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업그레이드 된 강금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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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14일 04: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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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3달간 했던 몇 가지 조치와 기조는 많은 분석가들을 당황하게 했었는데, 리영희 선생이 ‘무식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2003년 6월의 일이다.

무지와 천박

무식한 것인지 용감한 것인지, 근본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중심성이 너무 강한 것인지,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너무 생각이 많은 건지, 묘하게 선을 타는 개념의 장난을 넘어서면,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실체는 무식에 있다는 것이 리영희 선생의 지적인 것 같다. 한미 FTA 초강력 집행만을 놓고 보면 리영희 선생의 지적이 일견 타당해 보인다.

2.
강금실 변호사에 대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보는 별로 없다. 물론 한 다리를 건너면 그의 대학 친구에서부터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 들어가 있던 이런저런 사람들, 그리고 강금실과 정치적으로 손을 잡게 되었던 이계안 의원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을 알고 있고, 사소한 사생활까지 몇 가지를 알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정확히 말하자면 강금실이 서울시장 후보로 우리 앞에 등장하기까지 나는 그에 대해서 별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판단도 내리지 않았었다.

3.
강금실이 용산 개발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개인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체적으로 여성단체의 중심 이데올로그와 정책통들이 강금실 캠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던 셈인데, 이미 대체적으로 보존으로 가닥을 잡은 미군 기지 이전터를 염두에 두면서 용산 전면개발이 선거 전면에 나선 것은 여성단체의 핵심 브레인들이 생각하고 있던 서울에 대한 이해도와 그들이 염두에 두었던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약간 보여준다.

여성단체 이데올로그들의 서울에 대한 이해도

여러 번의 공청회와 여러 번의 토론 그래서 결국은 이명박 서울시장도 보존하기로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이를 뒤집는 용산 개발 계획은 이명박은 물론 오세훈보다도 더 적극적인 개발파에 강금실이 서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이게 서울시의 여러 가지 정책 흐름에 대한 분석 실패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자신들의 꿈을 정책으로 내보인 것인지를 판단하는데 나는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했다.

4.
통계로 딱 제시하기는 어렵기는 한데, 몇 가지 단서가 되는 숫자들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 현재 주요한 여성단체 대표와 대표급 활동가들의 남편의 90% 정도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또 다른 사람이 포스코와 같은 국영기업 시절의 거대 기업들이 부인회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석한 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사진=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
 

포스코의 퇴직한 임원급 부인들은 ‘장미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지금도 이권단체처럼 움직이고, 사장급 부인들은 ‘민들레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움직인다. 현재의 주류 여성단체가 열린우리당의 민들레회에 해당하는 것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어렵기는 하지만, 강금실 캠프의 이데올로그와 그들을 움직이는 실세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첫 번째 단초를 제공한다. 따져보자면 강금실은 열린우리당 민들레회의 실무자들과 손을 잡은 셈이다.

모든 여성단체가 열린우리당의 외곽조직 정도일 뿐인가? 물론 실제로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강금실은 여당 버전 ‘민들레회’와 손잡은 것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열린우리당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단체들이 분명히 있기는 있다. 그리고 용감하고 꿋꿋하게 뚜벅뚜벅 한치의 흔들림과 의심도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극우파 여성단체들이 있기는 하다.

여성단체를 정당의 외곽단체 정도로만 활용하는 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다. 무궁화의 꽃과 같은 또 다른 단체들이 한나라당 활동을 여성의 시각으로 뒷받침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문제라고 할 수는 없기는 하다.

장미회야, 민들레회야 아니면 무궁화의 꽃이야? 어려운 질문이기는 한데, 열린우리당의 민들레회라도 건설자본의 총결집지인 한나라당을 뛰어넘을 정도로 초강력 서울재개발 버전을 제시할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그것도 강금실의 이름으로?

건설자본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라는 관점에서 사실상 지난 3년 동안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보다 몇 배는 심각한 건설 중독과 토목사랑을 보여왔다. 그야말로 ‘열린건설당’이 정확한 실체일 것 같다.

강금실은 왜 이명박보다 더 강한 개발론자가 됐을까

그런데 왜 그들의 부인도 그렇게 건설을 사랑해? 논리적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여기에서 사실은 캠프의 실무자들을 뛰어넘을 정도로 건설자본에 대한 중독 현상이 강금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새로운 작업가설이 필요하게 된다.

