해 협조하기로 합의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고갱이를 유보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5일 김 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확대당정협의에서 인위적인 경기부양책과 출총제 폐지 등이 당론으로 정부에 전달된 것은 여당의 정책 시계가 70년대로 회귀했음을 뜻한다.

    지금 여당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의 결합으로 나타나고 있고, ‘서민경제회복추진위원회’는 차라리 ‘재벌경제회복추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김 의장은 자신의 정치적 명분과 존재 이유를 하나 둘 잃고 있다.

    도대체 이런 식이라면 강봉균이 아니라 김근태여야 할 이유가 뭔가. 한나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이어야 할 이유가 뭔가. 정부 여당의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에 대해 한나라당이 "건설경기 활성화, 비과세 감면조치 연장, 출자총액제 개선 등을 볼 때 상당히 괄목할 만한 계획"이라고 칭찬한 것을 김 의장은 심각한 위기의 징후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FTA를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그 내용이 뭔지 알려준 게 없어 지지발언을 해줄 수가 없다"는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의 발언이 김 의장의 정치적 운명에 대한 소름끼치는 조롱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김 의장측은 항변한다. 출총제 폐지는 당론이 아니며, 아파트 원가공개는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에는 당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의 힘이 실려 있지 않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당론에 반대하는 계파 수장의 문제제기처럼 보인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한미FTA에 대해 "국민의 뜻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도자는 민심을 미리 읽는 사람이지 민심에 밀려가는 사람이 아니다.

    기업의 투자 확대는 강조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제고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왜 언급이 없느냐는 질문에 한 측근은 "차차 마련될 것"이라고 했지만, 김 의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아 보인다. 김 의장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본색’을 드러내려는 노력이 아닐까.

    물론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여러 방면에서의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통령은 물론 여당 내 실용파와도 척질 각오를 해야 한다. 노대통령의 어록에서 유일하게 맞다고 생각하는 말이 있다. "복잡할 때는 여러 생각 말고 원칙대로 가라. 정도를 걷는 것이 최고의 정치공학이다." 지금 김 의장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김근태는 무능한 민주파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에피소드가 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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