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노동자들 "이번 산불,
    한전의 관리 부실이 원인"
    한전, 배전 설비 유지보수 예산 삭감
        2019년 04월 10일 03: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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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전 선로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는 전기 노동자들은 10일 한국전력공사(한전)이 강원도 대형 산불 사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풍에 의한 외부 이물질이 전선에 부딪혀 산불이 발생했다는 게 한전의 추정이다. 최근 한전은 ‘미세먼지’를 산불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전기 노동자들의 말은 다르다. 화재를 비롯한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후 전신주 점검과 유지·보수 예산을 삭감하는 등 한전의 관리 부실이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이번 대형 산불이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에 가깝다고 규정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회는 10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전은 외부의 이물질이 전선에 붙었을 가능성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전하며 자신의 관리 부실 책임을 면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정확한 원인 규명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이번 산불은 한전이 관리하는 전주의 개폐기에 연결된 전선에서 불꽃이 발생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진=건설노조

    한전은 최근 실시한 개폐기 안전 점검 당시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했으나, 이 안전 점검이 육안으로 전신주 한 개당 평균 2분간 확인하는 것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산불 원인 등을 수사 중인 경찰은 개폐기와 리드선 간 접합점은 덮개가 씌워져 있는데, 이 덮개 틈새에서 발견된 나뭇가지 등 이물질이 화재의 원인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전기노동자들은 2017년부터 한전을 상대로 노후 전주와 설비, 기기에 대한 전수검사와 선제적 교체 및 보수를 요구를 해왔다. 강원도 산불처럼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배전 현장에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봇대 전도부터, 변압기 폭발, 단전, 누전 등의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고는 당연히 정전, 화재, 감전, 교통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전기 노동자의 산재는 물론, 강원도 산불처럼 대형 산불로 번져 시민들의 안전까지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전기노동자들은 배전 현장의 유지보수를 위한 예산 확보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배전 설비에 대해서는 뇌격, 풍우, 염해 등 자연현상에 대한 완전한 보호를 위해 정확한 점검보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전은 오히려 유지보수에 관계된 배전운영 예산을 삭감했다. 한전은 기존 선로 유지 보수에 사용되는 배전운영 예산을 지난해 4000억, 올해는 2000억 가량 축소했다.

    전국의 전기노동자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한전은 유지보수에 관해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 한전 협력업체 비정규직 전기 노동자 576명을 상대로 4월 7일부터 이틀간 스마트폰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전봇대가 부러지거나 전선이 끊어질 위기에 놓인 배전 현장이 30~50%에 달한다(33.9%)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90% 이상이 유지보수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7.4%에 달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배전 선로 유지보수 공사건수는 줄었다는 응답은 98.6%에 달했다.

    현장 전기노동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강원도 산불 원인으로 지목된 전신주 문제 발생 이후 노후 전신주 육안으로 조사해서 찍은 사진

    한전이 예산 항목에 관한 정보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들은 “깜깜이 예산을 근거로 한전은 오히려 계획수선비 등이 증가되었다는 설명 자료를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선로를 점검하고 노후 전선을 교체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증언은 한전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응답은 실제 현장의 노후 배전 설비가 증명하고 있다”며 “건설노조가 급하게 파악하였음에도 전국 곳곳에 폭발 위험이 있는 누유 변압기와 균열 전주를 셀 수 없이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한전에 ▲산불의 정확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방안 수립 ▲노후 전주와 불량 기자재에 대한 전수점검 실시 및 선제적인 교체와 보수를 통한 안전한 배전 운영 체계 확립 ▲선로의 유지보수에 대한 배전운영 예산 공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송배전 설비와 선로의 독점 사용자로 전적인 관리 책임을 가지는 공공기관으로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전이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한전의 책임을 면키 위해 외부 이물질을 찾는 게 아니라 원인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밝혀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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