   
▲서울시장 후보 초청 여성정책토론회 ⓒ연합뉴스
 

이미 뉴타운과 강남북 균형개발이라는 이름으로 1,0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재개발로 도시 기조가 잡혀 있는 이명박의 서울에서 강금실은 뉴타운은 뉴타운대로 두고, 보존지역으로 잡힌 용산까지 개발하겠다고 보다 강화된 기조를 잡고, 이걸 형상화시키기 위해서 서울시청까지 이전하겠다고 결국 들고 나오게 된다.

서울시청의 신청사를 조금 더 크게 하거나 조금 작게 하는 것 혹은 이전비용이 고건시장 때 계산했던 1조원이 약간 넘는 돈인지 아니면 실제로 3~4조가 들게 될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사실 말장난에 가깝다.

원래 있던 뉴타운 25개에 다시 25개를 추가하자는 오세훈이 더 건설업자의 손을 잡고 있는지 아니면 그렇게 조그맣게 나누지 말고, 아예 용산 같은 몇 개의 권역중심개발을 통해서 ‘왕창’ 뉴타운 25개 이상의 효과를 한꺼번에 만들자고 하는 강금실의 계획이 더 건설 중심적인 것인지?

오세훈은 그나마 용산 정도는 지키려 했는데

이 질문은 오세훈의 정책이 더 악랄한가, 강금실의 정책이 더 악랄한가라는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강금실의 계획은 원래 서울시 비전 2010에 서울의 마지막 허파로 자리 잡고 있던 두 개 중에 한 개를 무너뜨리게 된다는 분석과 연관시켜보면, 강금실 편의 변화가 더 지옥에 가깝다는 안타까운 점이 있다.

강금실이 서울시장이 되었다면, ‘어린이’ 기준으로는 오세훈의 서울보다는 더 지옥에 가깝게 될 것 같다. 건설자본의 눈으로 보면 오십보백보이기는 한데, 강금실 편이 더 황당했다. 오세훈이 토론 과정에서 자기보다 더 한다는 말을 수차례 하게 된 것은 그래도 자긴 용산 정도는 지킬 생각인데, 강금실은 그 선보다 더 넘어갔기 때문에 오세훈이 당당하게 녹색후보라는 말을 할 수 있던 것이다.

슬픈 것은 동료처럼 알고 지내던 많은 여성운동의 활동가들이 강금실 캠프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강금실에게 조언한 것이 겨우 용산 개발안이었느냐는 것이다. 뭔가 더 철학이 담긴 정책은 없었을까?

5. 이계안 스타일과 이명박 스타일

   
▲이계안 의원과 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사진=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었고, 현대석유화학의 플랜트 건설을 성사시킨 것이 이계안 의원이 월급장이 CEO까지 가게 된 진짜 힘이 나오게 된 동력이다. 그 후에 현대자동차 CEO와 현대카드 회장이 된 과정은 현대그룹 왕자의 난 이후에 세력 배치상 벌어진 오히려 작은 사건에 가깝다.

이계안 의원이 준비한 몇 개의 공약이 있는데, 발표는 했지만 미처 세상에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들이 있다. 몇 개는 괜찮고 몇 개는 아주 황당한데, 포장이야 바뀌었지만 결국은 한강에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과 한강을 준설하자는, 하나의 한강공약은 원래는 이계안 캠프에서 준비된 공약이다.

이명박과 이계안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CEO였고, 정치적 선택도 달랐지만 현대건설에서 꿈을 키우고 생각이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은 콘소시움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에 그냥 관찰하게 되지는 않지만, 새만금 공사와 같은 대형 토목사업으로 현대에서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사업 중의 하나가 경인운하 사업이다.

토목 정치인 이명박 대선 공약 ‘국토 대개조론’ 될 것

이건 일단 시작하면 온국토의 운하화와 연결되지만, 이 최종 목적지는 북한의 주요 강들과 연결시키는 것은 물론 북한의 동서를 관통하는 국토대개조의 최종 종착역인 동서관통 운하이다.

