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밤 광화문으로, 월드컵 응원보다 재미있고, 4강보다 의미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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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07일 10: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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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내가 마트나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자고 할 때가 정말 싫다. 이전부터 즐거웠던 마음도 그 소리를 들은 이후에는 인상이 먼저 굳어진다.

    왜 그럴까. 그건 두 세 시간 동안 아내에게 소처럼 끌려 다녀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틀에 박힌 듯이 질서정연한 물건의 배치도 그렇고, 또한 안 보이는 곳에서는 항상 감시카메라가 나를 눈이 희번듯하게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렇다.

    나아가 물건을 사고파는 흥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물건을 살 때의 허탈함,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층층마다 지루하게 돌아다녀야 하는 맥 빠지는 일 등이 먼저 생각나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의 단란한 한 때를 깨는 것이 분명하지만 아내에게 혼자 가라는 답변을 먼저 하게 된다.

    마트나 백화점은 돈만 있으면 없는 게 없는 풍족한 곳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람들을 흥이 나고 즐기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무엇이 없다.

    그러다 보니 마트나 백화점이 없는 게 없이 다 갖추고 사람들의 욕망을 한정 없이 부풀리게 하는 곳이지만, 도시 어느 곳이든 휘황찬란하게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곳이지만, 그 풍족함으로 하여 세월이 한참 흐른 다음에도 도시 전체를 생각나게 하지만, 내가 한 때 살았던 마을을 기억에서 새록새록 돋아나게 하고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틀에 박히고 고정되고 짜증나고 아내와의 다툼만이 빛바랜 사진처럼 툭 튀어 나오게 한다.

    이와는 반대로 아주 오래된 시절이지만 내 기억에서 푸른 잎사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는 사진이 있다. 바로 우리 시골 마을 난장이다. 그 조그만 마을 난장에는 물론, 마트나 백화점처럼 가지각색의 전자제품이나 생활용품 가구들, 형형색색의 의류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과자류와 산해진미의 식품류 등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기껏해야 깻잎 몇 단이나 파 몇 단을 들고 나온 할머니, 냄비나 솥단지 등을 몇 개만 달랑 엎어놓고 팔고 있는 아저씨, 부산한 사람들의 틈을 누비는 엿장수 아저씨, 고무신 장수, 국수 장수, 약 장수 등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고향 마을을 생각하면 아주 볼품없고 상투적이기까지 하던 그 난장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그 난장이 고향을 더 그립게 하고 고향을 더욱 더 잘 볼 수 있게 해주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고향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슴 속에서부터 솟아나게 한다.

    생각하면 지금도 한쪽에서 여명처럼 난장의 마이크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왁자지껄한 흥정 소리, 목소리가 변형된 변사 같은 약장사의 떠들썩한 목소리, 웃음보따리가 떠나지 않는 노래자랑, 저마다 소 한 마리를 끌고 가기 위해 웃통을 벗어부치고 서로 어깨를 겨누는 씨름판에서 들려오는 호각소리, 앞마을 옆 마을 응원하는 소리, 소리들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틀에 박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더욱 감시하는 눈초리 하나 찾아 볼 수 없는 신명난 그 난장. 어깨춤이 덩실거리고 이리 참견, 저리 구경, 난장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 누구 하나 홀대하지 않고 다 주인공이 되던 우리 마을의 그 난장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다.

    비단 우리 마을의 난장뿐이 아니라 중년쯤에 도달한 모든 사람의 마음의 고향 어디에서나 그런 정겨운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땟국물이 잘잘 흐르고, 궁색한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고, 사람들도 한 사나흘 굶은 표정인데도 뭐가 좋은 지 희멀건히 웃는 얼굴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도 사람 사는 냄새를 물씬 풍긴다. 나는 그때 난장에서 사 먹었던 국화풀빵을 지금의 일류 제과점에서 만든 어떤 빵 한 트럭과 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이런 흥이 사라지고 없다. 미국에 의한 신자유주의인가 뭔가 하는 망국병 때문에 나라마다 뼛골이 휘나 보다. 우리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증이다. 한미 FTA 때문에 그나마 빚으로 버티던 농가들이 와르르 무너질 지경에 놓여 있다.

