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부 산하기관 한국잡월드
    자회사 강요, 비정규직 집단해고 임박
    12년의 처절한 KTX 승무원 투쟁 사례 반복 우려돼
        2018년 10월 30일 05: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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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직화 약속을 믿고 입사했던 KTX 승무원들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5월 집단 해고됐다. 이들은 1명의 동료를 떠나보내는 긴 투쟁을 거쳐 지난 7월 20일, 12년 만에 복직됐다.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는 철도공사의 기이한 주장을 받아들인 사법부 판결의 뒤에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였다.

    지금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들의 집단해고 위기는 지난 2006년 KTX승무원 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KTX 해고 승무원 투쟁 12년을 함께 했던 이들은 노무현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진 해고 승무원들의 처참한 복직 투쟁이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를 숨기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30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자회사 강행 비정규직 집단해고 중단, 잡월드 직접고용 재논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에 참석한 양한웅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KTX 해고 승무원들의 복직 합의에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던 그가 잡월드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 집단해고 위기 앞에서 12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그 당시엔 문제가 그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그런데 12년이 흘렀고 그 사이에 1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KTX 승무원들의 12년, 그 험한 세월을 다시 반복해서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잡월드 문제는 KTX 여승무원 해고와 비슷하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정확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표현을 썼고 특히 공공기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부분 ‘정규직이 되겠구나’ 기대했다. 그런데 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해고 위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모두 거짓, 위선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도 “자회사 전환으로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을 문재인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했던 참여정부 시절에 KTX 승무원들이 자회사 문제로 투쟁하다가 해고를 당하고 12년 만에 복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잡월드를 또 다시 그렇게 만들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잡월드 자회사 강행 규탄 기자회견(사진=곽노충)

    잡월드의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들은 내달 2일 집단 해고될 위기에 놓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 일성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했지만, 잡월드에서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를 새로 만들어 편입하는 방식으로 고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다. 문 대통령의 정규직화 약속을 굳게 믿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잡월드의 기만적 행태에 단식, 노숙, 삭발농성 등을 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잡월드는 자회사 편입을 거부하는 160명의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 전원을 해고하겠다는 입장이다.

    잡월드는 청년실업 및 인력수급 불균형 완화와 어린이·청소년 직업관 형성, 진로설계를 지원하는 종합직업체험관이다. 7년 전 설립된 이 기관에서 일하는 380여명의 직원 중 87.8%인 330명이 비정규직이다. 56명밖에 되지 않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의 3분의 1(19명)이 관리직인 임원과 1~3급이다.

    반면 330명의 전체 비정규직 중 직업체험을 지도하는 강사 직군인 ‘직업체험 선생님’ 275명도 모두 비정규직이다. 이 외에도 발권부터 적성감사, 상담 등 해당 기관에서 핵심 업무를 하는 이들 모두 정규직이 아닌 용역업체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다. 잡월드는 무려 7개 용역업체와 계약해 33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 문제 발생 시 인솔하는 강사들
    전원 비정규직…“비상대피문 열 권한도 없다”

    잡월드 강사들은 안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이들을 비상대피로까지 인솔하는 업무까지 맡고 있다. 체험 시작 전 비상대피 안내도를 설명하고 강사를 따라 안전하게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험관을 찾은 어린이·청소년들에게 고지한다. 하지만 이들 비정규직 강사들은 비상대피문을 열 권한이 없다.

    청소년 체험관 강사인 이주용 경기지역지부 한국잡월드분회 부분회장은 “체험 전에 강사들이 ‘비상대피 안내도 설명하고 우리가 인솔한다’고 하는데 이 말 자체가 민망한 상황이다. 강사들 사원증으론 비상대피문을 열 수가 없다. 안전사고가 난다면 우리 강사들은 대피를 할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체험관 내부에 있는 엘리베이터 등 시설 안전문제도 심각하다.

    이 부분회장은 “잡월드 체험관 내부 엘리베이터 유리벽에 균열이 생겼지만 테이프로만 고정해놓은 상태로 한 달이 지났다. 아이들이 기대거나 잘못하면 엘리베이터 아래로 모두 떨어지는 안전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며 “그런데 그런 문제는 개선하지 않고 정규직 사무실 내에 문을 설치하는 일은 단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잡월드의 ‘이상한 자회사’ 설립
    자회사 설립 비용만 5억, 채용절차도 복잡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를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로 편입하려는 잡월드의 결정은 비용 측면에서 봐도 비효율적이다.

