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여성단체가 나서야 하는 이유들
        2006년 06월 21일 1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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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정권의 역점사업 중에 국민연금 개혁(?)이 있다. 노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이 된 유시민은 “금년 중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타결지어서 내년 대통령선거 때는 어느 정당도 국민연금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는 상황으로 가야 한다(4월 3일, KBS)”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한다.

    노 정권의 주장은 이렇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현행 연금 제도가 계속될 경우 연금기금이 고갈될 것이므로, 더 많이 내고 조금 덜 받는 연금으로 바꾸어야 한다.”

       
    ▲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노 정권의 주장대로 ‘적게 내는 것’이 부당하거나 잘못된 정책인가? 현재의 연금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적게 내는 것’은 연금 도입 초기의 불가피한 과도 정책이다. 즉, 연금 혜택을 못 받는 자신들의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하면서, 자신의 공적 연금을 붓는 가입자의 이중부담을 고려한 정책이다. UN 통계에 따르면 현재의 노인 세대 생활에 대한 한국의 국가 기여도는 0.0%이다. ‘더 많이 내도록’ 하려면, 먼저 가입자들의 사적 부양의 부담을 공적으로 덜어주는 정책을 선행하여야 한다.

    “국민연금을 용돈으로 전락시키지 않겠다”는 공약을 정반대로 이행하고 있는 노 정권의 주장대로 우리 국민은 연금을 많이 받고 있는가? 유시민 장관은 국민연금 수령액을 낮추더라도 기업연금(퇴직금) 등을 통해 소득 보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비정규직 중 퇴직금을 받는 비율은 남성이 19%, 여성이 12%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비정규직에 대한 국민연금 적용률은 퇴직금의 두 배 가량이 돼, 미미하나마 비정규직의 노후 준비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낮추려면 먼저 비정규직을 없애거나 비정규직의 기업복지를 정규직과 같은 수준으로 올려 놓으면 된다.

    지금대로 가면 기금이 고갈된다는 둥 악성 루머는 정부의 재정 기여가 현재처럼 제로에 가까운 상황을 전제로 한다. 정부는, 금전을 맡았다 내주는 전당포나 연기금으로 투기 놀음을 하는 헤지펀드가 아니라, 국민 노후생활의 공적인 보장자이다. 따라서 국민을 협박하는 기금 고갈론에 은근슬쩍 기댈 것이 아니라, 유럽 나라들처럼 재정 기여를 늘릴 계획을 짜야 한다.

    이처럼 얼토당토 않은 국민연금 개악이 몇 년 동안이나 저지되고 있는 것은 시민단체들의 싸움 덕택이다. 외국에서는 연금의 최대 가입자인 노동조합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정부안에 대한 세세한 비판이나 여론을 모으는 행동을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이 주도했다.

    국민연금의 개악 저지와 공공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특히 여성단체가 더욱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첫째,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보장이 부실화될 경우, 결국은 가구원의 추가 노동과 추가 수입에 의존하게 될텐데, 그러한 추가 노동 즉 능동적 선택이 아니라 필요 수입에 의해 강제되는 질 나쁜 노동은 가구 내 취약자인 여성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공적인 부양과 보조가 부실화된다는 것은 가사노동의 증대를 불러오고, 이 역시 하층 소득계층의 여성에게 전가되고 집중될 것이 뻔하다. 결국 국민연금의 개악은 전근대적인 가사노동을 온존시키고, 여성 노동의 또 하나의 목적인 자기 개발과 자기 실현을 좌절시키는 반여성정책이다.

       
    ▲지난 4월 6일 열린 ‘어머니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 기자회견 (사진=참세상) 
     

    지금까지 여성단체는, 여성의 사회 참여를 늘리기 위한 여성할당제의 도입, 가부장적인 호주제를 폐지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여성단체의 선도적인 노력에 힘입어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틀과 문화적 배경이 조성되고 있지만, 실제 그 수혜 여성은 많지 않다.

    여성할당제가 거의 전면적으로 시행되더라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고등교육 이수자이고, 성인 여성인구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또, 가족법의 개정에 의해 재산분할 분쟁 등에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여성도 중산층 이상의 1% 미만에 그친다.

    요즈음 여성단체들이 정력적으로 펼치고 있는 보육 및 급식의 공공화 운동은 우리 사회의 블랙홀을 메꾸어 가는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다. 주제 넘게 조언하자면, 이제 여성운동의 보편성은 취업 여성의 70%를 점하는 비정규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과 국민연금과 같은 공공복지의 확대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이 글은 시민의 신문(ngotimes.net)에도 함께 실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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