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다국적기업의 '야만적 착취'
By tathata
    2006년 06월 21일 11:11 오후

Print Friendly

빛바랜 투쟁조끼들이 삼성동의 화려한 건물 코엑스 옆 아셈타워 앞에 출현했다. ‘부당해고 철회하라’는 글귀가 이제는 희미할 정도로 조끼는 낡아 있었다. 하지만, 아셈타워 38층에 위치한 라파즈한라의 사무소를 향해 내지르는 화학섬유연맹 조합원의 함성은 처절했다.

동해시에 사는 최철규 화섬노조 우진산업지회 조합원(37)은 20일 처음으로 서울 삼성동 땅을 밟았다. 코엑스에 전시회나 쇼핑, 영화관람 그 어느 것을 즐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가 다녔던 우진산업의 원청회사인 라파즈한라의 게르하르트 뢰저 사장을 만나러 왔다.

   
▲ 21일 화학섬유노조 조합원들이 라파즈한라 영업소가 위치한 삼성동 아셈타워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집회를 개최했다.
 

라파즈 한국상륙 후, 정리해고 밥 먹듯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인 라파즈(Lafarge)는 시멘트부문 세계 2위의 업체로, 외환위기 때인 지난 1999년 한라시멘트를 인수해 라파즈한라를 설립했다. 라파즈한라는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강릉시와 광양시에 공장을 두고 있다. 2003년 12월 말 현재 7,705억원의 총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출액 4,776억원, 당기순이익 678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라파즈한라가 한국시장에 진출한 이후 단행한 것은 기존에 한라시멘트가 맡아온 업무를 하나씩 하청업체로 내주고, 정규직 노동자를 하청업체 노동자로 내몰거나 아웃소싱 비정규직으로 대체한 일이었다. 현재 라파즈한라는 20여개의 사내하청 업체를 거느리고 있으며, 하청업체의 대표이사는 한라시멘트의 간부급 이상의 직책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라파즈한라는 정기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시행하는데, 정규직 노동자에게 명예퇴직이나 하청업체 노동자로 취업하거나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화섬노조 관계자에 의하면, 정규직 노동자가 명예퇴직을 거부할 시에는 6개월여의 기간 내에 정리해고를 통보하고, 명예퇴직을 수용하면 하청업체 직원으로 2년동안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80%를 지급해줄 것을 약속한다. 현재 하청업체 노동자 가운데는 과거 한라시멘트나 라파즈한라에서 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던 이가 상당수다.

라파즈한라의 20여개 하청업체 가운데 하나인 우진산업은 석회석을 분쇄한 후 덤프트럭을 이용하여 항만으로 수송하는 일과 시멘트를 제조하는 기계의 연료를 투입 · 운반하는 일, 그리고 공장 내의 석회석 분진과 찌꺼기를 청소하는 일을 담당한다.

초과근로 200시간, “출근시간은 있어도 퇴근시간은 없었다”

지난 2003년에 우진산업에 입사한 최철규 씨는 라파즈한라 입사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적인 기업 라파즈에 들어간다”며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는 ‘세계적 기업’에서 최저임금보다 50원이 많은 시급 3,150원을 받으며,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을 근무했다. 그는 대형1종 면허증은 물론 트럭, 자동차 정비 자격증도 소지하고 있는 ‘기술자’다.

   
▲ 라파즈한라 하청업체 우진산업은 한달 평균 150~200시간의 초과근로를 노동자에게 ‘강요’했다.
 

“출근시간은 있어도 퇴근시간은 없었습니다. 밤 12시 퇴근은 기본이고, 1시나 2시에 퇴근하는 날도 허다했어요. 그러고도 아침 8시면 일어나 출근했습니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사장에게 ‘더러워서 일 못 시켜먹겠다. 너희들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널렸다. 그런 식으로 일할 거면 그만 두라’며 욕설을 들어야 했고, 그런 말이 떨어지는 날이면 꾸역꾸역 일을 했습니다. 가족들과 오붓하게 식사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지만, 가정이 있는 가장이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채희진(41) 우진산업지회장의 말이다.

