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형 일자리’ 합의,
    임금·노동조건 하향 논란
    “저임금 기업유치 경쟁 우려" vs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대한 해법"
        2019년 02월 01일 01: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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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을 체결한 가운데, 전체 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의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와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기업에게만 특혜를 주는, 우리 사회를 바닥으로 끌고 가는 나쁜 정책”이라며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사진=김종훈 의원실

    광주시와 현대차가 협약을 체결한 광주형 일자리는 해당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현대·기아차 기존 자동차 공장 노동자보다 절반의 임금을 주는 동시에, 누적 생산 목표대수 35만대 달성까지 임금·단체협약 협상을 유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일부 노동계는 노동3권에 반하는 협약 내용과는 별개로, 포화상태인 자동차 시장의 현 상황과도 맞지 않는 일자리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자동차 산업의 과잉중복투자 심화에 대한 우려다. 이 때문에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는 생산 물량을 늘이는 설비 투자가 아닌, 연구·개발비 투자를 통해 국내 자동차 시장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김영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부지부장은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고 자동차 산업은 정체기에 들어섰다. 만들어도 팔리지가 않아서 생산 시설이 남아돌고 있다. 국내에만 해도 완성차 업체 총 70만 대 이상의 시설이 남아돌고 있다”고 짚었다.

    김 부지부장은 “지금은 생산 공장의 몸집을 부풀리는 투자를 할 때가 아니라 연구개발 투자에 집중해 내실을 키워야 할 때”라며 “생산 공장 투자를 당장 철회하고, 매년 제자리인 연구개발 투자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박한수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문재인 정부가 진정으로 청년실업과 자동차산업 육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부는 반값형 일자리가 아니라 국내 자동차 부품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형 일자리가 전체 자동차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김영진 부지부장은 “이번 광주형 일자리를 계기로 지역 간 저임금 기업유치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며 “전체적인 임금 하향평준화를 불러오는 일자리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후진국들이 투자 유치를 위해 다국적 기업에 법인세와 소득세 등을 감면해주고 노동자들의 임금삭감, 노동시간 확대, 노조활동 제한 등 노동조건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식이 지금의 광주형 일자리 사업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일자리를 얻게 되는 노동자들은 기존 자동차 노동자들에 비해 절반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법정 노동시간인 주 40시간을 넘어 주 44시간을 일하게 된다. 임단협 유예 조항 역시 헌법 위반이라는 해석이 있다. 반면 광주시는 신설법인에 투자규모의 10%의 보조금을 주고, 취득세와 재산세를 75%이나 감면해준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다국적 기업 유치 경쟁까지 벌어졌다는 점이다.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노동조건 악화 방안을 경쟁적으로 들고 나와 결론적으론 기업에는 각종 특혜를 제공하면서도, 노동자의 임금은 최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등의 흐름이 이어졌다는 것이 노동계의 설명이다.

    현대·기아차지부는 “광주시가 이런 정책을 추진하면 다른 지자체들도 똑같은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다른 지자체들도 일자리 사업을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임금을 낮추고 노조 활동을 억압하며, 기업에 세금 인하 등 각종 혜택을 주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업에 투자를 받기 위해 임금과 노동조건 하락을 대가로 지불하는 방식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지방자치단체 2~3곳에 상반기 중에 적용하기로 했다. 일부 노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바닥을 향한 질주’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금속노조와 현대·기아차지부는 설 연휴 직후 광주형 일자리 저지를 위한 투쟁을 이어갈 방침이다.

    엄강민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문재인 정부의 광주형 일자리를 상대로 끝장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어떤 이익, 비전도 없는 광주형 일자리 꼼수를 중단해달라”고 촉구했다.

    광주형 일자리 반대하는 현대차 노조에
    이용섭 시장 “이기적이고 미래를 보지 못하는 단견” 비난

    기존보다 낮은 임금 주는 일자리, 전국·전업종으로 확산 우려돼

    정부는 이처럼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전국, 전 업종으로 확산할 계획으로 갖고 있다. 특히 광주형 일자리를 주도한 이용섭 광주시장은 이 사업을 한국경제 위기를 극복할 해법으로 보고 있다.

    이용섭 시장은 이날 오전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안정된 일자리들이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이런 위기에 지금부터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하는데, 그 해법이 광주형 일자리”라고 말했다. 경제 위기, 특정 산업의 정체기를 노동자 임금 삭감으로 극복하겠다는 보수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장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자동차에서 다른 분야로, 또 광주에서 전국으로 확산시키면 한국 경제 체질 강화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 지금 일자리들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시장은 거듭해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자동차 산업에 한정되어 있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라고 할 수 없지만 다른 산업으로 확산하고, 광주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걸 넓혀가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경쟁력을 높여서 재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해 말했다.

    현대·기아차지부에서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선 “고임금을 받고 있는 현대차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미래를 보지 못하는 단견이라고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이 시장은 “1996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공장이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 해외에 가서 투자를 했다. 고임금 때문에 도저히 투자해봐야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며 “현대차가 고임금을 주고도 계속 경쟁력이 있다면 그대로 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임금 수준을 적정화해야 한다. 그러면 기업들을 국내에 잡아두는 효과도 있고 이미 나가 있는 제조업체들을 국내로 다시 들어오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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