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격차와 노총의 역할
    [경제산책] 협력이익공유제 그리고 노동자의 연대
        2018년 12월 10일 12: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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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소득격차가 어느 기업에 다니느냐에 따라 너무 크다는 것이다. 2015년 기준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의 원인을 여러 요인으로 분할해 보았을 때 전체 격차의 22%를 설명하는 것이 사업체 규모이고, 20.3%를 설명하는 요인이 근속연수이다. 그런데 사업체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직율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임금격차 원인의 절반이 대기업에 다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관련 정부 보고서와 기사)

    지불능력이 상대적으로 큰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간 급여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2017년 기준 중소기업 노동자의 급여가 대기업 노동자의 절반밖에 안된다는 사실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아주 많은 나쁜 일들이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1987년 노동자투쟁을 통해 시작되었지만, 현재와 같이 임금격차가 고착화된 것은 1998년 외환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이후이다. 외환위기 이후 노조가 잘 조직되어 있던 대기업은 임금투쟁을 통해 급여를 지속적으로 올릴 수 있었지만, 중소기업은 지불여력이 없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기업의 전략과도 관련되는데,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소수인력에게 높은 임금을 보장하여 기업에 대한 충성을 확보하고자 했고, 협력중소기업에 대한 단가인하를 본격적으로 강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임금격차는 대기업에게도 마찬가지로 비용압박의 원인이 되고 있는데, 비용압박에 직면한 대기업은 한편으로 청년을 신규로 고용하는 대신 비정규직 고용을 늘이거나 국내 신규투자를 기피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우월한 협상력을 이용하여 중소기업에 납품 단가인하를 더 강하게 관철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은 일자리는 많지만 지불여력이 없기 때문에 급여가 낮다. 그러다보니 청년들이 선택을 꺼려하고, 설령 취업을 하더라도 이직률이 높다. 이직은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원래 급여가 낮은데 잦은 이직을 하다 보니 근속연수가 작아 상대적 급여수준이 더 낮아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점은 중소기업 역시 마찬가지인데, 청년들의 잦은 이직에 따라 숙련이 축적되지 않아 경쟁력을 높일 수 없고, 역량이 쌓이지 않다보니 단가인하 요구의 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는 대기업 이익을 상승시켜, 대기업 노동자들의 급여 상승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렇지만, 중소기업의 중간재를 바탕으로 대기업의 경쟁력이 유지되는 것을 감안하면, 언제까지 이런 방식의 전략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는 대기업 매출 성장이 중소기업 매출 증가를 야기하여, 그나마 중소기업이 버틸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반도체와 석유화학 대기업을 제외한 대기업의 매출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자 협력중소기업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더 이상 그대로 둘 사안이 아니다.

    방송화면 캡처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의 홍장표 위원장은 매우 공격적인 화두를 던졌다. 협력이익공유제를 도입하는 것은 물론,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 역시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협력이익공유제란 대기업의 이익이 목표치를 초과할 경우 이를 협력기업과 서로 나누어 가지는 것을 말하며, 노동자들의 자발적 참여란 협력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원하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협력이익공유제는 의무가 아닌 자율이며 정부는 단지 이를 유도하기 위해 협력이익 공유에 대한 세제를 지원할 뿐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급여를 줄여야 한다는 말 역시 현행 임금을 삭감하자는 말이 아니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상승을 억제하고, 임금상승 억제로 발생한 재원을 협력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에 지원하자는 것이다.

    특히 이 제안이 대담한 것은 협력기업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자발적 희생을 요구한 점이다. 협력이익공유제는 과거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도입한 초과이익공유제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그리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놀라운 것은 노동운동의 주 의제인 노동자들 간 연대의 문제를 위원회가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정부는 기업을 위해 노동자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자주 했지만,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제안은 현재 모든 이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으로, 임금은 시장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희생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는 것은 개인 능력에 따른 대가이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간 것도 능력인데, 뭐가 잘못되었느냐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임금격차는 대기업 노동자들의 책임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말이 자발적 참여이지 강요이며, 윤리적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고임금을 받고 있더라도 실제로 자기 임금이 높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은 없기 때문에 대기업 노동자들의 자발적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더욱이 대기업 노동자들이 희생한 재원이 협력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는 보장 역시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성 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시장원리에만 근거할 경우 모두 정당한 비판이다. 시장 원리에서 보자면 능력 있는 개인이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많은 이윤을 낸 회사에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부러운 일이지 탓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치고 자기 임금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주장 역시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인데, 급여에 맞추어 소비가 이루어지다 보니 항상 빠듯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도 어렵다는 것이다.

    적어도 노동자들 간 연대가 필요하다는 전제가 없다면 위원회의 제안은 어떤 호소력도 가질 수 없는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누리는 ‘나홀로 고임금’이 사실은 중소기업에 대한 수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한들 “내가 중소기업을 수탈한 적이 있느냐?”고 말하면 끝이다.

    ‘나홀로 고임금’이 대기업의 국내 투자 기피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청년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 역시 동일하다. “내가 언제 청년들 취업을 방해한 적이 있느냐?”고 말하면 끝이다. ‘나홀로 고임금’이 결국 기업 경쟁력 약화를 야기하여 제조업공동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설득한들 “내가 언제 회사 잘못되라고 한 적 있느냐? 나만큼 회사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느냐?”란 말 한마디면 끝이다.

    더 이상 대화가 무의미하다. 노동자들 간 연대를 전제하지 않은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에 다닐 때, 요구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임금을 받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이런 이유로 위원회의 제안은 개인의 합리적 이익추구를 방해하는 월권행위에 다름 아니다.

    결국 문제는 노동자들 간 연대를 전제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연대의 원리는 시장원리를 넘어설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를 전제하지 않은 논의는 생산적이지도 않고, 무의미하다.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노동자들 간 연대를 주장해왔고, 이를 위해 가장 열심히 싸워왔다. 그렇지만 실제 노동자들 간 연대에 가장 중요한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문제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대기업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거나 사회보험을 강화하자는 등의 틀에 박힌 얘기로 대응해선 안 된다. 위원회는 이미 협력이익공유제를 통해 대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제안은 매우 구체적이며, 실제 진행되고 있는 사례까지 제시하고 있다. 연구자들 역시 실현가능한 구체적 대안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만약 노총이 이 제안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실현가능한 보다 나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필자소개
    부경대 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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