우진산업 노동자들은 입사하기 전 사장으로부터 “‘하루 8시간 근무가 기본이고, 일만 조금 더 열심히 하면 한 달 150만원은 손에 쥘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조금’이라는 정도가 한달 초과근무가 작게는 150시간에서 많게는 200시간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한 달 내내 쉬는 날은 단 하루였다. 24시간 3교대인 정규직 노동자는 주5일제 시행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 쉬지만, 이들은 주말 내내 일했다. 한 달 하루 쉬는 날도 ‘월차’의 형식을 빌어 사장의 ‘눈치’를 보며 겨우겨우 쉴 수 있었다. 최 씨는 “행여나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회사에서 전화가 와 ‘시멘트를 날라야 한다’며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그럴 때면 새벽에도 일어나 회사로 출근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우진산업의 사장이 말한 150만원 급여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노조가 공개한 이 회사 한 노동자의 임금명세서를 살펴보면, 시급 3,150원을 기준으로 주 44시간을 근무했을 때 기본급은 78만1,200원이며, 연장근로 143시간, 주휴근로 24시간, 공휴근로 8시간, 심야근로 33시간으로 무려 208시간을 초과근무해 87만8,850원을 수당을 받았다.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노동시간인 셈이다.

노조설립 후 면담도 않고 위장폐업

그래서 노동자들은 지난 3월 7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최소한의 권리라도 보장받아야 했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하지만 우진산업의 김 아무개 사장은 노조설립 25일만에 회사를 폐업했다. 노조와 면담은커녕 교섭 한 번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그는 우진산업의 장비를 라파즈한라의 다른 하청협력업체에 팔아넘기고 회사를 정리했다. 21명의 조합원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남은 조합원 가운데 9명은 노조탈퇴서를 쓰고 다른 하청업체에 입사했으며, 현재 남은 조합원은 11명.

그들은 이제 실질적인 사용자인 라파즈한라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라파즈한라는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무관하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라파즈한라는 우진산업의 노동자에게 직접 작업지시를 하는 등 관리 감독 업무를 한 점으로 미뤄볼 때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최 씨는 “라파즈한라의 정규직 직원으로부터 작업허가서와 작업지시서를 받고 일을 했는데, 이제 와서 하청업체라고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며 억울해 했다.

우진산업지회 노동자들은 이날 아셈타워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하려 했지만, 강남구청 직원들의 저지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들은 이틀 후에 다시 서울 삼성동으로 집결할 계획이다. 22일에는 현재 유일한 생계비인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강남구청 직원들이 화섬노조의 집회를 팔짱을 낀채 지켜보고 있다.
 

노동자들은 다시 상경해 38층의 높이에서 노동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라파즈한라를 땅으로 불러세워 ‘담판’을 짓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들은 라파즈한라가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 문제를 해결하고, 고용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다시 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겁니다.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아요. 한달 200시간은 많으니 대화로 조금씩 줄여나가 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예요. 가족들이 한 달에 외식이라도 한번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말이예요.”

정말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가 삼성동 마천루에 조금씩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국에 이런 땅도 있었네요. 그런데 하나도 즐겁지 않아요. 저희가 뼈 빠지게 일한 돈으로 이런 좋은 곳에 회사를 차려놓고 노동착취하고 위장폐업 시킨 회사가 있는데 무엇이 신기하겠습니까. 억울하고 답답할 뿐이죠.”

환경영향평가 이행도 않아 환경부 지적 

라파즈한라는 지난 2004년에 환경재단에 가입해 매년 5천만원을 기부하고 있으나, 지난해 12월 녹색연합과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 합의내용 이행여부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 협의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라파즈한라는 △백두대간의 핵심구역인 붉은자병이골에 산사태를 발생시켰으며 △수질보호를 위해 지적된 오니(하수처리 또는 정수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 퇴적현황 조사를 시행하지 않았고 △비산먼지와 분진으로 주변 식물 생장을 저해하고 △환경영향평가 협의조건은 제대로 이행 않은 채 추가개발을 신청한 것으로 지적됐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