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점잖은 시민운동 너무 전투적인 노동운동
        2006년 06월 14일 03: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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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1987년 체제의 해소라는 진단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시 6월이 우리를 찾아들었다. 우리는 어떻게 6월을 맞고 있는가?

    19년 전의 6월이 경찰 봉쇄선을 뚫은 것임에 비해 지금의 붉은 물결은 거대 자본의 이벤트 통제선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이것이 6월의 왜곡이나 변질은 아니다. 1987년 6월은, 그 해 가을의 노동자투쟁과 연대하지 않았고, 그만큼에서 멈추어선 항쟁은 자본의 자유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화연대는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 “열정의 중심에서 반대”를 외친다. 귀 기울여 주는 이 없더라도, 직선제 개헌 서명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외칠 것은 계속 외쳐야 한다.

    6월 10일, 종로거리는 동성애자인권연대 등의 퀴어 퍼레이드에 점거되었다. 봉투나 박스를 뒤집어쓴 동성애자들의 얼굴에는 민주주의의 햇살이 비춰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유권의 부단한 확대가 성소수자들의 ‘다름’을 존중하게 될까?

    근대적 자유권은 재화의 증식이든 사회구성원의 충원이든, 생산력을 소유한 자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소수자들의 배제를 전제한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집단의 온전한 권리는 사회적 쓸모나 합리 비합리를 떠나 인간 자체에 대한 평등한 시각에 의해서만 확립될 수 있다.

    6월 1일, 경기지방경찰청에서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주최한 ‘강제연행 및 사찰 규탄’ 집회가 열렸다. 이근안이 자치경찰로, ‘반체제 불순분자’가 ‘테러리스트 용의자’로, 탄압당하는 사람의 국적이 대한민국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로 바뀌었지만, 사찰과 연행의 대상이 영세사업장의 저임금 노동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의 13.6%(일본의 두 배!)가 외국인과의 결혼이라는 사실은 한반도만의 저항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목적이 다른 것이라면, 주체도 바뀌어야 한다. 재야운동과 학생운동 그리고 자유주의 보수정당이 1987년을 열었다면, 지금의 주역은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평등주의 진보정당이다. 하지만 새로운 주역들은 아직 미숙하다.

    시민운동은 너무 점잖다. 시민운동은, 재야운동의 전근대성에 대한 지양이 아니라, 민중운동의 전투성에 대한 즉자적 반발로 형성된 가상의 ‘시민성’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그래서 시민운동은 신문 사회면의 피케팅 사진꺼리와 이러저러한 사회 현상에 대한 논평 인용처, 무슨무슨 위원회의 들러리, 정치권력의 수혈자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지금의 시민운동은 50년대의 대한노총, 80년대의 한국노총처럼 체제에 도전적이지도 위협적이지도 않다. 파리 시민들처럼 대포를 끌고 나올 용기가 없다면, 시각장애인들처럼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너무 전투적이다. 싸울 때인지 물러날 때인지, 무엇을 목표로 누구를 상대로 싸울 것인지를 가늠하지 않는 전투 지상주의 노동운동의 무딘 칼날은 동료에게 상처를 입힌다. 단위 기업에 대한 단위 노조의 전투는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일자리와 임금 분배의 잠재적 경쟁자인 하층 노동자와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비정규법에 관심 없다”는 민주노총 최고급 간부의 토로는 그들의 전투가 혹시 계급 내부를 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100 대 60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1987년 이전인 100 대 98로 돌려놓지 않고서는 다른 6월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새 6월을 맞을 준비가 돼있지 않다. 호주제를 폐지한 여성운동은 미성년의 성적 권리와 멀쩡한 성년의 성적 자기 결정권마저 부정하고 있고, 민족주의 단체들은 민족 우월성과 혈통 순수성이라는 야만을 고창하고 있다. 새 6월의 기치가 되어야 하는 급진적 구상은 주체 집단 안에서도 소수에 그치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비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재산 중에 무한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미덕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이 끈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시민의 신문(ngotimes.net)에도 함께 실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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