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 분향소, 서울로
    대책위 대표단 단식 돌입
    변한 건 반쪽 짜리 산안법 개정안뿐
        2019년 01월 22일 07: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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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지 않고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 우리 요구의 전부입니다. 까만 탄가루에 앞도 보이지 않는 발전소에서 뿌연 라이트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걸지 않아도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청에 외주에 이리저리 더 싼 목숨 값을 찾아, 다음 죽을 사람을 찾는 것이 한국의 공기업입니까. 우리의 요구는 목숨을 살리는 일입니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분향소가 22일 서울 광화문으로 이전했다.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위험의 외주화 중단을 촉구하며 이날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태안 장례식장에서 서울로 향하는 모습(사진=민주노총)

    김용균 씨의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이날 오후 4시 광화문 김용균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죽지 않는 일터를 만들고, 장례를 치르고 싶다”며 “정부는 이 준엄하고 시린 외침에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균 씨는 사고 발생 이후 충남 태안보건의료원 장례식장에 44일 동안 안치했다가 이날 혜화역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층 5호실로 옮겼다. 태안 분향소엔 정치인들과 고위 공무원들이 줄지어 찾아 문제 해결을 약속했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분향소 이전에 앞서 이날 오전에 서부발전과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연달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대책위는 “발전소 민영화로 위험을 외주화시킨 주범이자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막고 있는 자들이 산업통상자원부”라고 규탄했다.

    김용균 죽음으로 변한 건 반쪽 짜리 산안법 개정안이 전부
    유가족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직접고용…대통령이 결단하라”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이날 광화문 분향소 앞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김 씨는 “아들이 떠난 지 44일이 되었다. 오늘 차가운 시신이 된 용균이를 데리고 태안에서 서울로 왔다. 여기 오기 전에 모든 것이 해결되길 바랐지만 서부발전과 노동부 보령지청, 대전청의 안이한 태도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며 “대통령에게 직접 해결해달라는 마음으로, 차가운 아들을 끌어안고 억울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서부발전에서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없이 8년간 1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때 제대로 안전조치가 이뤄졌다면, 내 아들 용균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원청 직접고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서민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인간 이하 취급을 받으며 금방이라도 죽을 수 있는 현장에서 매일 일해야 한다”며 “정부는 비정규직들이 왜 이렇게 정규직이 되려고 하는지, 왜 단식까지 해가며 일을 추진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서민도 나라의 보호 받고 산다고 생각이 들게끔 일을 추진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말 ‘김용균 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도급 금지 업종의 폭이 지나치게 좁아 김 씨가 일하던 발전소는 해당되지 않는다. 발전소에서 제2, 제3의 김용균이 또 나올 수도 있는 셈이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나 고인이 생존에 원했던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의 요구 또한 하나도 수용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도 유가족이나 노동조합의 참관을 거부하는 등 부실 감독 논란도 빚어졌다. 결국 김 씨의 죽음으로 변한 것은 반 쪽짜리 비판을 받는 산안법 개정안뿐인 것이다.

    광화문 앞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이하 사진은 곽노충)

    민주노총·시민사회단체 인사들 단식 돌입
    “44일,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오늘도 누군가는 컨베이어 벨트로”

    시민대책위 공동대표단도 나섰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 김재근 청년전태일 대표, 김태연 사회변혁노동자당 대표, 이단아 형명재단 이사 등이 이날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국회의원과 고위공무원들이 번갈아 찾아와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우리 요구를 설명했다. 하지만 고인이 유명을 달리하고 마흔 네 날이 지나도록 단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며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사납게 돌아가는 1~8호기 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체 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형식적 조사로 바뀌고, 정규직화의 사각지대를 살피라는 대통령의 당부는 ‘도로 비정규직’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끝내 스물다섯 살이 되지 못한 고인의 장례를, 해가 바뀌도록 치르지 못하는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며 “이 죄스러운 마음을 씻기 위해서라도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포기하지 않고 싸우겠다다. 이 억울함을 반드시 풀고 장례를 치를 때까지 요구를 접지 않고, 청와대 앞 집회와 주말 추모제를 끈질기게 이어가겠다”며 시민들의 연대와 지지를 호소했다.

    시민대책위와 유가족은 광화문 기자회견을 마친 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행진했다. 이날 저녁 7시, 장례식장 앞에선 추모 촛불집회를 개최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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