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용균 사고 계기,
    ‘원청 사용자성’ 규정해야
    정규직은 안전 문제제기 할 수 있어도, 하청 노동자는 업무 거부 못해
        2018년 12월 18일 01: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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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충남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인 고 김용균 씨 사망으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대두되면서 정치권에서도 여론의 추이를 따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산안법)을 처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2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끼어 19살 청년 노동자가 사망한 이후 발의됐던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기업살인처벌법’ 등 관련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계류 중이다.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 해당 법안들은 하청노동자에만 집중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동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법안들이기도 하다. 원청에 산재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태안화력발전소 전경

    지난 5년간 원청인 발전5사에서 일하다가 37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으나, 발전5사는 무재해산재보험금 112억을 감면 받았다. 하청 노동자의 산재에 원청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현 제도가 위험한 업무를 하청에 떠넘기고 하청노동자의 안전엔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의 정흥준 연구위원은 18일 오전 MBC 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외주를 금지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안전보다 생산이 우선시되는 풍토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원청에 사용자성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 사고 시 원청과 하청이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하청 공동사용자성이란, 하청노동자에게 벌어진 사고여도 원청에서 벌어진 사고로 판단하고 원하청이 똑같은 처벌을 받는 것을 뜻한다.

    정 연구위원은 “심지어 미국 같은 나라도 원청의 공동사용자성이 있다. 특히 산업안전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원청도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는 생각들이 굉장히 강한다. 선진국 대부분은 원청 사용자성이 있다”며 실제로 원하청 공동사용자성을 법으로 규정한 나라에선 산재가 줄어든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같은 위험 업무해도 정규직은 사고 발생하는 경우 적어”
    발전5사, 자회사 설립으로 민영화 시작
    지금은 절반이 하청 비정규직…

    원청의 책임성 부재와 함께 고용불안 또한 하청노동자에게 산재사고가 집중되는 원인 중 하나다. 정규직의 경우 고용이 안정돼 있어 위험 업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지만, 하청업체의 경우 경쟁 입찰을 통해 계약을 맺어야 하는 ‘을’의 입장이라 안전 문제 개선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대부분 중대재해가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이유로 ‘위험한 업무를 하청한테 넘겨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규직들도 위험한 일을 하는 산업이 꽤 있다. 그런데 정규직들이 하게 되면 사고가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정규직들은 안전업무를 하다가 위험하면 ‘위험하니까 일할 수가 없다’고 자연스럽게 문제를 제기하고 그런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업무에 대한 권한이 상당히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비정규직이나 하청에서 일하는 분들은 시키면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위험해도) 거부를 못한다. 그러니까 위험한 걸 알면서도 일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정 연구위원은 거듭해서 “정규직들이 일하게 되면 생산보단 안전이 우선된다. (이번 사고의 경우에도) 정규직이었다면 당연히 컨베이어벨트를 세우고 일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하청은 그게 되질 않는다”고 짚었다.

    공공부문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다. 발전5사는 정부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논의 중이지만 대부분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전환’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발전 5사의 전체인원은 1만 7000명 정도다. 이 중 정규직이 9500명이고, 김용균 씨처럼 일했던 사내하도급 업체의 직원들이 8100명 정도”라며 “전체 발전소 46%정도는 하청직원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양산은 에너지산업의 민영화 정책으로 시작됐다. 서부발전을 포함한 발전5사는 현재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 형태로 존재한다. 이 발전5사는 연료환경설비 운전, 경상 정비 등 핵심 업무부터 경비, 청소 등 모든 업무를 외주화하는 방식으로 발전사를 운영 중이다.

    정 연구위원은 “IMF가 계기가 되면서 에너지산업의 민영화 정책들이 추진됐다. 당시 민영화를 추진하려다 파업이 일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니까 (민영화 대신) 발전 5사를 한전의 자회사 형태로 바뀌었고, 발전사에서는 여러 생산업무 중 일부에 대해 외주화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용균 씨가 소속해있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도 원래는 발전소에서 가지고 있다가 태광실업이라는 곳으로 지분을 매각했다.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자회사로 있다가 지분 매각을 통해 민간에 넘기는 일이 지난 10년 동안 진행됐다”고 부연했다.

    앞서 전날인 17일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관계부처 합동대책을 발표했다. 태안화력발전소를 상대로 한 특별 산업안전보건감독 실시, 긴급안전점검, 산업안전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한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근본적 사고 원인을 외면한 채, 발전소를 상대로 한 안전점검에 그친 미봉책이다.

    정 연구위원은 “상당히 미흡하다”며 “굉장히 일회성 대책이자 이전에 나왔던 얘기들의 반복”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가장 좋은 건 아주 사고가 많은 쪽에서는 외주를 금지하는 것이고 그게 어렵다면 안전보다 생산이 우선시되는 풍토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원청한테 사용자성, 책임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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