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지석영의 한글날 번개모임
[역사의 한 페이지] 다산과 송촌의 '천상 대화'
    2018년 10월 08일 08: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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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리는 날 목화학당

남종: 그럼 오늘은 S,U,V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애신: S에는 새드 엔딩(sad ending)이 있지. 슬픈 끝맺음 말이다.
남종: 아! 맞다. 애기씨께서 처음부터 알고 있던 말이었죠.
애신: 그렇지. (혼잣말로) 이방의 사내. 이리될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남종을 보며) 질문이다. 이방인은 영어로 뭐라고 하느냐?
남종: 오! 신기합니다. 이방인도 S에 있습니다. 스.트.레.인.져(stranger)..
애신: 스.트.레.인.져… S에는 온통 슬픈 단어들뿐이구나.
남종: 아닙니다. S에는 스노우(snow)도 있습니다. 눈이요..
선샤인(sunshine)도 있고 스타(star)도 있습니다. 햇살과 별입니다.
애신: 눈과 햇살과 별이라..모두 하늘에서 빛나는 것들이구나.
남종: 어! 그 하늘도 S에 있습니다. 스.카.이(Sky).
애기씨는 이 중 어떤 단어가 제일 좋으십니까?
애신: 글쎄…..

[사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애신이 영어를 배우는 장면(tvN 화면 캡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양반집 규수 애신이 목화학당 동료 윤남종에게 영어를 배우는 장면이다. 개화기 조선인들이 영어를 처음 배우는 장면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드라마 속 황도공(陶工)이 미국에서 건너 온 맥주를 마시고 낯설어하는 것만큼이나 당시 조선인들에게 영어도 그러하였다. 생소하기 짝이 없는 영어를 처음 접한 조선인들은 그 말을 ‘왜가리가 시끄럽게 지절거리는 소리’라고 하였으며, 알파벳을 보고는 ‘구름도 산도 아닌 그림 같은 글자’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김영철, [영어, 조선을 깨우다] Ⅰ장)

다산의 아학편과 송촌의 아학편

작년 봄 경매에 옥편처럼 생긴 재미있는 책이 하나 나왔다. 원래 책에서 표지가 떨어져나간 것을 누가 새로 표지를 만들어 붙였는데, 책 제목은 [大韓國文(대한국문)]이었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한자(漢字)에 대한 우리말 음과 뜻을 밝힌 일반 옥편과 달리, 일본어 음과 뜻, 중국어 발음, 게다가 해당되는 영어 단어와 발음까지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관련 자료를 찾아봐도 [대한국문]이란 책은 따로 없었다. 1906년 주시경이 만든 [대한국어문법]이란 책이 있으나 경매에 나온 책과는 다른 책이었다.

이리 저리 조사해보니 경매에 나온 책은 송촌 지석영이 1908년 편찬한 [아학편]이었다. 책의 표지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책 제목을 바꾸어 버리는 바람에 이 책을 금방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진] 지석영이 간행한 [아학편]. 표지 제목을 누군가가 [대한국문]으로 써 놓아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이 책이 [아학편]이라는 사실을 놓칠 수 있다.(박건호 소장)

이 책의 일러두기에 해당하는 권두(卷頭)는 크게 [대한국문(大韓國文)], [화음(華音)], [일본국문(日本國文)], [영국문(英國文)]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제일 앞에 나오는 [대한국문]을 책 제목으로 해버렸으니 이 책의 정체가 애매해진 것이었다. 책 제목 빼고는 서문이라든지 책 구성이라든지 모든 정황을 고려하건대 [아학편]이 분명하였다.

이 책을 어렵게 낙찰 받은 그 당시 우연히도 SNS와 언론에서는 이 [아학편]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영어 학습서로 [아학편]이 있었는데 그 적어놓은 발음 기호가 흥미롭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어떤 이들은 조선시대 영어 학습을 위한 교재인 이 [아학편]을 정약용이 썼다고 함으로써 사실을 크게 왜곡시켜버렸다.

