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의안 의회 표결 연기,
    브렉시트 전망 더 불투명
    [세계는 지금} 메이 총리, 사면초가
        2018년 12월 12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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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언론의 예측이 정확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EU)과 합의한 브렉시트 합의안을 의회에 상정하며 정면돌파를 공언했지만 ‘전격’ 연기를 선택했다. 보수당 내 강경파들이 반대의사를 철회하지 않자 부결을 우려한 어쩔 수 없는 후퇴였다. 우회로를 선택하면서 시간을 벌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과 재협상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유럽연합의 상임의장은 재협상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재협상에 대해 영국과 해안이 붙어있는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결사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메이 총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재협상이지만 시나리오는 더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노딜 브렉시트(No-Deal Brexit)

    재협상에 실패하면 내년 3월에 영국은 유럽연합과 아무런 협상과 조약이 없이 그대로 떠나게 된다. 노딜 브렉시트다. 이 경우 유럽연합 가입국들과 개별적으로 다시 모든 조약을 맺어야 한다. 주도권을 가진 가입국들이 영국에게 불리한 조건을 내세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 알 수도 없는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영국이 하루아침에 섬으로 전락하는 최악의 경우다. 이를테면 런던과 파리를 잇는 해저고속열차 유로스타를 타려면 이제 여권이 아니라 비자가 필요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메이 총리가 당내외에서 공격을 당한 이유는 합의안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내각에서 사퇴한 장관들의 입에서 내용들이 흘러나오면서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격분했다. 메이 총리는 (구속력은 없지만) 의회 모독혐의로 양당에 의해 탄핵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노딜 만은 피해야 하는 시나리오지만 유럽연합은 단호하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악재다.

    메이 영국 총리(방송화면)

    백스톱(backstop)

    강경파들이 분노한 것은 백스톱 조항이었다. 브렉시트가 실시될 경우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사이에 거대한 장벽이 발생한다. 같은 땅덩어리에서 이동이나 왕래가 자유롭지 않게 되고 모든 물품들에 대해 관세 협정을 다시 맺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메이 총리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안전장치로 이른바 백스톱을 유럽연합과 협상을 진행했다. 아일랜드와 지브롤터만 관세동맹에 남는 예외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들이 반대를 표명하면서 백스톱 계획은 좌절됐다.

    백스톱 계획이 좌절되자 유럽연합을 탈퇴하되 관세동맹에 영국령 전체가 잔류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합의에 이르렀다. 보수당 내 강경파들이 분노한 것은 관세동맹의 기한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영국이 탈퇴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였다. 강경파들이 보기에는 한마디로 NO 브렉시트나 마찬가지였다. 메이 총리에게는 관세동맹 기한을 영국이 필요할 때 탈퇴할 수 있는 협상안이 마지막 카드다. 하지만 누가 하루아침에 다시 장벽이 생기는 것을 원하겠는가. 마지막 카드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2국민투표

    유력한 시나리오로 떠오르는 것이 국민투표를 다시 실시하자는 것이다. 지난 국민투표에서 영국 국민들은 브렉시트가 가져올 파장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쇠락한 제조업 지역을 일컫는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이 동유럽에서 온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일하는 곳은 서비스 분야였다. 글로벌기업들이 영국을 떠날 의사를 표시하면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선택에 혼란에 빠졌다.

    국민투표를 다시 실시해 유럽연합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하면 이 긴 여정을 간단히 끝낼 수 있다. 현실 가능한 시나리오 중에 하나지만 국민투표 회부에는 암초가 널려있다. 우선 보수당 내 강경파들은 처음 국민투표가 완전한 유럽연합 탈퇴(하드 브렉시트)였는데 그걸 다시 묻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강경파들이 동의를 하더라도 그건 메이 총리의 사퇴를 의미한다.

    총리 교체

    메이 총리가 협상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소속된 보수당 내에서도 내용을 공유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백스톱 역시 당에서 마련된 것이 아니라 문고리 측근들에 의해서였다. 그마저도 메이 총리는 협상과정에서 백스톱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마다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일관했다. 강경파만이 아니라 중도파들도 분노하기 시작한 이유다.

    1922 위원회. 보수당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해당한다. 이 위원회가 독특한 것은 보수당 하원의원 15%, 즉 48명이 불신임 서한을 제출하면 ‘자동으로’ 대표경선이 실시된다는 것이다. 언론에 따르면 지금까지 도착한 서한은 30여명이지만 당내에서조차 분노를 키운 메이 총리의 행보 탓에 재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위원회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강경파들은 이를 통해 총리를 교체하고 새로운 총리를 내세워 유럽연합과 하드 브렉시트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 계획의 헛점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던 국민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조기총선

    다우닝가. 메이 총리가 총리관저에서 나오지 않기 위해 협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커지고 있다. 메이 총리는 불신임을 받더라도 후퇴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조기총선은 보수당 강경파들도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당이 과반수에 모자라는 헝의회이고 이 때문에 북아일랜드 민족연합당과 불과 몇 석이 모자라 내각을 내주는 연정을 해야만 했다. 민족연합당이 메이 총리의 합의안에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가 자신의 자리를 놓고 영국의 운명을 시험하고 있다는 비난이 시작되고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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