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 박지성팀으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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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26일 11: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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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심이었던 아니었던 간에 스위스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간 후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평소와 다르게 나는 말문을 닫았다. “이제 정말 지는구나”라며 절망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어느 때 보다도 더욱 더 간절히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바라며 기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기적이 놀라운 것은 그것이 실제 일어난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난 바로 그 놀라움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단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축구를 좋아하든 아니든, 월드컵을 좋아하든 아니든 붉은 전사들의 투혼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그러했으리라. 투혼 앞에서는 누구나 감동하고 진지해지는 법이니까.

    한국, 충분히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신화도 끝나버렸다. 왜냐고? 우리의 붉은 전사들이 기적을 일으킬 만큼, 또 한 번의 신화를 창출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것이 스위스와의 시합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승리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이 패배한 것은 심판의 오심 때문이 아니다. 난 오심이라고 생각지도 않지만, 박지성의 말처럼 그것마저도 승부의 한 요소일 뿐이다. 핸들링 논란도 그렇고, 오프사이드 논란도 그렇고 모두가 주심의 재량 문제이다.

    그 재량을 압도하면서까지 오심이라고 규정할 명백한 상황은 벌어진 바 없었다. 차범근 해설위원의 말처럼 손은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지 않았다. 떨어져 있었다고 해도 고의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위스 선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규정상 수비수의 몸에 맞았다 해도 오프사이드 선언을 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단순히 한국 수비수의 몸에 맞은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한국의 다른 수비수에게 패스를 하는 것처럼 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스위스 선수는 그 공을 가로챈 것이고 말이다. 주심의 재량이 발휘되어도 뭐라 할말이 없다고 보는 것이 깔끔하다고나 할까.

       
    ▲ 24일 새벽(한국시간) 독일 하노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G조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과 스위스의 선수들의 표정이 대비되고 있다.(하노버=연합뉴스)
     

    골 결정력 부족

    한국의 패인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골을 못 넣었기 때문에 진 것이다. 스위스 전에서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특유의 스피드와 압박이 살아난 듯이 보였다. 그래서 “이길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갖게끔 했다. 그런 순간에도 “그것이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라는 우려가 함께 들기는 했다.

    하지만. 축구는 결국 골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기니까 말이다. 난 한국이 오심을 탓하려면 적어도 오심 논란이 있던 그 판정 전에 한 골이라도 넣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오심 논란이 선수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것마저 넘어서야 하는 것이 바로 냉혹한 승부 세계의 법칙임을 부정할 수 없다.

    축구의 승부의 세계에서는 오심을 탓하는 “약한 자의 슬픔 보다 어쨌든 골을 넣고야 마는 강한 자의 고뇌가 더욱 소중한 법”이며, “강한 자가 골을 넣는 것이 아니라 골을 넣은 자가 강한 자”이기에 그렇다.

    박주영 선발 기용 실책, 안정환 투입 늦었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 틀림없는 아드보카트는 선제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나름대로 파격적인 선발 라인업을 짜고, ‘K리그 골잡이’ 박주영을 선발로 출장시켰다. 다소 충격이었다. 박주영이 과연 우람한 체격과 강한 체력으로 무장한 스위스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또 박주영이 큰 경기가 주는 엄청난 부담을 견뎌낼 배짱이 있을까도 의심스러웠다.

       
    ▲ 24일 새벽(한국시간) 독일 하노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G조 마지막 경기에서 박주영이 볼을 지켜보고 있다.(하노버=연합뉴스)
     

    난 애초 선제골을 넣기 위해서는 아드보카트가 했던 것처럼 공격수를 늘리되, 중앙에 조재진-안정환-박지성 라인을 구축하고, 양쪽 날개에 설기현과 이천수를 배치하는 것이 최선의 카드라고 생각했다. 토고와 프랑스 전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카드였던 데다가, 다른 선수들과의 기량 등의 차이를 감안했을 때 그들의 경험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스위스전을 지켜본 호주의 한 축구평론가도 나와 같은 판단에 안정환을 초반 투입하지 않은 것은 실책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안정환이 골 결정력을 확보한 무게감 있는 스트라이커로 알려져 있음으로 전담 마크맨을 두지 않을 수 없고, 그럼으로써 조재진을 포스트로 세워두면 측면에서 중앙으로, 후방에서 전방으로의 침투 공간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가 달랐던 점

    역시 전반전에 보인 박주영의 플레이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렇다면 아드보카트는 토고 전과 마찬가지로 후반전에 바로 안정환을 투입했어야 했다. 그러나 안정환은 20분이 지나서야 수비수를 대체하여 들어왔고, 설기현은 또 다시 박주영의 측면 돌파가 몸싸움에 밀려 좌절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들어왔다.

