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용균 씨 사망 사건,
    원청의 은폐·축소 곳곳에
    시간 조작, 언론노출 저지, 현장 훼손···청와대 "사측, 시설 개선할 것"
        2018년 12월 15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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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기업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들 잡아먹은 이런 회사가 또 다른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잖아요. 또 다른 아이들이 우리 아들처럼 되는 걸 원치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바꾸고 싶습니다. 아니, 나는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 저한텐 아무 것도 소용없습니다. 이 자리에 나온 건 조금이나마 우리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일하던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씨는 이렇게 말하며 오열했다.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라고 믿었다는 김미숙 씨는 아들이 생전에 일했던 현장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한 사람이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 먼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 유명무실한 안전장치, 지켜지지 않은 안전 매뉴얼. 아들이 일했던 곳은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병기”이자, 전기를 만드는 대한민국의 공기업이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 조사 결과 공개 브리핑’을 열었다.

    대책위 기자회견 모습(사진=노동과세계)

    최근 5년간 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37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내놓아야만 했지만 원청의 태도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38번째 희생자가 됐고, 원청인 서부발전이 한 것이라곤 사고은폐, 책임전가뿐이었다.

    고 김용균 씨의 유가족과 공공운수노조 등은 원청인 서부발전이 사고 축소·은폐 시도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전날인 13일 고용노동부 관계자, 산업안전공단, 서부발전 관계자 등과 함께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곳곳에 드러난 서부발전의 사고 은폐·축소 정황
    신고 시간 조작, 언론노출 저지, 현장 훼손까지…
    서부발전 측 “우린 관련 없다” 하청에 책임 돌려

    노조, 대책위 등의 조사 결과 브리핑 자료를 보면 원청인 서부발전이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를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은 차고도 넘친다.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이 작성한 ‘태안 9,10호기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 점검 중 안전사고 보고’ 문건엔 11일 오전 3시 32분 사고접수를 하고 오전 3시 50분에 경찰에 신고, 오전 4시 35분 노동부 보령지청에 신고한 것으로 적시돼있다. 그리고 보령지청은 약 1시간 후인 오전 5시 37분에 9,10호기 컨베이어 작업중지 명령을 한 후, 태안의료원의 운구차가 현장에 도착해 오전 7시 김용균 씨의 시신이 수습됐다.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경찰에 다시 확인해본 결과 경찰에 최초로 신고된 시간은 오전 4시 25분이었다. (한국발전기술은) 실수라고 바로잡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 시간 동안 누구와 어떤 전화 통화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3일 사망한 하청노동자도 119 구급차가 아닌 하청업체 간부의 자가용에 실려 나가는 중에 사망했다. 조성애 국장은 “이는 산재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며 “병원에서 만난 태안의료원장이 자기가 응급실 있을 때 태안화력에서 나오는 많은 노동자들을 봤다고 했다. 산재 은폐가 없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부발전 측이 대외적으로 사고를 감추려고 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한국발전기술 간부가 시신을 수습한 동료에게 전화해 ‘언론사에서 (김용균 씨 사망사고에 관해) 안 봤으면 좋겠다’, ‘쓸 데 없는 소리 안했으면 한다’고 말한 녹취록을 확보했다. 물론 용역회사 간부가 그렇게 말한 것이지만 원청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원청의 지시 없이 직원이 죽었는데 ‘언론사 만나지 말라’고 종용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회사 측은 김용균 씨가 사망한 후 노동부 보령지청의 작업중지명령을 받고도 계속해서 발전기를 돌리고 시신 수습을 한 직원들에게 현장 훼손까지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성애 국장은 “서부발전은 사고를 은폐하려고 했다. (사고 이후 현장이) 우리 집 안방처럼 깨끗해졌다고 한다. 하청 노동자들한테 (사고 현장) 치우라고 했는데 ‘못 치운다, (현장으로) 못 올라간다’고 했는데 이미 현장 치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황스러운 건 (회사 측에서) 하청 노동자들에게 고인을 내리라고 했단다. 들것도 없고, 담요도 없어서 석탄 담은 마대자루 가져와서 여기에 담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조 국장은 “보령지청 작업중지 명령이 있은 후 오전 6시 30분부터 7시까지 작업을 했다. 고인 사망 확인하고 작업 멈추고 탄이 컨베이어벨트에 쌓여 있었다. ‘발전기에 탄 부족하다. 빨리 탄 올려라’라는 이 결정 누가 했나. 서부발전이 했다. 발전기 꺼뜨릴 수 없으니 긴급 연결해서 탄 올려라 (지시한 것이다). 시신이 수습되는데 전력 꺼진다고 전기 돌리고 있었다”고도 전했다.

    그는 “(하청 노동자들이 위험한 작업현장을) 28번의 개선 요구를 했는데, 서부발전은 거기에 드는 비용이 3억이라 어렵다고 답변했다. 노동자의 목숨 값이 3억도 안 된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원청인 서부발전이 하청업체에 지시해 사고를 은폐하려는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됐지만 서부발전의 사고의 책임을 하청업체 돌리고 있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우리 아들 왜죽였느냐”는 현장조사에 참여한 고인의 어머니인 김 씨의 물음에 “우리가 아니다. 하청이다. 우린 이 사고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7개월 만에 일자리 구한 아들…그 곳은 살인병기였습니다”
    고인의 어머니, 문재인 대통령에 “행동하는 대통령 되어 달라” 호소
    청와대 측 “사측에서 잘 조사할 것”

    전날 현장조사와 기자브리핑까지 참석한 고인의 부모들은 언론에 “아들의 억울함을 덜어주고 싶다”며 진상규명을 호소했다.

    어머니 김미숙 씨는 “우리 아들은 어려서부터 속 썩인 적이 없다. 너무 착하고, 너무 예쁘기만 해서 보기만 해도 아까운 아들이다. 아이가 죽었다는 소리에 저희도 같이 죽었다. 아이가 죽었는데, 저희가 무슨. 아무런 희망도 없다. 이 자리에 나온 건 우리 아들 억울하게 죽은 거 진상규명하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 현장에서 본 동료들에게 아들의 모습을 물어봤는데 머리는 이 쪽에, 몸체는 저 쪽에, 등은 갈라져서 타버리고, 타버린 채 벨트에 끼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부모가 이런 꼴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나…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 있을 수 있나. 옛날에 우리 지하 탄광보다 열악한 곳이 지금 시대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이런 살인병기에 내몰겠나”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김 씨는 “아이가 취업한다고 7개월 동안 수십 군데 이력서 넣었다가 마지막에 구한 곳이 여기였다. 대통령이 일자리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 당선되고 말로만 했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는 못 믿는다. 실천하고 보여주는 대통령이었으면 합니다. 행동하는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고인의 아버지 김해기 씨는 “불쌍한 우리 아들 좀 살려 달라. 열악한 시설에서 억울하게 (죽은) 내 아들을 좀 살려 달라. 우리 아들을 이렇게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을 구속 수사하고 진상규명해서 우리의 한을 풀어 달라”며 오열했다.

    한편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14일 오후 김용균 씨의 빈소를 찾았다. 이용선 수석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유가족들의 질문에 “사측이 시설을 개선할 것”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이에 유가족들은 재차 이후 대책을 물었지만 이 수석은 “사측에서 잘 조사할 것이라 믿는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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