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결과는
‘노동존중’ 아니라 ‘노동억압’ 사회로
노조뿐 아니라 참여연대·민변 등 시민사회도 ‘반대’
    2018년 11월 19일 04: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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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과 노동·법조·시민사회단체가 정부와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입법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퇴행”이라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민변 노동위원회, 전국여성노조,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1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확대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의 개정 취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일”이라며 정부와 국회를 이같이 비판했다.

탄력근로제는 특정한 주에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노동을 가능하도록 하고, 초과 노동시간에 대한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다. 현행법에 따르면 2주에서 노사 합의에 따라 최대 3개월까지 허용 가능하다. 현행 제도에 따라도 사용자는 6주 연속 주 최대 64시간까지 합법적으로 일을 시킬 수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지난 5일 여야정 협의체 합의문에 담기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현행 최대 3개월까지 가능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에서 1년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정의당이 강하게 반대했음에도 청와대와 여야 교섭단체 3당은 이를 ‘합의’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언론에 발표했다.

여야 교섭단체 3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연내 처리를 합의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2일 출범식이 열리는 경사노위를 향해 ‘20일까지 합의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재계의 오랜 요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노동계의 입장을 배제한 채 장시간 노동 정책 입법화를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10일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위)와 17일 한국노총 노동자대회. 양대노총의 두 집회 모두 탄력근로제를 강력 반대했다. (사진=노동과세계, 한국노총)

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정병욱 변호사는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300인 이상 사업장을 제외하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1주 최장근로시간은 주 80시간 적용된다고 밝히고 있다”며 “주 80시간이면 휴게시간 없이 하루 11시간 42분을 일해야 하고, 출·퇴근을 빼면 잠만 자고 일만 해야 하는 그야말로 합법적인 초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면 6개월인 26주를 주 80시간을 합법적으로 일을 시킬 수 있게 된다”면서 “특히 1일 8시간 규정만 있고, 1일 연장근로시간 제한 규정은 없어 1일 무제한 노동이 이뤄질 수 있는 근로기준법 구조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까지 확대될 경우 많은 노동자들이 무제한 노동에 노출되는 것은 명약관화”라고 우려했다.

고용노동부는 현행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관한 고시에서 ‘4주 동안 (1주 최대) 64시간 일한 경우 발생한 뇌심혈관질환은 업무와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밝혔다. 이는 현행 3개월까지 가능한 탄력적 근로제마저도 과로사가 가능한 노동조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단체들은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잇따라 죽어가고 있다”면서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개악안의 결과는 ‘노동존중 사회’가 아니라 ‘노동억압 사회’”라고 비판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노동계 “사람 갈아 넣는 노동 계속될 것”
시민사회 “사용자 로비 받고 탄력근로제 개악…강력 규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관련 입법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주 52시간 입법 이후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체감하고 있었다. 특히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 과로자살이 빈번하게 벌어졌던 IT업종에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사내 제도가 바뀌거나 일부 기업에선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노사 합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추진하면서 어렵사리 첫 발을 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제도 개선도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임영국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사무처장은 “올해 상반기 52시간제 개정 후 IT업종 300인 이상 기업에서 근무제도 변경을 시도했는데 한 달도 안 되어 정부가 탄력근로제 확대를 들고 나왔다”고 짚었다.

임 사무처장은 “탄력근로제 확대로 IT업종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불러온 장시간 노동의 대명사인 크런치모드가 공공연하게 부활할 것”이라며 “더 나아가 포괄임금제로 대표되는 ‘공짜노동’을 합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을 표방하고 있는데 그 정책 기조가 아직까지 유효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언제까지 IT업종 노동자들이 ‘사람을 갈아 넣는 노동’을 계속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나온 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과로사를 넘어 과로자살,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며 “주말이 있는 삶과 저녁이 있는 삶에 역행하는, 명백하게 일부 사용자 집단의 로비를 받고 탄력근로제를 개악하는 정부여당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정미 “노동시간 단축은 3년 넘게 논의…기업 민원엔 전광석화”

정의당은 여야정 협의체에 참여한 여야 정당 중 유일하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교섭단체 3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여야정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정미 대표는 “노동자의 건강권과 주 52시간 상한제의 취지가 흔들린 것이 뻔한데도 대화의 파트너인 양대 노총을 압박하면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노동시간단축은 3단계에 걸쳐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논의하면서 기업의 민원은 전광석화처럼 받아들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하는 양대노총을 ‘기득권 집단’이라고 비난하는 정부여당과 보수정당에 대해 “탄력근로시간제로 인해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는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노동약자들”이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넷마블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는 사망하기 한 달 전에 78시간, 두 달 전에는 89시간 장시간 노동을 했다가 돌연사해 산재 판정을 받았다”며 “그럼에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밀어붙이기 위해 엄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기득권을 운운하면서 본질을 호도하는 정부여당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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