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해설과 정치 해설,
우리 곁에 없는 어떤 사람
[왼쪽에서 본 F1]그의 꿈 우리의 꿈
    2018년 12월 18일 01: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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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이라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2010년 가을 ‘MBC 스포츠+’를 통해 F1 중계방송의 TV 해설을 시작한 지 벌써 8년이 됐습니다. 현재 F1 중계는 국내 생방송 중계가 없어 개인 방송을 통해 해설만 담긴 일종의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몇 가지 TV 채널을 통해서 각종 모터스포츠 해설 활동을 하고 있으니, 이 분야에서 일한 지 8년이 지났다고 얘기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F1 중계 생방송 해설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입니다. 물론 F1 TV 중계방송을 해설하는 방법이나 해설가의 길에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8년 정도의 경험으로는 이렇다 할 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생각해보면 전설적인 F1 해설가인 머레이 워커는 종종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 F1 그랑프리의 해설이 다른 어떤 스포츠 해설과 비교해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주관적인 의견이기도 하고, 다른 스포츠 중계 해설이 쉽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자동차 경주의 해설이 매우 복잡하고 기술적인 부분을 설명하기 너무 어렵다는 점에서 나온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 그래도 기술 규정과 운영 규정이 복잡하기 그지없는데, 매년 규정이 큰 폭으로 바뀌고 종종 주 단위로 규정이 조정되기도 하기 때문에 빠르게 따라잡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생방송을 중계하려고 하면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화면 속 수십 대의 차량을 일일이 알아보고 설명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빠른 화면 전환은 때로 10초에 대여섯 장면을 연이어 보여주고 그 시간에 모두 설명할 것을 요구합니다. 화면에 잡히지 않는 대부분 차량의 속도와 위치를 2~3초에 한 번씩 모두 확인하고 머릿속에 집어넣어 큰 그림을 조합해야 한다는 고역은 덤입니다.

전설적인 F1 해설자 머레이 워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F1과 자동차 경주의 해설이 정말 어려운 이유는 조금 다른 것입니다. ‘사람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F1과 자동차 경주를 포함해 모든 스포츠 해설을 맡은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해당 종목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돕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가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이 소용없어지니까요. 그런데, 재미를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물론 동시에 몹시 피곤한 일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무언가를 사람들이 재밌게 느끼게 하려면, 일단 가능한 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쉽지 않은 개념이나 사실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려고 하면 제법 많은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복잡한 개념을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잘못된 내용이 섞이거나 어느 정도 사실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비유에 오류나 비약이 있는 경우도 아주 많지만, 논문 심사가 아니다 보니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감수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이런 해설의 어려운 부분은 많은 경우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전문 분야에서 깊은 지식이 없는 데도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자동차나 레이스 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많은 사람을 무시할 수도 없고 과도하게 계몽적인 입장으로 접근해서 자꾸 가르치려 들 수도 없습니다. 물론, 마냥 남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할 수는 없으니 ‘적절한 지점’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난감한 과제가 남습니다.

때로는 관련된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해설 중에 어떤 사람을 ‘재미있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때그때 본인의 허락을 받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나름 도마 위에 오른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좋은 의미를 담아서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칭찬이 상대적으로 다른 누군가에 대한 비난으로 들릴 때도 있으니, 말 한마디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물론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해설자는 중계방송에서 얼굴을 담당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뒤에서 중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매우 많은 전문 인력들이 많은 시간 노력하고 있는데, 중계 ‘팀’의 대부분은 중계 화면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해설자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해설자의 표정이 많은 중계 팀원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대표’하는 셈입니다. 재미를 위해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F1 중계를 뒷받침하는 수십 년의 경력을 갖춘 중계 관련 인력

전에도 여러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F1에는 현실 정치와 비슷한 부분이 제법 많습니다. F1 중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디어를 통해 정치가 다뤄질 때 ‘해설자’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정치 해설자’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를 ‘해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도 아마 F1 중계 해설을 하면서 제가 경험했던 것들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치는 그 자체로 연구할 것이 많은 어려운 주제인 것은 물론, 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황이 변하는 움직이는 대상입니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사람과 주체들이 일으키는 사건들을 여러 방면에서 면밀하게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를 해설한다는 것은 F1의 기술적 부분을 다루는 것 이상으로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정치학을 깊이 다루지 않더라도, 현실 정치는 그 자체로 너무 복잡하다 보니 쉽게 정리해서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의 설명을 비판하기는 쉬워 보이지만, 정작 쉽게 풀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물론 F1과 비교한다면 정치를 해설하는 쪽이 무게감 면에서 훨씬 더 난이도가 높고, 이런 어려운 주제를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야 하는 의무를 짊어진 사람의 고역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대중에게 ‘제대로 쉽게’ 설명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맹목적인 지지에 매몰된 사람들에겐 논리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논리정연하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욕설에 노출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요?

과거의 우리에겐 다행하게도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까다로운 정치판을 친절하고 쉽게, 재미있으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고 설명하던 ‘정치 해설자’가 있었습니다. ‘촌철살인’이란 생각이 절로 드는 이야기를 늘 들려주던 그는, 전문가에게도, 일반 대중에게도 모두 환영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있었던 덕분에 어려운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많았고,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반목하는 상대의 기를 꺾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때로는 현실 정치에 몸담고 있으면서 한결같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F1 해설을 하던 저 역시 그의 표현이나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따라 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을 마무리하는 칼럼에서 이제 그 친절했던 정치 해설자가 더는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없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곁에 그를 대신할 사람이 더는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중의 기억에서 그의 존재가 조금씩 지워져 가는 것과 동시에, 어렵고 복잡하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했던 정치라는 주제를 쉽고 간결하게, 듣기 좋은 표현으로 설명해줄 정치 해설자의 존재가 더 아쉬워질 것 같습니다.

처음 TV에서 F1 해설을 하게 되기 전, 저는 ‘언젠가 TV에서 해설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와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했습니다.

“내가 해설을 하고 시간이 흘러서 ’케로인지 윤재수인지 하는 그 해설자, 순 엉터리네. 내가 하면 훨씬 더 잘할 걸?’이라며 해설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해설자가 되어서 무슨 (그럴 기회도 없겠지만) 엄청난 명예를 얻을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저는 F1과 자동차에 담긴 몇 가지 가치를 아끼고 좋아하는 한 사람일 뿐이었고, 앞으로 훨씬 더 해설을 잘하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어려운 주제를, 제가 좋아하는 것의 가치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니 충분히 기쁘게 받아들일 만했습니다.

감히 제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만, 먼저 우리 곁을 떠난 정치 해설자의 생각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미디어에 얼굴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위해 쉬운 설명을 하려고 고심하고 애쓰는 것이 그의 목표나 지향점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 역시 다른 누군가가 더 좋은 정치 해설자로 성장하고, 그들을 통해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싶은 꿈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우리 중 누군가는 그보다 더 뛰어난 정치 해설자 역할을 짊어져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를 대신할만한 정치 해설자가 될만한 사람이 줄을 서는 날이 온다면, 그만큼 우리 세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가까워져 있을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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