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격론 끝에 ‘경사노위 참여’ 부결시켜
    문재인 정부 노동개악 추진에 대한 반발이 결정적
        2019년 01월 29일 10: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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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강한 추진 의지를 드러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노조법 개악 등 노동개악에 대한 반발과 이에 따른 불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노총은 28일 오후 3시 30분부터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에서 67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경사노위와 관련된 안건들을 상정했다. 대의원 의결정족수 재석 대의원 1273명 중 참석한 대의원은 977명(76.7%)으로 민주노총 대대 사상 역대 최대 인원이 모였다.

    특히 김 위원장이 회의 산회를 선포한 다음날 오전 12시경까지도 900여명의 대의원들은 회의장을 지키며 경사노위 참여를 둘러싸고 격론을 벌였다. 이는 경사노위 참여에 대한 이견과는 별개로, 해당 사안이 민주노총 내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곽노충

    이날 상정된 안건은 김명환 집행부가 발의한 ‘경사노위 참여안’과 민주노총 내 현장파 그룹이 발의한 ‘불참안’, 금속노조 중심의 ‘조건부 참여안’, 집행부 안과 가장 가까운 산별연맹 대표자 8인이 제출한 ‘참여 후 투쟁안’ 등 총 4개였다.

    집행부가 자신들의 원안보다 ‘산별대표자 8인 수정안’에 힘을 실으면서 실질적으로 논의된 안건은 집행부의 원안을 제외한 3개 수정안이었다. 대의원들은 8시간이 넘게 이 안들에 대한 찬반 토론을 이어갔지만, 3개 수정안 모두 비슷한 표 차이로 부결됐고 김명환 위원장은 산별 8인 수정안이 부결된 후 원안 표결은 무의미하다고 규정하며 원안 표결은 진행하지 않았다.

    김명환 위원장은 “상정된 대의원대회 안건을 더 이상 진행하기보다 새로운 사업계획 만들어서 결의해나가겠다.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교섭을 중심에 뒀던 집행부가 대의원들이 내린 결정을 받아들이고 경사노위 참여에 대한 뜻을 접겠다는 의사를 밝힌 셈이다.

    민주노총은 왜, 사회적 대화를 거부했나

    이날 모든 안건이 부결된 것은, 대의원들이 경사노위가 과거 노사정위원회와 다르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기도 하다. 노동존중 정부를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노동정책에 있어선 우클릭 행보를 보이는 것, 그에 따른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배경으로 작용했다.

    경사노위 첫 번째 논의 안건으로 꼽은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한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은 채 민주노총에 경사노위 참여만을 강요한 것은 경사노위 불참 주장에 힘을 실었다. “양보할 것이 없으면 경사노위에 들어올 필요가 없다”는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의 발언 등 노골적으로 노동계의 양보만을 요구할 것으로 감지되는 발언들도 마찬가지다. 경사노위에 들어가도 노동개악은 막지도 못한 채 투쟁 동력만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랐다.

    ‘불참 수정안’은 “문재인 정부는 경제 위기와 고용 악화를 배경으로 친자본 입장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사노위는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자본의 요구인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이 경사노위의 첫 의제가 된 것이나 사용자 대항권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불참 수정안 발의자는 “청와대가 경사노위 1호 안건으로 탄력근로제 확대를 얘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사노위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구가 절대 될 수 없다”면서 “최저임금 제도를 개악하고 (공약했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내팽개치며 사회 양극화 해소를 운운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 대정부 투쟁으로 노동개악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덕헌 금속노조 현대차 감사위원은 “문재인 정권의 노동정책을 보라”며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안 됐고, 노동시간 단축한다더니 탄력근로제 확대했다. 최저임금 올린다더니 산입범위 조정해서 줄어드는 현상 만들었다. ILO 핵심협약 비준 약속도 어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사노위는 또 다시 노동을 들러리로 세울 것”이라며 “더 이상 문재인 정부를 믿지 말고 투쟁으로 돌파하자”고 했다.

    그러나 불참 수정안은 재석 957명 중 찬성 331표로 과반을 넘기지 못해 부결됐다.

    뒤이어 정부의 선제적 신뢰조치가 있다면 경사노위에 참여하겠다는 조건부 참여안도 발의됐다. 수정안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악 철회 ▲최저임금제도 개악 철회 ▲노조법 개악 철회 및 ILO 핵심협약 정부비준 ▲노정교섭 정례화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지 않는 한 경사노위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정부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위해 탄력근로제 확대와 최저임금제도 개악을 철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참안에 가깝다.