    양극화 해소한다고 떠들썩하게 떠들어대지만 뒤로는 비정규직을 확대 양산하고, 그로 인하여 양극화가 더 양산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인들을 그나마 보호하고 있던 스크린 쿼터를 아예 허물어서 미국자본에 덥석 가져다 바쳤다. 평택은 전략적 유연성인가 하는 미국의 세계 침략 야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대로 농사 지어온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농토를 빼앗아 미군기지로 상납한 상태다.

    우리나라 어디를 둘러보아도 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살맛을 빼앗기고 있다. 미국이나 나라가 하는 짓을 보면 꼭 마트나 백화점에 들어 간 꼴이다. 없는 게 없고 휘황찬란하고 누구나 다 풍성하고 행복할 것 같은데 나 같은 보통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것에는 신명이 없고 흥이 없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늘을 쳐다봐도 국민이 내뱉은 한숨들로 먹구름만 가득 떠있고 강에는 국민들이 흘린 눈물들이 범람할 지경에 놓여 있다. 어디를 봐도 ‘흥’하고는 거리가 멀다. 죽어 있다. 그렇다고 하늘이 뻥 뚫리기를 바라고만 있을까.

    그 와중에도 한 소식이 들린다. 시골의 난장 소식 같은,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소식이 들린다. 6월 7일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와 한미FTA 반대 문화난장, 문화 한마당이 열린다는 소식이다.

    갑자기 어깨가 들썩여지고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분명 내 기억 속의 난장이 될 것이다. 뻔하게 내놓는 물건도 우리 시골 마을이 그랬던 것처럼 빈약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파 몇 단이나 깻잎 몇 단처럼 세상적으로 보면 아주 보잘 것 없는 마음들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저마다 저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슬픔과 분노, 그리고 꿈을 각단지게 몇 자루씩은 가지고 나올 것이다.

    물론 돈은 필요 없을 것이다. 쭈굴쭈굴한 할머니에게서 눈물을 받으면 그냥 마음에 큰 그릇 하나 가져가서 받아 오면 될 것이고 한숨이나 어깨가 쳐진 사람들에게는 어깨를 슬쩍 빌려주면 될 것이다. 사람의 욕심을 채우는 데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것투성이겠지만 나는 어떤 백화점보다 이 자리가 더 끌린다. 나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사람 살게 하는 맛이 나게 한다.

    마음 보따리나 넓은 것으로 가져가야겠다. 나라는 우리를 자본의 회수가 손쉬운 마트나 백화점으로 몰아넣지만 이번만은 벗어나 보자. 윤도현, 전인권, 정태춘, 박은옥, 윈디시티 등 가수들과 함께 고래고래 노래도 함께 불러보고, 1,500권의 책을 자필사인과 함께 무료로 나누어주면서 까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일에 함께 하겠다는 서른 명의 작가들의 상상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풍덩 빠져보고, 어깨를 건들거리며 이리 참견 저리 참견도 해보고, 짠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 펑펑 함께 울어 주기도 하고, 그래서 가슴에 돋는 칼이 있으면 신명나게 그간의 슬픔도 싹뚝 잘라내자.

    물론 이 문화 한마당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나라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저지른 죄악을 고발하는 ‘아름다운 무기’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어떤 기자의 말처럼, 나는 그 말을 굳게 믿는다.

    6월 7일 광화문, 문화 난장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나는 그곳에서 신명나게 놀아 볼 작정이다. 마음에 끌리시면 한 번 나와 보시라. 고향의 난장 사진 하나 꺼내들고. 민중들의 꿈과 희망이 샘솟고 함께 여울지는 그 아름다운 ‘한국의 우드스탁’ 6월 7일 광화문의 문화난장으로, SK그룹과 조선일보 등의 컨소시엄이 독점계약한 시청 앞 광장으로 무슨 볼차기만 보러들 가시지 마시고, 미군기지 확장과 제2의 을사조약이 될 한미FTA 졸속 추진에 반대해 평화와 평등의 세계화를 외치는 그 아름다운 시민들의 난장으로.

    글쓴이_ 서수찬 / 시인. 경기 안산에서 조그만 소방기기 대리점을 하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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