다산 정약용이 영어 교재까지 만들었다고 하니 사람들은 다산의 다재다능에 놀라며 큰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건 명백히 잘못된 정보였다. 다산과 송촌이 쓴 동일한 제목의 책 [아학편]을 혼동하면서 생긴 문제였다. 1908년에 간행된 지석영의 [아학편]을 가지고 19세기 다산 정약용이 영어교육을 위한 교재를 만들었다고 설명해버린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산 정약용이 어린 아이들의 한자 공부 교재로 만든 [아학편]이 1804년에 편찬되었는데, 송촌 지석영이 이 책에 중국어, 일본어 발음과 함께 영어 발음까지 붙인 책으로 1908년 증보해 만든 것이 같은 제목의 [아학편]이었던 것이다. 두 책은 백년 정도의 시차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다산 정약용이 영어 발음을 붙인 [아학편]을 만들었다는 것은 명백히 ‘가짜 뉴스’인 셈이다.

송촌의 [아학편] 서문을 보면 이 책을 만든 취지가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그는 다산의 책을 기본으로 했음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지으신 것이다. 모두 2천 자를 유형자와 무형자로 나누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은 거의 다 망라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돌아보건대 요즈음 개항이 되고서 유럽과 아시아가 서로 교역을 하는데, 다른 나라의 우수한 점을 취하여 자기 나라의 모자란 점을 보충하며 열강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다투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어학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글자를 중국과 서양 및 일본의 음과 뜻으로 풀어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소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나아갈 방향을 알게 해 준다.”

상식적으로 다산의 시대는 서양 세력이 조선에 몰려오기 전이었다. 이양선의 출몰이 본격화되는 것도 다산이 죽은 이후의 일이다. 어쨌든 작년 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던 [아학편] 때문에 이런 저간의 사정을 밝힐 글 한 편을 쓰기로 마음먹은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며칠 전 우연히 서재에 꽂혀있는 [아학편]이 눈에 띄어 책을 펼쳐들었다. 다음 주 한글날이 있어 이 책에 관심이 갔을 터였다. 그런데 책을 이리 저리 훑어보기를 몇 십분 만에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우연이었을까?

꿈속에서 다산(茶山) 정약용과 송촌(松村) 지석영이 하늘나라에서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꿈속이라 왜 그들이 만났는지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이 나눈 대화는 너무나 또렷하였다. 기억이 나는 대로 적어 전한다.

[사진] 송촌 지석영(1855∼1935, 왼쪽)과 다산 정약용(1762∼1836,오른쪽). 둘의 생몰기간은 거의 100년 시차를 두고 있는데 관심 분야가 겹치는 부분이 꽤 있다.

천상 대담(天上 對談)

#2018년 10월 한글날을 앞둔 어느 날 천상에서

송촌: 다산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지석영이라 하옵니다. 호는 송촌이지요.

다산: 송촌! 반갑습니다. 제가 송촌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우두종두법을 보급한 사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송촌 아닙니까? [우두신설]이라는 책도 펴내셨지요. 사실 나도 내 자식 9명 중 여섯을 마마(천연두)와 홍역으로 잃었었지요. 아비된 마음으로 이 마마를 물리쳐보려고 [마과회통]이라는 책도 펴내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오. 그러고 보니 나와 송촌은 마마 퇴치를 위해 노력했다는 인연이 있군요.

송촌: 선생님이 귀양살이를 시작하신지 그 이듬해 4살짜리 막내아들 농아가 마마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쓰신 글 <답양아(答兩兒)>를 읽고 저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우리 농아가 죽었다니! 참혹하고도 슬프구나. 그 아이 생애가 불쌍하구나. 내가 더욱 쇠약해질 때 이런 일까지 닥치다니 정말 슬픈 마음을 조금도 누그러뜨릴 수가 없다. 능히 생사고락의 이치를 어설프게나마 깨달았다는 내가 이런데 품속에서 꺼내어 흙구덩이 속에 집어넣은 네 어미야 어떻겠느냐? 그 애가 살아있을 때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기특하고 어여쁘게 생각되어 귓가에 쟁쟁하고 눈앞에 어른거릴 것이다.”

다산: 문득 어린 나이에 죽은 내 아이들이 생각나는군요. 송촌은 내가 쓴 글들은 죄다 다 아시는군요.

