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
    [행복칼럼] '음미하기'와 '몰입경험'
        2019년 03월 27일 12: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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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

    시끄러운 사생활 파문 때문에 남자주인공을 싫어하는 많은 이들의 발길을 영화관으로 향하게 한 영화의 대사다. 사실 모히또는 칵테일의 한 종류고, 몰디브는 우리나라 신혼부부가 가장 선호하는 신혼여행지로 장소를 가리키는 이름이니 “몰디브에서 모히또 한잔”이 맞는 말이다.

    강의를 하다 보면 청중 중에는 몸은 강의실에 있는데 마음은 모히또 한잔 마시러 몰디브에 가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마디로 유체이탈 상태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없는 사람이 적지 않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딴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2007년 혼자 떠난 프랑스 여행에서 ‘쪽빛 바다’라는 뜻의 코트다쥐르(Cote d’Azur)를 찾았다.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는 프랑스 최고의 여름 휴양지인 이 지역엔 우리에게 친숙한 니스와 칸느, 모나코가 자리하고 있다.

    니스에서의 일정 중 하루를 빼서 생폴드방스(Saint paul de vence)를 찾았다. 중세시대에 돌로 지어진 건축물이 성곽에 둘러싸여 있는 역사도시다.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아틀리에로 가득차 있어 사방팔방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예술작품이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힌다는 명성에 손색이 전혀 없었다. 샤갈은 이곳을 몹시 사랑하여 노년에 이곳에서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한다. 지금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이곳 묘지에 가족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샤갈 외에도 르느와르, 마네, 마티스, 피카소, 모딜리아니와 같은 많은 예술가의 사랑을 받았던 곳이다.

    생폴드방스(Saint paul de vence)

    남프랑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니스의 쪽빛 바다도,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풍스런 생폴드방스도 아니었다. 생폴드방스에서 중세시대로의 시간여행을 끝내고 서둘러 니스로 돌아왔다. 니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전망대가 있는 언덕길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을 보니 이미 해가 기울어 자칫 해지는 광경을 놓칠 것 같았다.

    숨이 턱에 닿도록 헉헉 대며 전망대에 섰다. 노을의 붉은 빛으로 물든 니스 바다를 넋 잃고 바라보았다. 그것도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해지는 광경을 놓칠세라 그렇게 힘들게 뛰어서 올라와 놓고는 아주 잠시 눈길을 주었을 뿐 멋진 일몰을 눈앞에 두고서 다음날 칸느로 갈 때 기차로 갈까 버스를 탈까를 생각에 빠졌던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이번만 그랬을까

    아니다. 그렇게 먹고 싶어 차까지 몰고 가서 사온 맛난 햄버거를 먹으며 저녁엔 뭘 해 먹나 생각에 빠져 정작 햄버거의 맛은 느끼지도 못한 채 어느새 식탁 위엔 빈 포장지만 남아 있기 일쑤다. 연신 시계를 보며 라디오 방송을 기다리다가 막상 시작될 때면 급하지도 않은 그릇 씻느라 물소리에 그만 듣고자 했던 멘트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음미하기와 몰입 경험

    백일몽에 빠져 현재에 온전히 있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따로 국밥인 상태로 살 때가 많다. 행복한 기분은 행복의 필수 요인으로, 행복한 감정을 자주 느끼는 것 못지않게 행복한 감정이 지속되는 게 중요하다. 감정은 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한 번 행복감, 영원한 행복’이 불가능하다. 방부제를 쓸 수도 없고 보온병에 저장할 수도 없고…

    그럼 무슨 방법이 있을까 바로 ‘음미하기’다.

    음미란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강화시키고 유지시켜 주는 생각이나 행동이다. 음미는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음미하며 먹느냐가 중요하다. 비싼 조각 케이크가 미각을 충족시키지만, 천천히 부드러운 식감을 즐기면서 먹는 모닝 롤 하나가 하루의 시작을 즐겁게 한다.

    감각에 주의를 집중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음미 습관을 기르는 핵심적인 방법이다. 연구결과 초콜릿을 먹는 감각 체험에 주의를 기울이며 먹는 사람들이 먹는 동안 주의가 분산된 사람들보다 즐거움의 정도가 더 컸다.

    행복감의 빈도와 강도에 영향을 미치는 음미하기를 일상화하려면 동기와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 마음은 줄기차게 끼어드는 생각들로 넘쳐난다. 오죽하면 우리 조상들이 ‘오만가지 생각’이라고 말했을까. 내가 생각을 주도하는 것 같지만 착각이다. 끓는 죽처럼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올라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끌려 다닌다.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는 마땅히 깨어있어야 할 정도에 비해 절반만 깨어있다.”라고 말했다. 깡패 같이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생각을 잠재우고, 생각을 주도하기 위해선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음미하기를 하기 위해선 우선 ‘딴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 다음 의도적으로 의식과 주의를 현재 자신에게 집중한다.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현재의 순간에 깨어있을 수 있는 요즘 가장 핫한 방법으로 ‘마음 챙김(mindfulness)’이 있다. 마음 챙김이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감각, 느낌, 생각들을 의식하며 몸과 마음이 하나로 결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음미하기에 딱이다.

    마음 챙김을 바탕으로 한 건포도 명상(raisin meditation)이 있다.

    건포도 하나를 처음 보는 물건 대하듯이 호기심과 관심으로 바라본다. 주의를 기울여 건포도 겉면을 자세히 살펴본다. 건포도를 만지면서 질감, 냄새, 느낌을 알아차린 후 천천히 건포도를 입에 넣는다. 입 안의 건포도에 감각을 집중하여 천천히 깨물면서 맛을 음미하고 감촉, 냄새를 알아차린다. 건포도를 씹고 삼키면서 입과 목의 감각과 움직임을 느끼고 관찰한다. 이 과정에서 신체 감각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명상 활동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이 있으면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 뒤 다시 건포도로 주의를 기울여 건포도에 대한 감각에 집중한다.

    건포도 명상에서 하듯 일상적인 활동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생각을 멈출 수 있다. 그 순간의 경험을 알아차리면 자동적 생각과 감정에 끌려 다니지 않게 되고, 자유로워져서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깨어 있다 보면 여유가 생기는 이유다. 그 결과 내 의도대로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이 가능하다.

    마음을 다해 온전히 즐기면서 현재를 음미하는 상태는 전적인 몰두가 특징인 몰입경험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보다는 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을 때 행복감이 더 크다.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은 몰입이 행복의 중요한 비결임을 나타낸다. 음미와 몰입경험은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 주고 풍부함과 강렬함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현재를 즐기는 사람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프랑스 여행 이후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식사할 때는 TV 끄고 밥만 먹는다. 반찬을 먹을 땐 한 번에 한 가지씩 맛을 음미하며 먹는다. 한 번에 여러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착각에서 빠져 나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 전화할 때 컴퓨터나 서류를 보지 않고 통화 내용에만 집중한다.

    언젠가는 강의실에서 마음만 몰디브에 보내지 않고, 몸과 마음 함께 몰디브로 가서 비취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해변에서 남부럽지 않게 시원한 모히또 한 잔 마시리라.

    모래 한 알에서 세계를 보고
    들꽃 한 점에서 천국을 보니
    네 손 안의 무한을 움켜쥐고
    순간 속의 영원을 놓치지 말라.”

    –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를 꿈꾸며’ 중에서 –

    필자소개
    주혜주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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