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11년 만에
    직업병 피해 “공식 사과”
    황상기 “모든 직업병, 폭넓은 보상해야···삼성, 노조 할 권리 존중해야”
        2018년 11월 24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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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가 자사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11년 만에 공식 사과했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부 대표이사인 김기남 사장은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재 판정 이행 합의 협약식’에서 발표한 사과문을 통해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김 사장은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 받았는데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드리지 못했다”며 “그 아픔을 충분히 배려하고 조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병으로 고통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2007년 고 황유미 씨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11년, 삼성전자와 피해자들 간에 중재조정이 시작된 지 4년 만에 내놓은 사과다. 피해자 대변 시민단체인 반올림에 접수된 직업병 의심 노동자는 무려 320명 중 118명은 이미 사망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측은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방안 논의는 제3의 독립기관인 법무법인 ‘지평’에 위탁하기로 했으며, 위원장은 지평의 김지형 대표변호사가 맡기로 했다. 김 사장은 “지원보상위원장이 정하는 세부 사항에 따라 2028년까지 보상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전자산업을 비롯한 산업재해 취약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중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500억 원 규모의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을 출연하고, 이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기탁하게 된다.

    보상 대상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제1라인이 준공된 1984년 5월 17일 이후 반도체·LCD 생산라인에서 1년 이상 근무한 현직자와 퇴직자 전원이다. 보상액은 근무 장소, 근속 기간, 질병 중증도 등을 고려해 산정하되 백혈병의 경우 최대 1억5000만원으로 각각 정해졌다.

    앞서 지난 1일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는 보상 범위와 액수 등을 담은 중재안을 삼성전자와 반올림에 각각 전달했다.

    반올림은 이날 협약식에서 다른 전자계열사에서 발생한 직업병에 대한 보상대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2007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부친인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11년 만에 내놓은 삼성전자의 공식 사과에 대해 “지난 11년간 수없이 속고 모욕 당했던 일이나 직업병의 고통,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생각하면 그 어떤 사과도 충분할 순 없다”며 “제 딸 유미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쁘지만 유미와 제 가족이 겪었던 아픔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황 대표는 “직업병 피해는 삼성전자 반도체·LCD 부문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SDI 등 다른 계열사에서도 유해 물질을 사용하다가 병든 노동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사업장에서도 비슷한 피해자들이 있다. 삼성은 이 모든 직업병 노동자들을 위한 폭넓은 보상을 마련하기 바란다”고 강조해 말했다. 조정위의 중재안에 대해서도 “사외협력업체 소속이라서 혹은 보상 대상 질환이 아니라서 보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황 대표는 정부 등에 대해서도 산재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 부족했다면서 산재보험제도 개혁, 직업병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강화 등을 제안했다.

    아울러 “삼성은 국내와 해외에서 노동조합을 탄압해 왔다. 이제라도 사과하고, 노동조합을 할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한정애·강병원 의원, 정의당 이정미 대표·심상정 의원 등이 참석했다.

    심상정 의원은 축사에서 “삼성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해 중재를 통한 해법을 제안했던 사람으로서 감회가 크다”며 “만시지탄이지만 오늘의 이 합의는 우리 사회에서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인 기업윤리를 확립하는 계기와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우원식 의원은 “더 이상 제2의 황유미 씨, 황상기 아버님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앞으로도 삼성을 단지 거대한 기업이 아닌 존경받는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길 또한 삼성 스스로 공동체의 법과 제도, 원칙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11년 만에 삼성전자와 피해자들이 합의에 이른 것에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너무나도 길고 힘들었을 피해자와 가족들의 그간의 고통에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늦었지만 사회적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번 협약식이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 전환의 본보기가 되고 근로자들이 동등한 경제주체로서 존중받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며 “반올림 피해자들의 값진 희생과 노력이 산업 재해로 어디선가 고통 받고 있을 또 다른 피해자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오늘의 사과와 보상 합의는 아주 작은 매듭에 지나지 않는다”며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한 투쟁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최 대변인은 “삼성은 지금도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산업재해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산업재해 보상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면서 “근본적으로 직업병을 예방할 수 있는 노동환경 마련하고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삼성전자의 공식 사과로) 피해자와 그 가족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 수 있기를 바라며,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신창현 민중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삼성전자의 공식사과와 보상은 고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나서 시작된 지난 11년간의 지난한 투쟁이 만든 성과”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삼성전자가 공식 사과하고 보상에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 대변인은 “정작 사업장에서 직업병 발생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를 영업비밀이라며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면 당장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부터 공개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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