송촌: 그런데 선생님과 저의 인연이 종두법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신유박해 때 천주교 문제로 정치적 박해를 받았었지요. 그때 작은 형님 되시는 선암 정약종 선생은 순교하셨고, 큰 형님 손암 정약전 선생은 흑산도로, 다산 선생님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셨지요. 선생님이 유배생활을 하신 그 강진에 저도 유배를 갔었지요.

다산: 송촌은 대체 무슨 일로 유배를 갔소? 나와 같이 천주교 문제요?

송촌: 아닙니다. 선생님. 1884년 젊은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는데, 당시 집권세력인 민씨 일파들이 저를 그쪽에 연루시켜 탄압을 했었죠. [고종실록]에는 “박영효가 흉한 음모를 꾸밀 적에 남몰래 간계를 도운 자가 지석영이었고, 박영효가 암행어사가 되었을 때에 모질게 하라고 가르쳐서 백성들에게 독을 끼친 자도 지석영이었다. 흉물스런 저 지석영은 우두기술을 가르친다고 핑계대고 도당들을 끌어 모았다.”라고 저를 공격한 내용도 실려 있습니다. 그 일로 저는 강진의 신지도에 유배되어 5년간 위리안치 되었습니다.

다산: 유배생활이 힘들지는 않았소?

송촌: 선생님이 유배 생활을 보내신 18년에 비하면야 아무 것도 아니지요. 선생님이 유배지에서 많은 책을 저술하시고, 손암 정약전 선생이 흑산도에서 물고기를 연구하셨듯이, 저도 그곳에서 우두 보급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유배가 풀리자마자 한양에 올라와 교동에 우두보영당이라는 의료시설을 설립하고 어린 아이들에게 우두를 실시했습니다. 나중에는 의학교 설립을 건의했고, 의학교 설립 후에는 의학교 교장에 취임했습니다.

다산: 참 훌륭하십니다. 선생 같은 분이 나보다 먼저 태어났었다면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요….그런데 송촌은 의학뿐만 아니라 국문 보급에도 관심이 많았더군요. 대한제국 정부가 만든 국문연구소에서 주시경, 이능화 등과 함께 국문을 연구하고, 한글로 한자를 해석한 [자전석요]를 펴내기도 했다지요? 나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주시경 선생과 지석영 선생이 자주 헷갈렸다오. 송촌은 종두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니, 국문 연구까지 했는 줄 모르고 지레 주시경이겠거니 하고….송촌은 제가 쓴 [아학편]을 새롭게 개편해서 1905년에 간행 했다고도 들었습니다. 참 열정이 대단하십니다그려.

송촌: 안 그래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지 않고 책을 만들어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아학편]을 보고 기존에 중국사람 주흥사가 만든 천자문보다 훨씬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산: 고맙소. 천자문은 오래 전부터 우리 조선에서 어린 아이들이 한자를 익힐 때 『동몽선습』과 함께 제일 먼저 보는 책인데, 내가 보기에는 그 책이 만만치가 않아요. [천자문] 한 권을 다 읽어도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 많고 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천자문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학편(兒學編)]을 새로 엮었지요. 그때가 내 나이 43세로 강진에 유배생활을 시작한지 3년째 되는 해였는데, 1804년으로 기억합니다.

송촌: 네. 선생님의 [아학편]은 기존의 천자문과 달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한자를 골라 상하권 각각 1000자씩 총 2000자를 수록하였는데, 상권에는 구체적인 명사, 자연계 및 자연현상, 실제적 현상에 부합되는 유형적인 개념이 담긴 문자를 실었고, 하권에는 추상명사, 대명사, 형용사, 동사와 계절, 기구, 방위 등 무형적인 개념의 글자를 실었더군요. 참으로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손색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높은 학문의 소산이 아닐런지요?

다산: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송촌이 내가 만든 [아학편]을 어떤 식으로 개편했는지 궁금하군요. 송촌이 만든 [아학편]이 1908년에 만든 것이라 하니 내가 엮은 것보다 대략 100년 뒤군요.

