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용균 수습 직장동료,
    '이런 사고 100% 또 발생'
    원청, 사건은폐 지시하고 생색 사과문만···“한국서부발전이 죽였다”
        2018년 12월 17일 03: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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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 씨의 시신을 수습했던 직장동료가 회사 측이 김용균 씨의 사고를 은폐하려 한 사실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한편 원청인 서부발전은 전날 10문장짜리의 짧은 사과문을 냈으나 유가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진정성 없는 언론플레이”라고 반발했다.

    김 씨의 사수였던 이성훈 씨는 사고가 벌어진 날인 11일 오전 9시 40분경에 회사에서 전화가 와선 “애들 입단속 잘해라”, “기자들 만나면 인터뷰 하지 마라” 등의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앞서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측 간부가 김용균 씨의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언론에 사고 상황에 대한 은폐를 지시했다는 주장은 제기한 바 있었다.

    이성훈 씨는 회사 측이 김용균 씨 사고 은폐를 지시한 녹취록을 17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공개했다.

    녹취록에서 회사 측 관계자는 “얘기 나오면 그거 가지고 확대 재생산하는 사람들이 기자들 아니야? 걔네들은 이쪽 사정을 잘 모르니까 엉뚱하게 얘기 들을 수도 있잖아, 그렇지?”라고 말했다.

    사고 당시 김용균 씨의 시신을 수습했던 이 씨는 “오전 3시 24분쯤에 발견했고 그걸 듣고서 거기로 뛰어올라간 게 3시 40분쯤이다. 용균이가 컨베이어 벨트 밑에 끼어 있는 걸 어떻게 꺼내서 인공호흡이라도 하려고 몸을 잡는 순간, 걔 머리가 없어졌다는 걸 확인했다. 사건 현장은 너무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고 말했다.

    그는 “컨베이어 벨트의 고무벨트 무게만 20톤이 넘는다. 그리고 50cm도 안 되는 (컨베이어 벨트) 밑 부분에 고장이 나거나 이물질이 생기면 사람이 들어가서 꺼내야 한다.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빼지 않으면) 긴 공구 같은 걸로 빼야 하는데 그것도 벨트에 말려들어가서 철근이 다 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적도 있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설비 개선 장치 요구를 계속했지만 원청 회사인 한국서부발전에서는 묵살해 버렸다”고 말했다.

    특히 “저는 더 이상 (서부발전에서) 회사 생활 안 할 것”이라며 “내 눈 앞에서 그 어린애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서 죽은 모습을 봤는데 이 회사를 더 이상 어떻게 다니나. 밤에 불 끄고 자지도 못한다. 지금도 무섭다”고 말했다.

    이 씨는 “다른 동료들도 지금 여기서 일하다가는 또 사고가 날 거라고 100% 자신한다”며 “현장을 한번 와보면 알겠지만 여기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동료들 평균 나이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들”이라며 “현장에서 안전 조치나 개선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이상은 그 아이들은 이런 사고를 떠안고 또 일을 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원청 서부발전 측이 지난 16일 발표한 사과문에 대해선 “(이전에)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설비 개선하고 보완 조치하고 사과문 똑같이 냈었는데 그러면 지금 이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이 또 발생했다는 것은 (사람이 죽었어도 회사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은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5일 만에 짤막한 사과문을 냈다. ‘고인의 명북을 빌며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는 제목의 이 사과문은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지 않은 채 16일 출입기자들의 이메일로만 발송됐고, 17일 이날엔 <한겨레> 신문광고에 실렸다.

    서부발전은 사과문에서 ▲조사 협조 및 조사결과에 따른 책임 ▲사업장 전 영역 개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정부 방침 이행에 최선 ▲유가족과 동료에 대한 지원 등을 하겠다며 “이번 참사를 계기로 한국서부발전의 모든 사업장이 가장 안전한 현장을 거듭날 수 있도록 환골탈태의 자세로 매진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해당 사과문의 명의는 ‘서부발전 임직원 일동’이다.

    유가족 등은 “피해자와의 논의도 없고, 사과의 주체도 없이 일방적으로 언론에 발표한 사과문”이라며 “진정성 없는 한국서부발전의 ‘언론플레이’가 또 다시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모습(사진=곽노충)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대책위)’는 17일 이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가족 요구사항 등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수립 및 배상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안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12월 임시국회 내 처리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현장시설 개선 및 안전설비 완비 등이다.

    이를 위해 대책위는 오는 22일 토요일 오후 5시 광화문 광장에서 ‘고 김용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를 추모하는 1차 범국민추모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씨는 “대통령은 공기업에서 이토록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아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관계자 처벌을 부탁드린다”면서 “우리 아들의 바람이었던 대통령 만남을, 아들은 못했지만 우리 부모라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일한 9,10호기 기계만 서있다. 1~8호기 같은 위험에 노출된 곳에서는 계속 일하고 있다. 지금 당장 멈춰달라.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죽음의 일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제 아들만의 일이 아니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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