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안법 전면 개정,
    노동자들 희생 위에 통과"
    시민대책위 "법 개정 외에 정부·법원의 엄격한 법 적용 의지 필수적"
        2018년 12월 28일 04: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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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산안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우린 이제 한걸음 뗐을 뿐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발판 삼아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좀 더 힘 있게 주장하고, 나아갈 것입니다. 내 아들 용균이의 죽음을 밝히고, 우리 아들 동료들이 위험에서 벗어나고, 우리 아들, 딸들이 정규직화 되는 것은 이제 시작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이렇게 말했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사망을 계기로 산안법 개정안이 28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앞서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책임성 강화 법안은 매년 수많은 국회의원들에 의해 발의돼왔으나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번번이 폐기된 바 있다.

    김미숙 씨 등 유가족과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28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국회를 통과한 산안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김 씨는 회견에서 발표한 호소문을 통해 “며칠 동안 더 이상 아들들이 죽지 않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국회에서 지냈다. 이번에 산업안전보건법이 통과조차 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안전을 법으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태안화력에서만 10년 동안 12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데 발전소에서 하청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산안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용균이 친구들은 여전히 하청노동자로 일해야 한다. 많이 부족한 법”이라며 “여러 시민단체들과 우리 유족이 함께 국민들과 노력해서 산안법을 고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 처리된 산안법 전부개정안은 원청의 책임성과 양벌 규정 강화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을 적용하더라도 2016년 구의역 김 군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는 여전히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다.

    김 씨는 아들이 사망한 후 청와대 앞 첫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요구사항 등을 언급했다. 당시 유가족들은 1~8호기 컨베이어벨트 가동 중단,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통한 정규직화 등을 요구했었다.

    김 씨는 “그동안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아주시고 애 써주셨다. 앞으로도 저희들이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국민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 24살밖에 안 된 우리 아들 용균이가 이 사회에 남기고 간 숙제를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시민대책위와 유족 기자회견(사진=시민대책위)

    시민대책위 측도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개정안”이라며 “24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억울한 죽음 앞에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평가했다.

    다만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하는 데 매우 미흡했으며 누더기 법안이 됐다”며 “처벌 강화, 도급 금지의 범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본질적인 한계는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대책위는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선 법 개정 외에 정부와 법원의 엄격한 법 적용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산재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솜방망이 처분이나 안이한 안전점검이 계속되는 한 사고는 또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뜻이다.

    시민대책위는 “검찰과 법원이 전관예우나 재벌대기업의 로비에 놀아나면서,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산재·직업병 예방에 역행한 사업주들에게 사실상 면죄부에 가까운 가벼운 처벌로 일관해온 잘못된 사법 관행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며 “고용노동부와 검찰, 법원의 진정성 있는 성찰과 산안법 적용상의 혁신을 엄중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상시‧지속 업무, 생명‧안전 업무 가릴 것 없이 다단계 하청으로 쪼개고 떠넘긴 고용 구조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고인의 유서와 같은 메시지로 남은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제 정부가 대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내일인 29일 오후 5시 광화문 광장에서 2차 범국민추모제를 열고, 태안화력 1~8호기 작업중지,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설비 개선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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