송촌: 저는 다산 선생님의 [아학편]의 체제나 글자의 배열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40년 뒤에 섬나라 일본에 개항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몇 년 뒤부터는 서양 각국과도 수교를 맺고 교역을 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학이 중요하겠다싶어 선생님의 책에 나오는 2천자의 한자를 중심에 두고 그 글자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의 음과 뜻으로 풀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할 때 도움이 될까하여 만들었습니다.

[사진] 왼쪽은 다산의 [아학편]으로 각 한자에 우리 말 뜻과 음을 설명한 간단한 구조이다. 오른쪽은 송촌의 [아학편]으로 한자 한자를 사이에 두고 좌우와 하단에 우리 말, 일본어, 영어의 음과 뜻을 붙여 시대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다산: 서양의 음과 뜻까지 말입니까? 중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그래도 이웃 나라라 사역원(司譯院)의 자료들을 참고하면 그럭저럭 메꿀 수가 있었을 터인데, 서양말은 어렵지 않았습니까?

송촌: 어렵다마다요. 그런데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요. 내가 이런 책을 만들고자 뜻을 품은 지는 오래되었는데, 혼자 만드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동양과 서양의 말과 글에 통달한 전용규라는 선비를 만나게 된 후부터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요. 그러니 저의 [아학편]은 다산 선생님과 저와 전용규 세 사람의 힘이 보태져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산: 내가 만든 [아학편]은 한자 밑에 우리 말로 음과 뜻을 붙였을 뿐인데, 송촌의 [아학편]은 어떻게 개편했는지 궁금하오. 내 자랑 같지만 사실 나도 어학에 관심이 많아서 [아언각비(雅言覺非)]라는 책을 낸 적이 있어요. 널리 쓰이고 있는 말과 글 가운데 잘못 쓰이거나 어원이 불확실한 것을 골라 고증을 통해 밝힌 책이었지요.

송촌: 네.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선생님이 선별해 정리해놓으신 2000자의 배열은 똑같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각 글자마다 붙여놓은 설명들이 좀 다릅니다. 각 한자(漢字)를 가운데 두고 왼쪽, 오른쪽, 아래 부분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글자를 감싸듯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글자의 왼쪽은 일본어에서 훈독할 때와 음독할 때의 발음을 가나와 한글로 각각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글자의 오른쪽은 그 글자의 음과 훈, 그리고 중국의 발음과 성조를 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가장 잘 반영한 것이 글자의 아랫부분인데 여기에는 한자와 같은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와 이 단어의 발음을 한글로 적어 놓았습니다.

로드? 으로드! 베지터블? ᅄᅦ쥐타불!

다산: 참으로 가상한 일을 하셨군요. 우리 한글로 영어를 표기하기가 어렵지는 않던가요? 내 죽고 20년쯤 뒤에 혜강 최한기 선생이 [지구전요]에서 한자로 ‘挨(애), 碑(비), 媤(시), 地(지), 依(의), 鴨符(압부), 芝(지)….’라고 쓴 것이 우리 역사상 최초로 영어 알파벳을 조선에 소개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송촌은 어떻게 표기를 하셨는지 궁금하오.

송촌: 저는 영어의 알파벳 26자를 한글로 표기했는데, 소리 나는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적고자 노력했습니다. “에이, ᄡᅵ, 씨, ᄯᅴ, 이, 에ꥺᅮ, 지, 에이취, 아이, ᄶᅦ, 켸, 엘, 엠, 엔, 오, 피, 키우, 아ㄹ, 에쓰, 티, 유, ᅄᅱ, ᄯᅡ불류, 엑스, 와이, 졔트”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발음요소들을 결합하여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표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도읍을 뜻하는 ‘京(경)’은 ‘Capital’이라고 쓰고 발음은 ‘캅피탈’로, 야채를 뜻하는 ‘菜(채)’는‘Vegetable’로 쓰고 우리말 발음은 ‘ᅄᅦ쥐타불’로, 이웃을 뜻하는 ‘隣(린)’은 영어로 ‘Neighbour’라고 쓰고 우리말 발음은 ‘네버’라고 표기했습니다.

다산: 재미나고 흥미롭군요. 그런데 참 ‘Neighbour’ 그 단어 말이오. 송촌보다 늦게 하늘나라에 온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상하게 발음해서 지금도 세인들의 이야기거리가 된 그 단어 아니오?

