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김용균이다”
    범국민 추모문화제 열려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 산안법 개정 및 중대재해처벌법 등 처리 촉구
        2018년 12월 22일 10: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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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범국민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 주최로 22일 오후 5시부터 서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에 모인 2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시민들은 ‘내가 김용균이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시민대책위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비롯해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수립,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안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고용, 현장시설 개선 및 안전설비 완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하 사진은 유하라

    살아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
    “내가 김용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 노동자를 만나라”
    “죽어서도 차별받는 죽음의 사슬을 끊어내자”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고 김용균 씨와 같이 죽음을 맞이한 비정규직들은 너무나 많다. 지난 9월 15일 원덕역 광장에서 일하던 역무원 고 장동현 씨는 역사를 혼자 지키던 중 뇌출혈로 쓰러진 채 지하철 승객에 의해 발견됐지만 숨을 거뒀다. 장동현 씨는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 네트웍스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다.

    구일역 역무원인 황지민 씨는 “용역 자회사이기에 원청인 코레일은 고 장동현 씨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았다. 김용균 씨의 죽음은 장동연 씨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며 “죽어서도 차별 받는 비정규직의 사슬을 끊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황 씨는 “비정규직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영정 속 김용균과 1100만 명의 또 다른 김용균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죽음을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고도 했다.

    KT개통·AS기사 고 장경수 씨는 김용균 씨가 사망하기 바로 한 달 전인 지난달 8일,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 장 씨는 청년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통해 KT의 자회사인 KTS에 입사했다. 그 역시 일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었다.

    KT개통·AS기사인 김신재 씨는 “KT에선 올해만 노동자 3명이 작업 중 사망했다. 그런데도 사측은 잘못된 작업환경이나 업무량 조절 없이 ‘안전모 쓰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면서 “심지어 노동자가 3명이 사망했는데도 특별근로감독은커녕,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올해 대통령상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산재 사고가 한 번이라도 일어난다면 노동부는 철저하게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일을 하러 나온 사람이지, 죽으러 나온 사람이 아니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100인의 대표를 꼭 만나 달라”고 호소했다.

    “원청 책임 강화하는 올바른 산안법 처리하라”

    20년간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해 온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고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공공기관의 ‘기업 살인’”이라며 “더 이상 죽음의 외주화로 인해 죽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김용균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간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전달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침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용균이가 죽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앞서 ‘비정규직 100인의 대표단’은 전날인 21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를 촉구하는 촛불행진을 한 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다.

    박석운 시민대책위 공동대표는 “24살 고 김용균의 사망은 단순한 산재 사고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구조적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박 공동대표는 “2년 전 구의역에서 사망한 19살 김 군의 죽음을 보고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은 없도록 하자’고 결심했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한국 정부는, 국회는 무엇을 했나. 말만 무성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참혹한 죽음이 반복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10년간 산재 사망사고로 징역형을 받은 사용자는 고작 0.5%, 평균 벌금액수는 432만원이다. 산재 사고의 책임이 있는 원청이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참혹한 죽음이 반복되는 이유”라며 “원청회사에 대한 민형사상 처벌, 위험 작업 하도급 금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등이 포함된 올바른 산안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문화제엔 김용균 씨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제주도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와 아현동 강제철거로 거주지를 빼앗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준경 열사의 어머니 박천희 씨 등도 참석했다.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는 “돈 없고, 힘 없고, 빽 없는 부모의 자식들, 청춘들의 목숨으로 사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대한민국이 참 한심스럽다”면서 “꽃봉오리 펴지도 못한 아이들만, 노동자들만 힘든 세상이 무슨 나라인가”라고 반문했다.

    고 박준경 열사 어머니 박천희 씨도 “강제철거로 쫓겨난 아들은 며칠을 씻지도,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 거리를 헤매다가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있는 자들을 위한 정책이 내 모든 것인 아들을 빼앗겼지만 누구도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나라가 내 아들을 죽였다”면서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던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이 말하는 사람은 어느 기준의 사람인가”라고 말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비록 우리 아들은 이렇게 갔지만 내 아들의 동료들은 아직도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그 위험에서 벗어나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용균이의 바람대로 대통령을 만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말을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화제 직후인 오후 6시 30분경 시민대책위와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중단을 촉구하며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들이 경복궁역 인근을 에워싸면서 시민대책위 측이 강하게 반발, 한 차례 행진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유가족들은 경찰병력 옆에서 고개를 떨군 채 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병력 철수를 기다렸다. 경찰은 안전을 위해 무장경찰을 배치했다고 주장하다가 20분 만에 철수시켰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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