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사와 제작사,
    이제는 ‘블랙리스트’ 운영
    개별근로계약 요구 스태프 배제···턴키계약 관행 속 노동현실 열악
        2018년 11월 30일 07: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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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사들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드라마 제작 현장의 만연한 장시간 노동, 턴키 계약 근절을 위해 개별 근로계약을 요구한 방송 스태프들을 업계에서 배제·퇴출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전국영화산업노조는 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턴키 계약을 유지·강행하기 위해 일부 드라마 스태프를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를 작동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사진=추혜선의원 페이스북

    턴키 계약이란 분야별 감독급과 장비료·인건비 등을 구분하지 않고 프로젝트 전체를 ‘용역비’로 일괄 계약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로 인해 방송사나 제작사는 조명, 동시녹음, 장비, 미술 등의 업무를 하는 각 팀의 팀장과의 계약만 체결하고 팀의 구성원들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일하게 된다. 드라마 제작의 편이성만을 고려한 계약 방식이다.

    문제는 턴키 계약으로 인해 다수의 스태프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하루 18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최저임금 미지급, 안전사고 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tvN 드라마 ‘화유기’ 스태프 추락사고나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스태프 사망사고는 턴키 계약 등으로 인한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배드파파’의 살인적인 노동환경도 논란이 됐다. 이 드라마의 스태프들은 이달에만 하루 20시간, 일주일 100시간이 넘는 시간을 일했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아침, 점심을 모두 거르고 촬영을 한 스태프들에게 제작사가 나눠준 것은 초코바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방송스태프지부는 지난 27일 최승호 MBC 사장 면담을 위해 상암동 MBC 사옥을 방문했으나 조합원들은 방송국 입구에 가로막혀 출입조차 하지 못했다. 추 의원은 “지금 방송스태프 노조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당장 52시간의 근무시간을 요청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살기 위해 잠을 잘 수 있는 시간, 식사시간을 요구한 것인데도 방송사와 제작사는 그저 묵묵부답”이라며 “방송제작현장을 개선하자는 현장 스태프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 대한 방송사와 제작사의 대응은 이처럼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노조를 중심으로 일부 스태프들 사이에선 개별 근로계약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이들을 차기 드라마 제작에 배제하는 방식으로 턴키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노조는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사들은 스태프 노동자들이 개별 근로계약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배제하고 영화와 광고 현장의 스태프들을 직접 섭외해 턴키계약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며 “심지어 일부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차기 드라마 제작에서 배제하는 등 ‘드라마 제작 현장의 블랙리스트’마저 작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드라마 제작 현장의 개별 근로계약 체결을 강하게 요구했던 노조 간부들은 수개월째 일감이 끊겨 생계마저 위협 받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영화산업노조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턴키 계약 관행 근절 등을 위해 방송스태프지부와 이날 공동협약을 맺고 살인적 노동시간 근절, 법정 근로시간 준수, 개별 근로계약 체결 등을 위해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안병호 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은 “영화나 방송에서 턴키계약은 꽤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드라마, 영화 제작의 편의를 위해서만 계약이 고려돼 구성원들은 제작 현장에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면서 “지금 영화 현장에선 턴키계약 관행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개별 근로계약을 얘기하고 근기법까지 준수하는 상황이다. 반면 드라마 제작 현장은 일주일 동안 한 두시간 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안 위원장은 “제작사들은 방송 스태프의 개별 근로계약 요구에 영화팀이나 광고팀을 섭외해서 어떻게든 제작만 하려고 혈안이 돼있다. 그런 방식의 영화와 방송은 더 이상 지속돼선 안된다”며 “이 때문에 영화산업노조는 안전하고 건강한 현장을 위해 방송스탭지부와 공동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노사정이 모인 논의기구 구성으로 드라마 제작 현장의 실제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추 의원은 “실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방송사, 제작사, 현장 노동자가 함께 모여 상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며 “각 방송사와 제작사 대표들은 방송제작현장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현장 스태프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과 하루빨리 성실한 협의에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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