김일성 생전에 북한 해군의 강화를 위해서 동해와 서해로 분리된 해군이 연결될 수 있도록 동서관통운하를 만들고 싶어했는데, 사업이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명박이나 이계안이나 전부 이 대형 토목공사를 착공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는 똑같고, 그래서 겉으로는 전혀 다른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토목공사 위에 살아가는 토목정치인들이다. 경인운하 사업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이 국토대개조를 시작하는 출입구가 한강 하구언에 놓여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두환이 만들어놓은 싱크탱크인 일해재단이 전환되어 만들어진 세종연구소가 마지막으로 경인운하 띄우기 시도를 하기는 했는데, 정부에서도 검토결과 “신통치 않음”으로 결정이 난 상태이다. 공식적으로는 무지막지한 건교부도 이걸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 (속으로는 그래도 어떤 무식한 정치인이 결국 나와서 온 국토를 운하로 바꾸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꿈마저 접지는 않은 것 같다).

   
▲2003년 11월 경인운하 백지화 촉구 집회 ⓒ연합뉴스 
 

이명박은 대선 과정에서 결국 이 국토대개조를 공약으로 들고 나올 건데, 이계안의원도 생긴 거만 다르지 결국은 국토운하사업의 전초부에 해당하는 한강공약을 들고 나왔고, 한강 바닥을 대청소하기 위해서 긁어내기 위한 준설계획도 들고 나왔다. 황당한 공약이기는 했다.

이 국토대개조의 첫 단추 사업 역시 경선 상대자였던 이계안과 손을 잡으면서 강금실의 주요 공약이 되었다. 도시에서는 재건축을 뛰어넘는 부도심 개발사업을 한 축으로, 전국 토목공사의 출발점이 되는 한강을 통한 국토대개조의 토목사업을 강금실은 전부 잡고 있었다.

오세훈은 한강 뒤짚기는 하지 말자고 한 셈이다. 물론 이명박이 결국은 할 것이므로, 오세훈이 하거나 하지 않거나는 사실상 아무런 정보 값이 없기는 하다. 하여간 오세훈은 아파트 정도 짓는 건설자본하고는 손을 잡아도, 진짜 국토대개조로 이어지는 원단 토목자본과는 손을 잡지 않았다.

그게 뭔지 잘 몰랐다고 지금 와서 강금실도 변명을 할 수는 있다.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하지 않았나? 떨어질 선거에 이것저것 내 놓은 카드가 국토 대개조 사업이었던 셈인데, 나빴거나, 무식했거나, 둘 중의 하나인 셈이다. 오세훈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더 커진다.

6. 우리 영어 잘 하는 거 좋아요!

공교육에 대한 립싱크를 좀 한 것과 육아 문제가 중요하다는 감성 터치가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오세훈과 강금실 사이에는 세상에 대한 인식에서 어떠한 차이점도 없다. 물론 강금실은 공교육체계를 흔드는게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실제적인 교육 시스템에서는 별 차이 없다. 그야말로 하는 말이기는 하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강금실이 교육에 대해서 남긴 여러 가지 말을 이미 하고 있는 기존정책과 노무현이 국운을 걸고 하겠다는 소위 “방과후 지옥”이 될 외부 교육기관 위탁에 의한 오후 지옥프로그램인 ‘방과후 학교’ 등과 연동시켜서 계산하면, 남는 건 딱 말 한 다미 밖에 없다.

“여러 분들이 못 사시는 건 영어를 못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어요, 시민여러분?”

강금실은 교육과 관련해서 한 달 동안 이 얘기만 한 셈이다. 교육개편도 영어, 교육행정도 영어, 교육지원도 영어, 결국 서민들과 영세민들이 못 사는 건 영어를 못 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모든 세원과 행정을 집중하겠다.

강금실 서울교육개편안 가장 천박한 시대인식의 산물

한나라당을 포함해서 교육에 대해서 제시된 여러 가지 방안 중에서 가장 천박한 시대인식이 바로 강금실 버젼의 서울교육개편안이다.

   
▲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의 공보물
 

아니, 자기는 영어 잘 해서 변호사 되고, 장관되고, 그리고 천오백만원씩 월급 받는 성공한 사람이 된 건가? 도대체 이 자신의 현실과 인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강남에 사시는 분들은 영어 잘 해서 강남에 사시는 겁니까? 이렇게 질문해보고 싶었다.

