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사노위, 탄력근로 기간
    ‘최대 6개월로 확대’ 합의
    민주노총 맹비판 "노동자 건강, 임금, 노동 주도 팔아먹은 개악 야합"
        2019년 02월 19일 08: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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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고 도입요건 완화에 19일 합의했다. 그러나 노동계가 그토록 요구했던 과로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권, 임금보전 방안 등에 대해선 구체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추상적인 내용에 머물렀다. 사실상 ‘장시간 노동 합법화’라는 경영계의 오랜 요구를 문재인 정부가 온전히 받아 안은 합의인 것이다.

    탄력근로제 확대 여부를 논의해온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는 이날 오후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9차 전체회의를 하고 합의문을 공개했다.

    합의 내용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경영계의 요구이자 쟁점이었던 도입요건 완화도 합의문에 담겼다.

    합의문은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해서는 주별로 근로시간을 정하고 최소 2주 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노동자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서면합의 시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천재지변, 기계고장,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 정해진 단위기간 내 1주 평균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주별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 단위로 정해지던 노동시간을 주 단위로 변경한 것은 이번 합의의 최대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탄력제의 요건 완화는 노동시간의 사전 확정 요건 자체의 벽을 허무는 조처로 사용자의 노동시간 재량권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여기엔 무시무시한 칼날이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주 단위 재량권이 부여되면 1주 안에서는 날짜별로 사전 고지나 노사합의, 협의에 구애 받지 않고 사용자의 판단과 재량에 따라 노동시간을 달리 정할 수 있다. 당연히 노동시간의 불규칙성이 증대한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주와 주 사이에 경계는 정산기간에 지나지 않아 1년 내내로 무한확장도 가능하다. (노동시간 주 단위 변경은) 기간 확대보다도 무시무시한 영향”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런 요건 완화는 탄력제의 기본원리인 사전에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인 변경에 적용되는 제도의 틀을 넘는다. 재난 대응 등에나 적용될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일상에 적용해 준 격”이라며 “무엇보다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한참 더 기울이는 수준의 폭발력”이라고 밝혔다.

    ‘2주 전 노동자에게 통보’ 등 언뜻 안전장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업무량 급증’, ‘불가피한 사정’, 근로자 대표와 ‘협의’ 등의 표현을 곳곳에 적시하며 사용자가 재량껏 노동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뒀다.

    경영계가 요구했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도입요건 완화가 모두 이뤄진 반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인한 과로사 방지 등을 위한 방안은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합의문에 포함된 조항은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의무화’ 정도다. 이 마저도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 변경이 가능하다. 노동조합이 없는 미조직 사업장은 얼마든지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의무화라는 ‘원칙’을 걷어차도 법 위반이 아니게 되는 셈이다.

    이 밖에 노동시간위는 합의문에 “노사정은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 정도의 문구를 넣었다. 탄력근로제 확대가 노동자의 과로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단위기간 확대만 합의한 것이다.

    임금보전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합의문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자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임금하락을 방지할 안전장치 마련은 개별 사용자의 몫으로 미룬 것이다.

    민주노총, 강하게 반발
    “유연성 확대, 임금보전 불투명,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민주노총은 “정부, 경총, 한국노총이 결국은 야합을 선택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노동시간을 놓고 유연성은 대폭 늘렸고, 임금보전은 불분명하며,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넘겨버린 명백한 개악”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번 야합으로 사용자단체는 단위기간 확대, 주별로 근로시간을 정함, 실질 강제력 없는 임금보전 방안 등 원하는 내용 대부분을 얻어낸 대신, 노동자는 건강권과 자기주도적인 노동, 임금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사용자 민원을 받아 주당 노동시간 52시간 상한제의 엄격한 법 적용은커녕 탄력근로제 개악 시도로 오히려 무력화시켰다”고 질타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도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과로사 합법화의 길을 열어 줬다”고 혹평했다.

    정 대변인은 “재계의 민원을 일방적으로 정부여당이 접수한, 재계의 입맛에만 맞춘 합의안”이라고 규정하며 “이로 인해 노조가 없는 사업장 등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은 보호 장치가 없는 장시간 노동에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애초 여야가 합의한 대로 주52시간제 도입이 완료될 시점에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무리한 입법 추진은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만을 키울 뿐이며 노동존중 사회라는 정부의 국정 목표의 방해가 될 뿐”이라며 “시대와 국정목표를 거스르는 탄력근로제 확대 입법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래는 경사노위 합의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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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은 주 최대 52시간 제도의 현장 안착을 위해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한다.

    2.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으로 우려되는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함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다.

    아울러 노사정은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

    3.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해 도입한다. 이 경우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해서는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사전에 확정하는데 애로가 있음을 고려해 주별로 근로시간을 정하고 최소 2주 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노동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다만 서면합의 시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천재지변, 기계고장,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 정해진 단위기간 내 1주 평균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주별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사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노동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4.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자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

    다만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5. 위 2부터 5까지의 내용은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에 있어 그 단위기간 전체에 대해 적용한다.

    6. 위의 사항들은 주 최대 52시간제 시행에 맞춰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7. 정부는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도입과 운영 실태를 향후 3년간 면밀히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파악하며 제도 운영에 관한 상담 및 지원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에 전담기구를 설치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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