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사회 걱정했는데
사회가 종교 걱정할 처지
[종교와 사회] '자기 사랑'에 갇힐 때
    2018년 12월 03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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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종교와 평화”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는 종교가 사회를 걱정했는데 요새는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연일 터지는 개신교의 적폐적 현상뉴스에 목사인 나로서도 대략 난감할 수밖에 없기에 그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비단 개신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가 최하위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개신교 목사로서 더욱 면목이 없다. 과거 한국 기독교는 삼일운동의 중추세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지도적 역할을 감당했고, 여성해방과 교육, 의료 등 사회 개혁과 근대화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고 역사가들이 평가하는게 사실이다. 현대에 와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이미 1988년도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현 정권의 남북한 판문점 선언이나 평양선언문의 기초가 되기도 했고, 그 내용면에서도 3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는 평화실천을 위한 예언적 선언문이라고 해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한국 기독교가 민족의 독립, 평화, 인권, 통일 등의 문제에 있어서 사회의 선도적 역할을 어느 정도 감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일부 타락한 교회와 목회자들의 행태로 인해 개독교니 부자교니 세습교니 하는 비난을 당하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한국 기독교는 깊이 성찰해야만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사회 적폐의 대상이 되어 퇴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말할 수 있는데, 우선 종교로서의 기독교 자체의 교리적, 전통적, 역사적 특성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기독교 20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한편 그 종교적 본질의 진리체계 자체를 다시 검토하고, 21세기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진리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 기독교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단계에 이르지 않았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교의 본질적 진리체계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종교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인격적, 도덕적 인간성, 곧 품격의 문제가 아니냐 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종교 진리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포이어바흐는 “인간성은 이성과 의지와 감정인데, 이성의 힘은 인식의 빛이고, 의지의 힘은 성격의 에너지이며 감정의 힘은 사랑이다. 참된 존재자는 사유하고, 사랑하고, 의욕하는 존재자다. 그런데 그 중 감정의 힘 곧 사랑이야말로 인간 자신의 본질이자 인간의 절대적 본질인 신의 본질이다”고 했다. 인간 이성과 의지도 결국 감정이 흐름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감정이 도덕적 가치와 선악의 가치를 파악한 후에 이성적 체계와 법칙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행동을 이끌어내는 충동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감정 교육과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권력의 지도층 자리에 있거나, 구성원의 중추세력을 유지한다면 그 종교가 제대로 역할을 다 할 리가 없을 것이다. 감정 수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감성, 곧 감수성의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종교체계의 집단이라면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이 과연 종교 진리를 제대로 정립하고 전파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21세기의 인권, 생명, 평화, 정의에 대한 공감대, 감수성이 낮거나 없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종교는 현실과는 상관없는 초현실의 공간에서나 호응을 받지, 결코 현실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나 종교인들이 현실의 문제에는 무관심하면서 저 초월적 신비로운 감성에 열중하여 열정적, 열광적 기도와 예배의식 등에는 집착하면서도 위에서 말한 사회적 인권, 평화, 정의, 평화에 대한 공감과 감수성지수가 낮다는 것이 오늘 종교가 적폐현상을 낳는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 사회문제인 난민과 성소수자, 학생인권조례, 탈북자나 북한정권에 대한 편협적, 배타적 의식이 강한 한국기독교의 감수성을 보면 잘 알 수 있겠다.

결국 인간의 문제이며 사람의 문제다. 신의 본질이며 감정과 감수성의 핵심인 사랑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아니 사랑의 부족이 아니라 편협한 사랑의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본질은 사랑인데 이 사랑은 자기 사랑이 아닌 타인 사랑을 말한다. 자기로부터 해방되어 타인을 사랑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다. 자기 사랑을 부인하고 남을 사랑할 때 오는 고통을 지고 따르라는 말씀일 것이다. 도덕경 7장은 말한다. 하늘과 땅이 영원한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를 버리기에 성인이라고 했다. 나아가 완전한 비움에 이르라고 권고한다. 초기 불교의 본질도 무아(無我) 곧 자기 버림 정신이다. 열반(Nirvana)이 다른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허우적거리며 사는 정욕의 불길을 훅하고 불어 날리는 상태가 바로 열반이다. 예수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 말했다.

이러한 종교의 본질적 감수성을 망각하고 자기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사랑에 머무를 때 사회는 종교를 걱정하게 되고, 종교는 사회의 적폐가 된다. 종교 특성상 그 어느 집단보다도 가장 이기적 집단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유교 경전 大學은 인간이 밟아야 할 여덟 가지 단계를 말해준다. 사물을 깊이 연구해서 시야를 넓히고, 뜻을 성실히 하고 바른 마음으로 인격을 닦은 사람만이 가정을 세우고, 사회를 다스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곧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다. 나 아닌 이웃을 향한, 그리고 생명과 평화, 인권과 정의에 대한 공감, 감수성의 훈련이 되지 않은 한국 종교가 사회를 얼마나 어지럽히는지 오늘날 우리는 눈으로 잘 보고 있다.

필자소개
거창 씨ᄋᆞᆯ평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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