선거기간 강금실 한 여러 단어 중에는 하다못해 개발깡패 대변인인 정동영도 예의상 입에 달아주는 ‘개혁’이라는 말도, 할 말 없는데 두목 되고 싶어 안달이 난 김근태가 편의상 입에 달고 다니는 ‘민주주의’도 없었다.

그런 말 한 번 정도 하면 어디 덧나기라도 할 것처럼 강금실은 건설과 영어라는 두 가지 말만 한 달 내내 한 셈이다.

캠프에 들어간 여성단체의 소위 핵심 브레인들이 이제는 아파트에 살고 싶었고, 영어도 좀 잘 하고 싶었다는 작고 소박한 소망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해서 이해하게는 되었지만, 강금실도 그 정도의 생각 밖에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작업가정은 자꾸 날 슬프게 했다.

7. 그런데도 왜 강금실 바람인가?

강금실과 오세훈은 기본적으로 박정희와 같은 정치인 계열에 들어가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미지를 제일 잘 활용한 원조 이미지 정치는 박정희였다. 얼마나 잘 했으면 장충단 공원에서 대중 선생이 생의 가장 절정기에서 가장 멋진 연설들을 쏟아내고 있을 때 많은 여성들이 박정희 잘 생겼다고 뽑아주었겠는가?

노무현은 조금 다르지만, 강금실, 오세훈 그리고 박정희까지 정치인으로서의 전략은 본질적으로는 같다. 지금 강금실을 지지하는 마음이나 그 당시 젊은 정훈장교 스타일의 박정희를 지지하는 지지자의 구조는 같다.

   
▲청계천을 방문한 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사진=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
 

그럼에도 오세훈은 성공하고, 강금실은 실패했다. 그 요인의 분석은 학문이 할 일이라기보다는 점장이의 영역일 것 같다. 그러나 앞에 내세운 정책만 놓고 보면 강금실은 오세훈보다 더 무식한 개발주의 토목자본의 영역에까지 손을 내밀었고, 그런 면에서는 오세훈 보다는 더 천박했다.

최소한 우리말을 아껴쓰자는 염치가 우파의 영역이라면, 영어 못해서 못 사는 것이라는 단순한 교육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강금실의 세상인식은 사실 교육문제에 관해서는 가장 천박한 인식이기도 하고, 이데올로기라고 치면 가장 악질적인 이데올로기였다.

김영삼은 농민들이 못 사는 건 ‘경쟁력’이 없어서 못 사는 것이라고 했고, DJ는 ‘노동유연성’이 없어서라고 말했고, 노무현은 ‘자신감’이 없어서라고 말을 한 셈이다.

강금실은 “영어를 못해서”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게다가 박정희만큼 이미지 정치를 적극 시도했는데, 미완의 흐름이 되었다. 시대의 천박 강금실의 정치인생이 이대로 끝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직 우리 시대는 천박의 초절정에 도달하지 않았고, 훨씬 더 천박해져서 그야말로 쪽박을 차야하는 시기가 올 건데, 아직은 사회에 점잖은 구석이 좀 남아있어서 천박을 상징한 강금실의 천박주의가 실패한 것일 수도 있다.

사회가 더 천박해질수록 정치인으로서의 강금실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강금실의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진짜 강금실이 대변하는 천박주의란 무엇일까?

다음 번에는 정책이 아닌 철학과 문명으로서 강금실이 대변하고 있는 진짜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지금의 강금실은 전혀 무섭지 않지만, 보다 철저한 천박으로 무장하고 다시 등장할 ‘업그레이드 강금실’은 사실 좀 무섭다.

내가 아는 여성단체의 많은 활동가들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남편으로 둔 많은 사람들의 네트워크와는 상관도 없이 젊은 시절을 꿈과 이념 하나만으로 불태우고 스스로를 접으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 꿈을 하나로 묵어낸 결절점 중의 하나인 강금실이 만들어낸 시대의 천박을 보면서 사실 몇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떠오르면서 잠시 가슴이 아프기는 했다.

아니, 도대체 강금실이라는 ‘나름대로 시대의 아이콘’을 들고 할 수 있었던 일이 용산 개발과 한강 개발 밖에 없었고, 영어학원 부흥책 밖에 없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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