    토고와 프랑스 전에 성공했던 용병술이 박주영이라는 카드를 축으로 망가져버린 것이었다. 난 아드보카트라면 히딩크가 윤정환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국내 여론을 수용하여 박주영을 23명 엔트리에 포함시키되,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을 줄 알았다. 설사 출장시켜도 16강 진출이 일찍 확정되어 여유가 있는 시합에 출장시킬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박주영을 ‘과소평가한 나의 착각’과 박주영을 ‘조기 (과대) 평가해버린 아드보카트의 오판’에 의해 빗나갔다. 과소평가와 조기(과대)평가의 괴리가 바로 한국패배의 주요한 요인이라고 하면 과장된 것일까?

    부언하면, 선제골을 먹었던 과정에서 박주영의 반칙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그 반칙은 꼭 해야 했던 것이었을까? 이미 공을 갖고 돌진하는 스위스 선수의 앞에 김동진을 비롯한 다른 한국 수비수가 전선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박주영의 천재성도 경험을 더 쌓아야만 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고 할까.

    골은 수비형 미들필더와 수비수의 발끝에서 시작된다

    난 이번 스위스전을 끝으로 한국팀을 보며, 한국이 다시 한 번 신화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골 결정력을 근저에서부터 높일 수 있는 수비형 미들필더와 수비수의 실력 향상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대체적으로 상대방의 공을 빼앗아 제일 먼저 공을 갖게 되는 것은 수비형 미들필더 혹은 수비수이다.

    이것은 골을 넣기 위한 공격의 시작이 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어떤 패턴과 방법으로 골을 넣기 위한 작업을 할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베컴이 수비형 미들필더로 기용되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던 것이나 수비형 미들필더를 볼란치(방향타)라고 부르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 24일 새벽(한국시간) 독일 하노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G조 마지막 경기에서 아드보카트감독이 주심에게 항의하고 있다(하노버=연합뉴스)
     

    베켄바우어를 ‘카이저’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러한 맥락이고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노장 최진철과 김남일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이영표의 풍부한 경험에 바탕한 능수능란함에도 불구하고, 김동진의 과감한 공격 가담에도 불구하고, 이호의 죽기 살기 뛰어다님에도 불구하고 수비형 미들필더와 수비수들에서부터 시작되는 체계적인 공격 작업을 선보이지 못했다.

    여기에 송종국, 이영표, 김남일, 이을용과 김태영, 홍명보, 최진철이 포진했던 2002년 한국팀의 미들필더와 수비 라인과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차이가 한국팀을 박지성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 적어도 나에게는 – 2002년에 비해서도 중량감이 느껴지는 위협적인 팀이라고 평가할 수 없게끔 했던 것이었다.

    컨디션이 얼마나 나빴는지는 모르지만, 스위스전에서 송종국과 이을용이 출장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내파와 해외파의 기량 차이가 너무 현저하고 이것이 한국팀의 커다란 약점이었다는 월드컵 현장을 지켜본 해외 축구 전문가들의 평가를 빌리자면, 이들로도 충분치 않았다고 봐야 하리라. 그래도 송종국과 이을용이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지만.

    한국 축구, ‘박지성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축구는 ‘홍명보팀’이네, ‘박지성팀’이네 등을 뛰어 넘어야 한다. ‘지단팀’이라고 불리워졌던 프랑스팀의 생애를 반면 교사할 때에도 그렇다. 키 플레이어 한 선수를 대표팀의 대표선수라고 칭하며, 11명의 투혼을 영웅 한 명의 놀이로 치부할 만큼 한국은 아직 실력이 충분치 않다.

    영웅을 키워내기 위해서라도 한국팀은 누구든지 골을 넣을 수 있으며, 골을 넣기 위한 작업을 자신의 위치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세계의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강팀, 더 나아가 위대한 팀이 될 수 없다.

    그간 들어보면 자신의 아들을 공격수로 선발해줄 것을 요구하며, 축구부 감독에게 ‘와이로(뇌물)’를 쓰는 학부모가 있었다고도 한다. 축구가 표면적으로는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축구의 스타가 주로 공격수들이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차범근 같은 스트라이커는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이다. 다른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강팀이 따로 있는 것은 일정한 수준을 갖춘 선수들을 중심으로 골을 넣기 위한 작업에 능한 팀을 만들어내느냐 아니냐에 승부의 관건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 수비형 미들필더와 수비수의 양성이 있고 말이다. 골로 승부가 나는 축구이지만, 골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제대로 시작하는 선수들이 풍부한 팀의 육성, 이제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속상하지만 월드컵을 뒤로 하고, 이제 8~9월에 있을 아시안컵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길 바랄 뿐이다. 가진 만큼 최선을 다한 우리 태극전사들에게 소리친다. “그대 나의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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