송촌: 저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재 그 사람은 워낙 고집이 세어서 제가 정리해놓은 이런 식의 영어 발음을 안 따랐다고 합니다. ‘Neighbour’를 ‘네버’라고 하면 될 것을 “네이그흐바우어” 이렇게 읽지를 않나 중간에 ‘하여슬람’ 이런 말도 집어넣어 읽지를 않나…..사람들이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영문이나 한문이나 글은 다 마찬가지 아니오”라며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다산: 단재는 후학이지만 나도 참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단재는 왜놈들에게 고개를 숙이기 싫다고 세면할 때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씻어 세면할 때마다 옷에 물을 가득 묻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때로는 그런 자존심과 뚝심을 가진 인물들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지금 후손들은 송촌이 정리해놓은 그 발음들을 잘 따르고 있습니까?

[사진] 송촌의 [아학편]의 일부로 영어 R로 시작하는 단어의 우리말 발음은 특이하게 ‘으’라는 말을 반드시 넣어 표기하였다. 雨, 走. 禾. 路의 발음으로 ‘으랜’, ‘으런’, ‘으라이쓰’, ‘으로드’로 표기한 부분이 각 글자의 하단에 보인다.(왼쪽) 어느 유치원 개원을 알리는 플랭카드이다. 지석영의 아학편식으로 쓴다면 ‘으렌뽀우’ 또는 ‘으레인보우’여야 한다. (오른쪽)

송촌: 워낙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비슷한 것도 있고, 달라진 것도 있습니다. 제일 크게 달라진 게 ‘R’로 시작되는 단어들인데, 저는 그런 단어는 항상 ‘으’를 집어넣어 썼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길을 뜻하는 ‘Road’, 비를 뜻하는 ‘Rain’, 무지개를 뜻하는 ‘Rainbow’는 각각 ‘으로드’, ‘으렌’, ‘으레인보우’ 이런 식으로 적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냥 ‘로드’, ‘레인’, ‘레인보우’ 이렇게 적고 있지요. 실제 발음을 들어보면 ‘으’를 넣어야 더 비슷하게 되는데 말입니다.

다산: 그건 후손들이 알아서 하겠지요. 그나저나 근자에 사람들 사이에 [아학편]이 좀 화제가 되었다던데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소?

송촌: 네. 그게 작년 봄에 누가 ‘얼굴책’(페이스북을 말함)에 조선시대에 영어 학습을 위한 교재로 [아학편]이 만들어졌다고 소개하면서 화제가 되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산 선생님이 그 책을 만들었다고 해서 더더욱 놀랐던 게지요.

다산: 사람들이 내가 만든 [아학편]과 송촌이 만든 [아학편]을 구별을 못했군요. 송촌이 좀 섭섭했겠구려.

송촌: 섭섭하다니요. 제 책이야 다 다산선생님이 만들어놓은 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정도지요. 게다가 전용규 그 친구의 공덕도 크니 꼭 제 공이라고는 할 수가 없지요.

다산: 참 겸손도 하십니다. 송촌! 다음에 또 봅시다. 후손들이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 행사를 한다던데 그거나 가서 구경해 볼까 합니다. 내가 설계했던 배다리를 후손들이 어떻게 만들었나도 보고 싶다오. 다음 볼 때는 ‘네이그흐바우어’라던 단재도 불러서 같이 즐겁게 대화도 나누고 술과 여흥도 나눠 봅시다. 참! 주시경 선생도 같이요.

송촌: 네. 그리하지요. 다산 선생님. 제가 연통을 넣어 금명간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내내 평안하십시오.

[사진] 2017년 3월 지석영의 [아학편]이 언론과 SNS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100년 전 영어 발음이 지금과 많이 다른 점이 신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부 글에는 이 책이 지석영이 아니라 다산 정약용이 만든 것처럼 설명하는 오류를 범했다. (왼쪽은 중앙일보 2017년 3월 3일자 보도, 오른쪽은 SBS 2017년 3월 2일자 보도 화면 캡쳐)

필자소개
박건호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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