    수정안 발의자인 황우찬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경사노위 출범 후 ‘탄력근로시간제 개악’을 첫 의제로 다루고, 최근 최저임금 결정제도 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노정 간 신뢰 회복을 위한 선제적 조치를 하지 않는 한 경사노위 참여가 과거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조건부 참여’ 수정안에 찬성하는 측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대화 자체엔 긍정적인 입장을 가졌던 이들이다.

    진기영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1년 전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화기구에 동의했고, 경사노위 활용에도 동의한다”면서도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한다는 약속은 딱 1년 만에 파기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명환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만났을 때 고 김용균 씨 장례를 치를 조건이라도 확보했나?. 그런 신뢰조치조차 하지 않는데 무엇을 믿고 경사노위에 들어가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전체가 어렵지만 시기와 일정이라도 맞출 수 있는 총파업이라도 제대로 해보자. 교섭에 목매지 말자”며 “이제 결단할 것은 민주노총 대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중심의 ‘조건부 참여’ 수정안 역시 재석 936명에 찬성 362명으로 부결됐다.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를 제외한 건설산업연맹, 보건의료노조, 서비스연맹 등 8개 산별 대표자들은 “교섭 중에도 전면 총파업이 가능하다”는 전제로 경사노위에 참여해야 한다는 수정안을 발의했다. ‘투쟁과 교섭의 병행’이라는 현 민주노총 집행부의 기조와 뜻을 같이 한 것이다.

    수정안에서 산별대표자들은 경사노위를 통해 노동개악 방향으로 방향키를 튼 정부를 견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들은 “민주노총은 경사노위를 통해 정부의 고용·산업·복지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노동 중심으로 견인해야 한다”면서도 “민주노총은 정부가 탄력근로제와 최저임금제, ILO 협약비준 관련 노동법을 개악하여 국회 강행 처리 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즉시 탈퇴하고, 문재인 정부에 맞서 즉각 총파업 투쟁에 돌입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노정 협의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양극화 문제, 사회 안전망 확대, 재벌체제 문제 등을 이슈화하고 우리의 요구를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 당당하게 교섭을 투쟁을 병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의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제도 개악, 노동법 개악 시도를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해서 적극적으로 저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이성우 공공연구노조 위원장은 “(산별 수정안은)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제도 개악을 국회가 강행 처리하면 경사노위를 즉각 탈퇴하겠다고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4당 대표 불러서 내년 2월에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2월에 강행 통과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이후에 파업을 정비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 안은 집행부 원안과 다르지 않고 실질적으로 교섭과 투쟁을 병행한다면서 전혀 투쟁을 준비할 수 없는, 우리를 거세시키는 안”이라고 비판했다

    가장 유력한 수정안으로 예상됐던 산별대표자 수정안 역시 재석 912명에 찬성 402명으로 부결됐다.

    경사노위 안건은 민주노총 내 존재하는 각 정파 논리도, 상급단체 노조의 지침도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금속노조 지도부와 현장파 그룹이 ‘불참’이라는 유사한 입장을 견지한 것이 그렇다.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공동발의한 산별 8인 수정안에 연맹 산하 최대노조인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찬성하지 않았고 수정안 발의 다른 산별에서도 반대표가 적지 않게 나왔다. 반면 산별대표자 수정안에 반대했던 금속노조의 일부 조합원들은 이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회의에 참석한 대의원과 각 노조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경사노위 안건은 정파 논리에서 벗어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각 노조의 평가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됐다는 분석이다. 공공기관 등 노정교섭이 중요한 노조의 경우 경사노위 참여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반면, 정규직화 문제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경사노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3개 수정안이 모두 줄줄이 부결되자 원안을 표결해 부쳐야 한다는 대의원들의 요구가 쏟아졌다. 그러나 김명환 위원장이 산별대표자 8인 수정안 처리 과정에서 원안 폐기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면서 원안 표결에 반대했다. 그러나 일부 경사노위 참여파들은 일제히 반발하며 김명환 위원장 사퇴까지 언급했으나, 김 위원장은 새로운 투쟁·교섭 사업 방침을 마련해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호소하며 오전 12시경에 산회를 선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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