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만들어낸 야만의 사회를 거부하며
    2006년 05월 22일 07: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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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인간은 살아있어서 인간이 아니라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사람들은 불편한 몸짓으로 힘겹게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강현욱 강남구의원 비례대표 후보의 발언은, 중증장애인인 그가 의회의 연단에 서고 자연스럽게 비장애인들과 시선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어줬다.

22일 민주노동당 중앙당사 대회의실에서는 장애인 후보들의 출마 선언 기자회견이 마련됐다. 장애인인 김태현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 부장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주노동당 장애인 후보들과 장애인 공약을 지지하는 장애인 단체 대표들이 함께 했다. 김종철 서울시장 후보, 김혜경 전 대표, 노회찬 의원 등 민주노동당 당직자도 참석했다. 화려한 이벤트도 없고 참석자도 많지 않은 조촐한 기자회견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장애인 후보들이 소수가 아닌 주인공이 됐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는 강현욱 후보를 비롯해 9명의 장애인 ‘대표 선수’들이 전국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다. 장애인 후보의 활동보조인조차 선거운동원으로 세는 ‘무식한’ 선거법과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있는 열악한 선거 환경.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선거운동을 치르고 있는” 말 그대로 ‘9인의 전사들’이다.

   
▲ 강현욱 강남구의원 비례대표 후보(중앙)가 22일 민주노동당 장애인 후보 출마 선언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강현욱 후보는 “우리는 장애를 결코 원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을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하고 또 가족의 일방적인 책임과 희생으로 돌리는데 급급하고 당사자나 가족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인간적 한계에 부딪히면 마치 처치 곤란한 폐기물처럼 시설에 수용하고 보호하고 감금하는 이 땅의 야만적인 풍토를 오랫동안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강 후보는 “하루빨리 장애인이 인간답게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당사자 입장에서 정책을 펼 수 있는 장애인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했다”며 장애인 후보들의 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장애인부문 10대 공약을 채택했다.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고용 5% 준수, 중증장애인 및 장애여성에게 더블카운트제도(할증제도) 도입 ▲장애인고용지원센타 설치 ▲교통약자를 위한 부르미택시 도입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 제공 ▲장애인 주간보호시설, 단기 보호시설 확충 ▲시청각 홈페이지 구축․시군구청에 수화통역사 전담 배치 ▲성년이 된 정신지체장애인․발달장애인을 위한 후견인 제도 도입 ▲장애아동에게 등하교 도우미 제공 ▲장애여성에게 건강관리 프로그램 제공성인지적 관점과 다양한 장애유형을 고려한 장애인 종합정책 추진 등이다.

   
▲ 22일 민주노동당 장애인 후보의 출마 선언 기자회견이 마련됐다. 비슷한 수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참석해 이날 만큼은 장애인 후보들이 소수가 아닌 주인공이었다.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 정만훈 소장은 “장애인에 대한 각 정당, 후보들의 정책이나 마인드를 보면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중증장애인으로서 더욱더 암담함을 느낄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노동당의 장애인 공약은 “중증장애인으로서는 아쉬움 점이 없진 않지만, 장애 전반에 걸친 공약과 장애인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고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면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더불어 정 소장은 “민주노동당의 사회공공성 강화와 의료공공성 강화, 그리고 지역예산에 대한 감시부분이 장애인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지지를 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의 박김영희 공동대표도 “선거 때가 되면 끼워맞추기식 공약에 허탈감과 절망감을 느껴왔다”면서 “민주노동당의 10대 공약은 현장에서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이 만든 공약이어서 희망을 느낀다”고 밝혔다.

박김영희 공동대표는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신돈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질문에 ‘손을 들어서 엎으면 된다’, ‘엎어버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면서 “민주노동당이 우리사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시각을 엎어버릴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민주노동당 장애인 후보 출마 기자회견은 장애 차별을 깨는 상징의식으로 마무리됐다.

김종철 서울시장 후보는 앞서 “장애인 운동의 역사가 보여주듯 장애인 복지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 활동보조금 위한 노숙농성 등 장애인 당사자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장애인 공약을 드리고 지지받는 후보가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기 인권을 실현하는데 동지이자 벗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장애인 후보들의 염원을 담은 상징의식으로 마무리됐다. 김주현 관악구의원 비례대표 후보가 온몸을 부딪쳐 ‘장애 차별’이라 적힌 종이를 찢어냈다. 몇 해 전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처음 접했던 장애인들의 시위 현장이 떠올랐다.

막아선 방패에 계속해서 온몸을 부딪치던 장애인들. 더 이상 그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내던지지 않아도 될 날을 꿈꾸며 민주노동당 9명 장애인 후보들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한편 이날 장애인을 시작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각계각층의 릴레이 지지선언이 이어질 예정이다. 23일에는 문화예술인 531인이 민주노동당 지지선언 기자회견을 갖는다. 또한 24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지지선언, 25일에는 보건의료인, 여성노동자, 아토피 공약, 노무사 지지선언이 각각 진행될 예정이다.

26일에는 청년단체 회원과 학생 등 2030, 여학생 대표자, 원로인사 지지선언이 이어진다. 이밖에 교수와 법조인 지지선언도 예정돼 있다. 마지막으로 29일 천영세·문성현 선대위원장과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 5.31 민주노동당 공동선대위원장 10인이 전원 참석하는 민주노동당 각계각층 지지선언이 진행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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