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의료정보까지
대기업 돈벌이 수단 되나
개인정보 활용 가이드라인, 박근혜 추진하다 폐기 문재인은 입법화
    2018년 10월 10일 04:03 오후

Print Friendly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환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제공한 개인의료정보를 개인 동의 없이 보험사나 통신사가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노동·보건의료 등 시민사회는 민감 정보인 개인의료정보를 대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물론, 의료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9개 대형병원 5000만 명의 환자 개인 의료정보를 통해 ‘바이오헬스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사업을 2020년까지 완료하고 기업들의 상업적 활용과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개별 병원에 수집된 개인 환자 진료 기록 및 모든 검사 결과 등을 다른 병원과 공유하는 내용이다. 병원 간 공유하는 의료정보는 진료 목적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정보 주체인 환자 개인의 동의 없이 39개 병원장들의 동의만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병원의 환자 의료정보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개인의료정보를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8년부터 5개 병원 건강검진 결과를 내려 받을 수 있는 ‘마이데이터’ 시범사업을 확장, 추진하고 있다. 이는 IT기업들이 제작한 앱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개인의료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사용자들이 동의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보건의료단체 등은 이 사업이 민간보험회사의 보험금 인상, 지급 거절 등을 위한 정책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흐름과 함께 최근 서울아산병원은 카카오인베스트먼트, 현대중공업지주와 의료데이터 합작회사인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를 설립해 의료정보 시장 선점에 나섰다. 네이버도 분당서울대병원, 대웅제약 등과 함께 시행한 헬스케어 빅데이터 사업을 기반으로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31일 기업이 정보주체인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후, 지난 4일 일자리위원회 회의에도 참석해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구축해 상업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개인의료데이터 활용범위 구체화’를 규제혁신 방안 중 하나로 꼽아 논의했다.

노동·보건의료·여성·장애·인권 등 각계 시민사회단체들은 10일 오전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인정보 규제완화가 아니라 개인의료정보 자기결정권과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인정보 상업화 반대 기자회견(사진=유하라)

개인의 의료정보를 보험사나 통신사 등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됐을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의료 취약계층의 피해다. 기업 간 개인의 의료정보가 모조리 공유될 경우 의료 취약계층, 빈곤계층은 민간보험에 전혀 가입할 수 없거나, 보험사에 터무니없이 높은 보험료를 지급해야만 가입할 수 있게 된다. 계층별 건강 불평등 문제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개인의 의료정보들이 상업화되기 위해 (민간보험사에) 넘어간다면 보험이나 의료 혜택에 있어서 낙인이 될 우려가 가장 크다. 민감한 의료정보를 상업화한다면 빈곤계층과 취약계층에 유리하게 작용하겠나. 결국 그들은 배제와 낙인으로 인해 더 취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성의 경우 임신, 낙태, 부인과 질환 등에 대한 정보가 유출될 우려도 있다. 가족력이나 유전병, 성매개 감염병 치료, 정신질환 치료 등에 대한 정보 역시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해 사회적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보건의료계는 개인의료정보 보안에 대한 신뢰 붕괴가 전반적인 의료시스템의 붕괴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산부인과 기록의 가장 기초적인 자료인 산과력을 환자는 의사를 믿고 모두 이야기하는데 이 정보가 밖으로 유출된다면, 어떤 환자가 자신이 인공유산을 몇 번했는지 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나. 환자의 비밀, 정체성에 해당하는 정보가 산업발전의 목적으로 쓰이게 되는 순간 환자와 의사 간 신뢰가 완전히 깨져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 공동대표는 개인의 의료정보를 보험사나 통신사에 넘기는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 “(해당 정책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민주정부가 하는 최악의 짓이 될 것”이라며 “결코 있어서는 안 된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빅데이터 활성화를 명분으로 한 개인정보 활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박근혜 정부 때 나와 폐기된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해당 정책을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혁신성장’을 기치로 하는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야 한다고 했던 박근혜의 창조경제가 이제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성장정책이 됐다”고 비판했다.

최미영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도 “단두대에 올려야 할 것은 규제가 아니라 여전히 남아있는 적폐 관료들이고 개인의료정보를 사고 팔아서 이익을 취하려는 자본가들”이라며 “그 누구도 이윤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의료정보가 팔려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부는 규제완화가 아니라 개인의료정보를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