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교육과 기독교의 요람
[그림 한국교회] 청주제일교회
    2019년 02월 08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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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교회, 지자체, 교육청과 함께 교육안전망을 만드는 ‘사단법인 더불어배움’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까닭에 저는 교육문제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자신의 결핍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식교육에 목숨을 건 강남상류층을 풍자한 드라마 ‘SKY캐슬 신드롬’ 덕에 19회와 마지막 20회를 시청하였습니다.

교육 불평등과 무한입시경쟁으로 공교육이 붕괴되고 사교육만능이 된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민낯이었습니다. 최종회에서 자식을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해 물불 안가리던 엄마들이, 본격적으로 입시준비하려고 교육에 최적 환경이라 하기에 SKY캐슬로 이사왔다는 중1 엄마에게 개과천선한 듯 말하는 장면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봤다면 과장일까요? “우리 딸은 고졸이고, 고3 쌍둥이 아들들은 친구들과 스터디해요. 우리 아들은 고3인데 자퇴하고 여행중이랍니다. 우리 애는 중3인데 학원은 밸 꼴릴 때만 나가요.” 이에 이사 온 엄마의 응답은 “이 엄마들 천연기념물이네!”였습니다.

국민들의 무한욕망의 가치관이 바뀌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지 않고서는 실타래처럼 얽힌 교육문제는 입시제도 개혁만으로는 풀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에 개신교 선교 초기에 교육선교에 앞장섰던 한국교회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청주제일교회(그림=이근복)

그래서 이번에 교육도시로 유명한 청주에서 교육과 교회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청주제일교회를 찾았습니다. 충북 청주 최초의 교회인 청주제일교회(담임목사 이건희)는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민노아((Frederick S. Miller)와 전도인 김흥경에 의해 1904년 11월에 초가집에서 시작하며, 지역민들이 유달리 배움에 대한 열정이 크다는 것을 파악하고 교육선교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청천교회에 청동학교, 신대리에 청서학교, 청주읍교회(현 청주제일교회)에 청남학교와 청산여학교(후에 두 학교는 병합하여 청주청남초등학교) 그리고 청신야학, 상당유치원을 운영하고, 묵방교회에 청북학교, 괴산읍교회에 곽신학교를 세워 근대적 교육을 시작한 까닭에청주가 교육선교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청주제일교회가 교육선교를 일관되게 추진한 전통은 1949년과 1953년에 세광중학교와 세광고등학교의 개교로 이어졌습니다. 청주제일교회는 교육운동과 더불어 YMCA와 YWCA를 조직하여 기독교시민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교인이 늘어나자 교회는 청주 영장(營將)의 관아와 옥사가 있었던 장소로 이전하였는데, 여기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도들이 처형된 순교성지입니다. 그 날 세 중년 여성이 ‘청주진영터’ 기념비(순교지표지) 앞에서 기도하고 경건하게 성호를 긋는 모습을 목격하였습니다.

일제의 박해가 심하던 1941년, 교회종을 빼앗기는 등 여러 어려운 시련을 딛고, 청주 최초로 500석 규모의 서양고딕식 2층 벽돌예배당을 건축을 완성했으며 1951년에 다시 증개축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붉은 벽돌은 오래된 역사와 한국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데, 2층 전면 중앙에 ‘淸州第一敎會禮拜堂’ 석조글씨가 아치형으로 붙어있습니다.

2001년에는 교회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밀러기념관을 준공하였습니다. 유달리 교회 마당에 기념비가 많습니다. 청주 최초(1921년)의 한글 비석으로 유명한 ‘로간부인(선교사 Mary Lee Logan) 기념비’, ‘교회창립 100주년 기념비’, ‘기독청년운동,기독여성운동,민주화운동기념비’, ‘6월 민주항쟁 기념비’, ‘기장 총회 유적교회 지정 기념비’ 등에서 민족과 교회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회마당은 교회와 붙어있는 육거리시장의 주차장과 통로로 이용되고 있어서 명실공히 마을의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청주제일교회는 일제침략에 반대하는 의병 활동에 교인들이 가담하였고 일제 강점기에 항일민족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특히 김태희 선생은 상해임시정부 국내비밀조직의 충북 책임자가 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나중에 장로가 되었고, 일제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망선루(고려시대에 세워진 목조건물)를 보존운동을 통해 지켰습니다. 이후 망선루는 청남학교와 상당유치원, 야학 등의 민족교육운동과 각종 집회와 강연회 등 사회운동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3.1만세운동 당시 3년간 옥고를 치룬 함태영 목사(1923년 총회장, 1952년 부통령에 당선)가 1921년부터 1928년까지 청주제일교회에서 사역했습니다. 신사참배 거부로 청남학교가 문을 닫는 와중에 박상건 담임목사가 경찰의 사찰을 받다가 만주로 망명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청주제일교회는 해방 혼란기에 반공 투쟁을 벌였고,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는 유신헌법 철폐 및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산실로서 큰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각종 강연 등 많은 반정부 집회와 문화 행사장 역할을 톡톡히 했고 청년들은 구하기 힘든 서적과 문건, 자료를 몰래 돌려보고 확산시켰습니다. 반정부 집회와 시위를 많이 해 ‘빨갱이 교회’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교인들의 지지와 뒷받침 속에서 선교의 사명을 수행했습니다.

자료를 보니 뜻밖에 저와 같이 일한 고 유구영 선생이 이 교회 출신이었습니다. 청주고를 나와 고려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되었고, 이후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하고 1985년부터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조직하는데 너무 무리하여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민주노총 출범의 산파역을 하였습니다. 또 묵방, 화죽, 청안, 덕촌, 보은, 옥천읍, 우암, 부강중앙, 용정, 용암, 외평, 대전제일, 북문, 동부, 남산, 장암교회 등을 개척한 충북의 모교회입니다. 우연히 읽은 청주제일교회 소식지 <육거리 편지24호>(2018.12)에 미래 교회의 좌표가 잘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전략) 그럼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그 핵심이 바로 ‘마을(지역사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동네사람과 동네이야기가 모이는 마을’의 플랫폼(소통의 공간)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회당’이나 마을 공터와 같은 역할이겠죠. 그리고 교회는 마을 속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되고 상담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마을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러한 역할을 외면한다면 우리 교회는 결코 건강한 교회, 지속가능한 교회로 발전해가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하략)”

우리 크리스챤아카데미가 목회자를 교육하는 관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글 쓴 이를 보니 세상이 참 좁았습니다. 민주화운동 시절에 만났던 후배 박종희 권사여서 전화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청주제일교회는 선교적 교회로서 새로운 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청주제일교회를 세운 민노아 선교사가 지은 찬송가 중에 “공중 나는 새를 보라”(588장)는 학교교육을 출세와 성공의 수단으로 여기는 시대에 우리 모두 깊이 음미해야 할 가사입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 곡식 모아 곳간 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시는 주님 새를 먹여 주시니 /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할 것 무어야”(1절)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교회활력화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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