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 '집'의 의미를 묻다
[에정칼럼] 정치는 집 없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나?
    2019년 05월 10일 10:14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해 있었던 6.13 지방선거에서 집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선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투표에 참여할 의사도 더 강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한국정치학회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가거주자의 76.4%가 광역단체장 선거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 비자가거주자는 61.3%가 광역단체장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투표 의향 역시 비슷한 양상이다. 자가거주자의 투표 의향은 88.2%였으나, 비자가거주자의 투표의향은 78.3%였다. 선거관심도와 투표의향 모두에서 자기 집이 있고 없고는 10% 이상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변수가 된 셈이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를 추정해보자면 첫 번째는 당연히 정주성이 높을수록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인과관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주거실태조사에 의하면 한국사회의 평균 주거기간은 8년이며 이 중 자가가구의 주거기간이 11.1년, 비자가가구의 주거기간은 3.4년이다. 평균적으로 선거주기 4년보다 짧은 기간 같은 집에서 머무르는 집 없는 사람들의 지역사회에 관심도는 당연히 한 집에 머무르는 집을 가진 사람들보다 3배 가까이 낮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집’이 가진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사는(live) 곳으로서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주지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집’은 불안정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안전장치이자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부동산 불패신화)에 기반한 재화이다. 집을 가졌다는 것은 지역사회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할 이유가 명확한 이해관계자가 된다는 것이다. 부동산의 자산가치, 즉 ‘집값’이 오르고 떨어지는 문제는 선거를 중심으로 한 지역정치에 참여할 가장 확실한 이유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치는 어떤 효능감을 주는가?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는 부재하지만 정치는 이들의 삶을 생각보다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그리고 거대하게 뒤흔든다. 이러한 시도에는 대부분 “활성화”라는 모호한 단어가 붙곤 하는데 많은 도시정책, 공간전략들의 목표는 어김없이 ‘활성화’이다. 도심 활성화, 지역 활성화, 시장 활성화 등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정치인들은 의원, 단체장 할 것 없이 어딘가를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그것이 정책이 되고 성과가 된다. 공간이 ‘활성화’되면, 높아진 임대료에 누군가의 삶터는 사라진다. 이러한 왜곡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이 주객전도 현상에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유에 기반한 이해관계가 정치 작동의 핵심 이해관계가 되었다는 것은 기후변화와 같은 생태적 위기에도 치명적이다. 집을 소유하고, 집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으로 공인된 가장 안정적인 개인의 생존경로가 될 때, 우리 모두의 관심사인 ‘먹고 사는 문제’는 변질된다. 먹고 살기 위해 집에 투자하고, 투자한 집의 자산가치를 높이기 위해 개발 정책을 옹호하는 유권자가 될 때, 정작 먹고 살기 위한 중요한 기반들은 사라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활성화 된 도심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시설이 생활 기반시설을 대체하여 정주할 수 있는 장소적 기반이 사라지는 현상은 말할 것도 없다. 건설과 토건이 미세먼지 오염원과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심각한 폐기물 문제를 야기하는 거대 산업이지만 어떤 정치적 대안도 결코 건설, 토건 산업의 축소를 주문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성장과 인구감소,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우리가 공동으로 마주한 상황 조건으로 인정할 때, 과연 집을 더 지을 필요가 있는 것인지 우리 정치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집을 지어 경제든 지역이든 활성화하는 것이 지금 정치의 단기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사회경제적, 생태적인 의미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실존적 기반을 부숴버리는 기만을 멈추지 않고서는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로는 분명 가망이 없다. 민주적 개혁세력이라는 현 정부에서도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부동산 문제로 잇따라 낙마하고 심지어 먹고 살려고 그랬다는 뻔뻔한 변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 점에서는 이 전 정부와 크게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는 어떤가? 국회의원 298명 중 116명(41.6%)이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69명(23.1%)은 3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유권자 시민들의 평균 집 보유율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일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단순다수대표제로 선출되는 지역구 의원들이 어떤 이해관계를 대변하게 되는지는 위에서 인용한 집 소유 여부에 따른 선거 관심도 조사를 통해 쉽게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치는 계속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먹고 사는 기반을 파괴하는 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어느새 1년 앞으로 다가 온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치가 어떤 효능감을 줄 수 있는지가 결국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한 가지 중요한 준거점이 될 것이다. 거꾸로 말해 여전히 집을 가진 사람들만 관심을 가지게 되는 선거이고, 그들만 효능감을 갖는 선거 결과라면, 우리 사회는 심화된 불평등과 기후변화 등 지금의 복잡하고 치명적인 위기를 대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지도 모른다.

최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는 시민들이 거대 부동산 임대업체가 보유한 주택들을 수용해 공영화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흐름이 있다. 주택 3천 채 이상을 보유한 임대업체를 공영화 대상으로 삼고, 이를 통해 25만 채 정도의 공영주택을 만들어 내자는 주장이다. 자칫 과격해 보이는 이 주장은 시위 중 진행한 서명전에서 7시간 만에 1만 5천명이 찬성의사를 밝힘으로서 시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4%가 주택공영화를 지지하는 의견을 표명했다.

우리도 이러한 움직임을 만들 수 있을까? 예컨대, 3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의 집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수용하고 수용한 주택을 집 없는 시민들의 삶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쓰자는 주장을 우리 정치에 던져보면 어떨까?

불평등 지수는 높아져 가고 최고의 폭염, 최악의 미세먼지를 마주하고 있는 2019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1년 앞둔 지금 우리가 전개할 토론은 기후변화 시대 집의 의미를 묻고 그 답에 따라 사회를 설계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내년 총선은 집이 없는 사람들도 정치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확인되는 선거가 되어야만 한다. 집을 갖지 않아도 개인의 일상이 안전할 수 있다는 신뢰가 만들어져야 하고 더 이상 집을 새로 짓고 그 집에 투자하는 것으로는 우리가 생존할 수 없다는 신호가 적극적으로 발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정치가 기후변화와 미세먼지와 같은 생태적 위기에 대응하며 진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그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