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산안법·중대재해처벌법
    통과시키지 않으면, 그들은 살인공범“
    각종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부모와 자녀들 호소
        2018년 12월 20일 03: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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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애를 그렇게 보내고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건 딱 한가지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법이 국민에게 4대 의무를 지우는 것처럼,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의무가 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게 무슨 나라이고 국가인가. 대한민국 태어난 게 후회스럽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후회스럽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이 먼저인 기업, 그런 기업의 민원만을 경청하는 정부는 죽음의 탓을 피해자에게 돌리며 책임을 회피했다. 내 가족을 빼앗아간 기업은 여전히 기계를 돌리고 수익을 냈다. 그래서 이들은 여전히 가족의 곁을 떠난 아들, 딸들의 이름을 부르며 죽음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 헤매며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린 국가를 책망하고 있다.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가 메탄올 중독으로 두 눈을 잃은 김영신 씨는 “21세기에 메탄올로 실명이 됐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하청업체한테 사과를 요구했더니 ‘우린 잘못 없다. 잘못은 원청에 있다’고 해다. 원청은 ‘하청에 잘못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다친 건 제 책임이 되는 것 아닌가. 제발 하루 빨리 제도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청년들을 살려 달라”고 말했다.

    산안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촉구 기자회견(이하 사진=곽노총)

    청년, 학생,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이들의 부모와 자녀들은 20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모였다. 이들은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산업재해, 재난참사와 안전사고 희생자 가족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 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더 이상 죽음을 지켜볼 수 없다”고 호소했다.

    피해 당사자인 김영신 씨를 비롯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제주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스텔라데이지호 선원의 가족인 허경주 씨, 삼성LCD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에 걸린 피해 노동자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참석했다.

    유가족들은 중대재해를 저지른 기업을 강하게 처벌하고 원청에 산재의 책임을 묻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산재 살인을 막기 위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발의되어 있지만 국회는 이를 방치하며 죽음을 방조하고 있고,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과 위험업무 외주화를 금지하는 법안들은 어느 것 하나 처리 되지 않고 있다. 국회는 더 이상 죽음을 방치하지 말라”고 말했다.

    국회는 희생자 가족들이 이 상식적인 요구에 재계의 반발을 핑계 삼아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28년 만에 발의된 산안법 전부개정안 또한 정부여당은 재계의 반발을 운운하며 처벌조항 하한형을 없애고 누더기를 만들었다.

    “내 아이 죽인 회사가 낸 벌금이 고작 2천만 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싫다”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는 이날 새벽부터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의도에 도착했다. 기자회견 내내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물만 훔치던 이 씨는 자신의 발언 차례가 오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아이가 죽고 장례식장에 있는 20일 동안 수많은 정치인, 심지어는 교육부총리까지 방문해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해줄 것처럼, 모든 법을 다 바꿀 것처럼 얘기했다. 그렇게 말했던 분들이 지금은 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이 씨는 “노동부는 5년 동안 안전점검도 하지 않은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인지했었음에도, 아이가 죽고 나니까 그때서야 고치겠다고 했다. 그게 노동부 직원의 말이다. 그런데도 방송에, 신문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아이를 죽인 회사가 받은 벌금이 이천만원이다. 말이 되는 소린가. 625가지의 범법행위 저질렀는데 회사가 내야 할 벌금이 고작 이천만원이다. 두 번 다시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회사가 문을 닫을 정도의 벌금을 줘야 한다. 징역 안 가도 된다. 어차피 징역 1, 2년 줘도 보석으로 나올 거고 그 사람들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 회사가 문 닫을 정도의 벌금을 줘야만 하지, 그렇지 않고선 기업가들은 절대 자기 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 애가 죽고 나서 (그 회사의) 대표가 한 짓을 태안화력발전소가 똑같이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다 죽어가고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배 두들기며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대한민국, 기업하기 참 좋은 나라다”라고 말했다.

    “산안법 개정안에
    강력한 처벌조항 담지 않는다면 국회의원들 역시 살인공조범”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도 기업과 국회,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황상기 씨는 “위험한 일은 하청업체에 다 떠넘기고 원청 기업들은 돈만 챙기는 수십 년 사이에 수많은 노동자들은 병들어 죽어가고 가정이 무너졌다. 수년 전부터 삼성을 처벌해달라고 했지만 기업과 정부, 국회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제주도 현장실습생, 태안화력발전소…이 사람들 다 정부와 기업, 국회가 이런 상황을 방관해서 생긴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황 씨는 “기업은 계속해서 가장 위험한 일, 더러운 일을 전부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한테 떠넘겼다. 하청업체에서 노동자들이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국회의원들도 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당리당략에 따라 산안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산안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이런 거 저런 거 자르고 껍데기만 통과시켜선 안 된다”면서 “(중대재해가 벌어진 원청 기업이) 강력한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법이 꼭 필요하다. 그런 강한 법 없인 하청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병들고 죽어나갈 것이 뻔하다. 국회가 강력한 산안법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국회의원들 역시 살인공조범”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용균이 나오지 않도록 원청·정부와 끝까지 싸우겠다”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은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참석했다. 김 씨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억누르며 살인병기와 같은 발전소 업무의 위험성을 설명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김미숙 씨는 “컨베이어 벨트에 옷깃만 끼어도 바로 죽을 수 있는 곳에서 용균이의 동료들은 지금도 일하고 있다. 용균이와 같은 젊은 애들을 그런 위험한 곳에서 구출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책임을 지고 책임자들을 살인죄로 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씨는 “내 아들보다 먼저 죽은 12명의 아이들의 사고가 제대로 진상규명됐다면 이런 아픔은 겪지 않았을 우리가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며 “또 다른 희생자, 또 다른 용균이가 나올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우겠다. 미리 막을 수 있는 사고를 막지 못한 원청과 정부가 또 다시 사고를 은폐한다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이 나라에 바라는 것은 돈만을 추구하지 말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뽑아주고 우리 세금으로 월급 받지 않나. 우리가 바라는 게 뭔지 알고 행동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상조사 과정에 유가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전날인 19일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됐으나 한국서부발전 측은 유가족과 노조의 참관을 막아섰다. 특별근로감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대통령 지시사항을 받고 관계부처가 대책을 발표하기 전에 찾은 곳은 유가족이 아니라 발전 5사다. 발전5사와 대책회의를 하는 그 자리에서 유가족의 요구가 아닌 사측의 건의사항을 들었다. 조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의 건의사항을 받은 것이 노동부와 관계부처이고 정부는 그것을 국민 앞에 대책이라고 발표했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이 부위원장은 “국회가 산안법을 27일에 통과시킨다고 하는데 그 내용에 김용균 씨는 산안법 적용대상자가 안 된다. 앞서 수많은 희생자들 앞에서 한 거짓말을, 김용균 씨의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도 하고 있다. 또 다른 죽음을 기다릴 수 없다. 분명한 대책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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