    잡월드가 수의계약을 통해 컨설팅업체로 선정한 갈렙앤컴퍼니의 연구용역 결과를 봐도 자회사 전환의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갈렙앤컴퍼니가 내놓은 연구 결과 중 ‘직접고용 및 자회사 형태의 실효성 비교분석’ 자료를 보면 그렇다. 직고용과 자회사 전환, 두 가지 경우에 대해 비용과 절차적 효율성 등을 비교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갈렙앤컴퍼니는 인천공항에서 일당 100만원짜리 황제용역을 수행해 지난 201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던 업체로 당시 외주화를 합리화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 업체는 연구자료를 통해 전환소요 비용과 관련해 “직고용을 하면 소요비용이 없음”, “자회사 시 자본금 출자 및 설립비용 발생”이라고 적시했다. 전환절차의 복잡성에 대해서도 “직고용 시 전환형식에 따른 채용 절차만 진행”해도 되기 때문에 “단순”하다고 설명한 반면, 자회사의 경우 “자회사 설립에 따른 절차 선행이 필요”해서 “복잡”하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라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취지 자체에도 반한다. 현재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들은 용역업체를 통해 1년 단위로 계약을 해 잡월드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를 위한 용역사업비 중 이윤과 일반관리비는 약 8억원 규모, 만약 잡월드가 자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관리 인력의 인건비와 기타 일반관리비로 약 5억원이 소요된다.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할 예산은 3억 원밖에 남지 않는다. 전환대상자가 총 338명임을 감안하면 고작 1인당 월 7만6천원을 더 받는 셈이다.

    더 많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더 복잡한 절차를 거치면서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어떤 이점도 없는 자회사 설립 방안을 잡월드는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실상 어떤 논의도 없이 추진하고 있다.

    이 용역보고서는 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경영관리본부를 중심으로 응답자 25명 중 13명이 자회사 설립 방안이 타당하고 답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정규직 임직원 13명이 찬성한 설문조사 결과는 자회사 설립 추진의 거의 유일한 근거다.

    퇴직 앞둔 고위공무원이 ‘예산 낭비’ 자회사 설립 추진 주도?
    노조, 퇴직 공무원 산하기관 낙하산 취업 의혹 제기

    자회사를 만들면 비정규직 처우에 사용해야 할 예산의 60%가 낭비된다. 그런데도 왜, 잡월드는 비효율적이고 복잡한 절차를 요하는 자회사 설립을 결정했을까. 일각에선 고위공무원 낙하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잡월드를 거쳐간 3명의 이사장 중 2명이 서울지방노동청장,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임원 출신이다. 현재 유일한 1급 임원인 A경영지원본부장 역시 올해 초까지 진주고용노동지청장을 했다. A본부장은 현재 자회사 설립을 주도하고 있다.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자회사를 앞서서 주도하고 있는 A경영지원본부장이 60년생으로 정년을 앞두고 곧 명예퇴직을 한다. 그런 A본부장이 (사내에서) 공공연하게 자회사 사장이 되겠다고 떠들고 있다. 국민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공공기관을 자회사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낙하산, 채용비리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조폐공사나 중진공 등 이미 자회사를 설립한 공공기관에서도 기관의 임원 출신이 대표이사를 하고 있다.

    노동부 컨설팅단 자격으로 노사전협의체 회의에 참여한 B노무사는 “잡월드처럼 정규직 대비 6배 이상의 인원이 전환 대상인 경우는 없다”며 “대규모 인력을 직접고용하기는 담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자회사 설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해 말까지만 해도 잡월드는 직접고용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B노무사가 참석한 지난해 12월 20일 4차 회의부터 자회사 전환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B노무사는 현재 설립 중인 잡월드 자회사인 ‘잡월드 파트너스’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노조는 “편파적 컨설팅으로 자회사 전환을 유도하고 본일 일자리까지 챙긴 것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비정규직 집단해고 방치하는 노동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해고 문제가 고용노동부 안에서 벌어졌다는 것 역시 큰 문제다. 그러나 노동부는 이러한 내부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이주용 부분회장은 “강사 직군들의 투쟁이 이렇게 길어질지는 몰랐다. 노동부 산하 기관이기 때문에 빨리 끝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노동부가 이렇게 팔짱만 끼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고 털어놨다.

    김경자 수석부위원장도 “잡월드분회 조합원들은 단식, 파업, 농성, 삭발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며 자회사 전환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노동부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잡월드는 11월 2일까지 자회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한다”며 “노동자들이 살인과 같은 해고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노동부 뭘 하고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불공정하게 진행된 노사전 협의를 되돌려 제대로 된 논의를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앞서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들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노사전 협의체에 참석은커녕 개최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참석하기 시작한 4차 회의에선 이미 자회사 전환으로 잠정 결정이 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잡월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회사에 끝까지 반대하면 내달 2일 자회사 채용공고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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