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작전사령부 창설,
2작사의 개편으로 이어져야
[기고] 단일 작전지휘체계 수립이라는 방향으로
    2019년 01월 08일 12: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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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작전사령부’(이하 지작사)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육군은 지금껏 북한과 인접한 지역을 강원도의 제1야전군과 경기인천지역의 제3야전군으로 나눠서 관리하는 비효율적인 부대 지휘구조를 갖고 있었다. 통합사령부 창설은 비대해진 군 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추진되었으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와 맞물려 계속 지연되어 오다가 문재인 정부에 의해 최종완료가 되었다.

‘지작사’가 국방분야에서 정권의 개혁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금석으로 여겨져 왔기에 문재인 정부는 국방분야에서 역사에 남길 성과물을 얻은 셈이다. ‘9.19남북군사합의서’의 체결과 같은 남북관계의 긴장완화도 출범에 도움이 되었다.

‘야전군사령부’ 통합의 근저에는 과거의 역사에서 터득한 우리 내부의 자성이 담겨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극동군사령부는 북진과정에서 전투구역을 평안도(미8군)와 함경도(미10군단)로 나누어 작전에 임했으나, 양쪽지역 지휘부 사이의 연계가 쉽지 않았고 중국군의 대공세에 밀려 유엔군은 청천강과 장진호에서 대패하게 된다. 결국 국군과 유엔군은 재차 서울을 포기하고 60여Km 남쪽의 일명 ‘라인D(오산-장호원-제천-영월-삼척)’까지 후퇴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전후에 ‘전방’은 1군, ‘후방’은 2군사령부가 전담하는 지휘체제가 확립됐지만 1973년 박정희 정부가 베트남에서 철군한 ‘주월한국군사령부’를 해체하지 않고 3군사령부로 확대 개편함에 따라 ‘전방’은 1군과 3군이 관할하는 지역으로 양분되었다. 같은 해에 해군에 흡수통합된 해병대의 사례와 비교해볼 때 당시의 결정은 군사전략적인 측면도 있었겠지만유신체제하에서 군의 지지를 더욱 견고히 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 3군체제가 비판받은 이유는 현재 우리가 처한 ‘전장 환경’이 가진 특성을 무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작사’가 맡은 구역의 크기는 가로가 210Km(서해안 교동도에서 동해안 고성까지의 직선거리 기준), 세로가 116Km(판문점에서 평택의 미8군사령부까지의 직선거리 기준)정도에 불과하다. 구역의 규모가 작은데다가, 특히 군사용어로 ‘종심’(전방에서 후방 핵심지역까지의 거리)’’이라고 불리는 세로의 길이가 매우 짤막한 특성을 보인다.

또한 우리 국토는 강, 하천, 그리고 산 같은 자연장애물이 많아 상대의 공격이 예상되는 주요 기동로(축선)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장 환경은 하나의 사령부로 대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북한의 경우에도 총참모부(우리의 합동참모본부)가 휘하의 군단들을 별도의 사령부 없이 직접 지휘하는 효율적인 조직체계를 갖추어 놓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1998년부터 공식화한 개편 논의는 2007년 10월말 2군사령부가 산하의 군단 2개를 해체하고 제2작전사령부(이하 2작사)로 출범하면서 1단계를 마쳤고 2019년 1군과 3군사령부가 일원화함으로써 무려 21년 만에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이제 지상군의 지휘구조는 3군사령부가 창설되기 이전의 2개의 군사령부 체제로 되돌아갔다(1992년 3월 이전의 최고지휘관은 합참의장이 아니라 육군참모총장이었다는 점이 지금과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전방을 지키는 ‘지작사’와 후방을 방어하는 ‘2작사’로 역할분담을 나눈 지상군의 구조는 해·공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수한 구조이다. 해군과 공군은 육군처럼 ‘전구(전투구역)’을 나누지 않고 ‘작전사령부’라는 단일체제로 임무에 임한다. 동해를 지키는 1함대도, 서해를 지키는 2함대도 모두 ‘해군작전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는다.

육군의 사령부 이원화는 미국과 한국전쟁의 영향이다. 1952년 7월 미 극동군이 한국에 ‘KComZ(Korea Communications Zone, 한국병참관구사령부)’라고 불린 후방사령부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북위 37도선(평택-삼척)을 경계로 미8군사령부는 전선지역을, ‘KComZ’는 후방지역을 관할하기 시작하였다. ‘KComZ’는 전투부대 지원, 한국원조 사업, 포로수용소 운영, 그리고 유격대 토벌 등 ‘북중연합군’과의 전투(미8군)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를 담당했다. 전후 한미 합의에 의해 한국지상군의 병력규모가 66만천명으로 확정이 되고 미군 철수가 이루어지면서 비대해진 한국군의 효율적 관리와 미8군과 ‘KComZ’의 임무를 인수받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1군과 2군이다.

애초에 2군은 1군을 보조하는 역할에 불과했고 임무범위는 계속 축소되어 왔다. 1959년 군수지원업무의 육군본부 이관을 시작으로 병무청, 경인지역사령부(수도군단), 교육사령부 그리고 육군훈련소가 분리되었다. ‘2작사’로 개편된 후에도 예하 사단의 동원지원단들이 동원전력사령부로 이관됐다. 후방지역 방어가 ‘2작사’의 주임무라고는 하나 ‘대침투작전’은 해병대, 해군 그리고 해양경찰도 하고 있어 ‘2작사’의 고유업무라고 볼 수 없고 그럴만한 병력과 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시에도 전투임무보다는 한미 양군이 전쟁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사령관은 ‘후방지역조정관(CRAC, Combined Rear Area Coordinator)’으로서 한국전쟁 때의 ‘KComZ’의 역할을 수행한다. ‘후방지역부조정관’의 계급이 미군 소장(예비역이 임명되는 경우도 있음)이라는 말은 우리측 사령관의 대장 계급이 임무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뜻이다. 이같이 중요도가 떨어지는 임무수행을 하는 ‘2작사’는 ‘한미연합사’의 전시작전통제권 아래에 놓여 있지도 않다.

‘2작사’의 전신인 ‘2군’은 1954년 미군 철수의 결과물로 만들어졌다. 당시는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이라 지상군을 전방의 ‘전투사단’과 후방의 ‘예비사단’으로 나누어 관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6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교통과 통신에서 혁명적인 발전을 이룬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낡은 시스템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2작사’를 여전히 작전사령부급으로 운용한다는 것은 단언컨대 군 전력의 낭비에 불과하다. 임무수준에 걸맞게 군단급으로 축소하는 또다른 개혁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상작전사령부’의 창설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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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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