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검찰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 범죄”
    이상훈 전 의장 등 삼성그룹과 계열사 전·현직 임원 32명 기소
        2018년 09월 27일 07: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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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 ‘무노조 경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치밀하게 노동조합 와해 공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삼성은 노조 와해 문건에 ‘악성 바이러스’로 규정하는 등 노조에 대한 근거 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검찰은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인 이상훈 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등 삼성그룹과 계열사 전·현직 임원들을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수현)는 27일 목장균 전 삼성전자 노무담당 전무, 최평석 삼성전자서비스 전무 등 4명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이상훈 의장, 강경훈 삼성전자 인사팀 부사장,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 최우수 현 대표이사 등 2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불구속 기소된 이들 중엔 단체교섭 지연과 협력업체 기획폐업 등 공작에 가담한 남모 전 노사대책본부장 등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 3명, 도모씨 등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대표 7명도 포함돼있으며,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 법인도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이 같은 내용의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와해 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하며 “삼성은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무노조 경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그룹 미전실 인사지원팀이 주도하여 노조 와해 공작을 총괄 기획했다”며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에서는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마련하여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를 실행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삼성이 노조 와해를 위해 ▲협력업체 폐업 및 조합원 재취업 방해 ▲차별대우, ‘심성관리’를 빙자한 개별 면담 등으로 노조탈퇴 종용 ▲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임금삭감 ▲경총과 공동으로 단체교섭의 지연・불응 ▲채무 등 재산관계, 임신 여부 사찰, ▲불법파견을 적법한 도급으로 위장 ▲경찰, 협력업체, 고 염호석의 부친도 불법행위에 가담시키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고 밝혔다.

    군사작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노조 와해 작업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을 컨트롤 타워로 해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에 이르기까지 그룹은 매년 ‘그린화 전략’을 세우고 무노조 경영 철학을 ‘신념화’하기 위한 임직원 교육 등을 실시했고, 종합상황실 및 신속대응(Quick Response, 약칭 QR)팀까지 설치해 운영했다.

    검찰은 “임직원들로 구성된 종합상황실과 ‘신속대응(Quick Response, 약칭 QR)팀’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노조와해 작업을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고용노동부, 경총, 경찰 등까지 동원해 노조와해 전략을 폈다.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의 노조 전문가인 송 모 씨와 거액의 자문료 개약을 맺고 여론전을 통해 노조 고립 등 각종 노조와해 전략을 자문 받아 그대로 실행에 옮겼고, 경찰청 정보국 소속 경찰간부 김 모 씨에게는 노조 간부와 접촉하도록 해 노조의 교섭 전략 등 내부 정보를 받고 그 대가로 김 씨에게 금품을 제공했다.

    경총은 삼성의 요구대로 협력업체에 조합원 명부 제출을 반복적으로 요구하거나 단체교섭에 무작정 불응하는 등의 방법을 지도했다. 협력업체들은 그에 따라 단체교섭을 지연・불응했다.

    특히 경총은 2013년 7월경에 전국 협력업체 사장들을 경기도에 있는 콘도로 집결시켜 ‘모의 단체교섭 역할극’까지 벌였다. 역할극은 경총 직원들이 노조원으로 분장하고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생수병을 던지거나 책상을 발로 차고 욕설하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하게 해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노조에 대한 공포심과 왜곡된 인식을 심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검찰은 “(삼성 측은) 노조 설립을 ‘사고’로 생각하며 발본색원 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며 “노조 분열을 유도하며 노조를 조기에 고사시키도록 독려하는 등 무노조 방침이 신념화되어 있다”고 밝혔다.

    삼성 내부 노사 전문가와 경총·노동부·경찰 합세한 공작

    앞서 검찰은 삼성 측의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 수사를 위해 삼성그룹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노조 와해’ 전략이 담긴 대량의 문서를 확보하고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발견한 노사전략 문건에 “노조가 생기고 나면 와해시키기 어렵고,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만큼 사전예방만이 최선”이라고 적시됐다고 밝혔다. 특히 이 문건에서 삼성 측은 노조 설립을 ‘악성 바이러스 침투’로 표현했다.

    검찰은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을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 범죄”로 규정하며 “삼성이 노조를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가히 ‘백화점’ 식으로 총망라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성이 동원한 전술들은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인) ‘창조컨설팅’의 경우보다 더 교묘하고 은밀한 형태”라며 “외부 컨설팅 업체를 한시적으로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 창조컨설팅 출신 노무사를 채용하거나 자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대규모로 전문가들을 영입・육성해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공작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삼성 내부 노사 전문가와 경총·노동부·경찰이 합세한 노조 와해 공작 과정을 전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조는 불공정한 게임을 했다”고 결론냈다.

    이어 “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지적하면서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인 노조 와해 공작으로 인해 조합원 2명이 자살에까지 이르렀고, 실업과 낮은 수준의 임금인상 등 조합원들이 입은 정신적・경제적 피해는 막대하다”고 덧붙였다.

    노측 “검찰이 삼성 범죄를 반헌법적 범죄 규정한 것 긍정적으로 평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삼성의 노조 파괴 범죄를 조직적이고 반헌법적 범죄로 규정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황수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협부장은 이날 <레디앙>과 통화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중간수사 결과는 의미가 있다”며 “특히 불법파견에 대해 기소한 부분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황 대협부장은 “그동안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제대로 하지 못해 5년을 끌어온 것이 삼성의 노조파괴 사건”이라며 “이번 중간수사 결과는 검찰의 내부 반성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염호석 열사 시신탈취와 관련해 경찰 개입, 윗선 개입, 협력업체의 보다 광범위한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해선 추후 더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석원 금속노조 기획부장도 “아직 중간발표 수준이라 뭐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검찰의 노력이 엿보인다”며 “특히 검찰이 그간 한국 사회에서 노동관련 사건의 처리가 자본에 일방적으로 편향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음을 인정한 것과 노조 파괴를 위한 삼성의 여러 수법, 불법파견 은폐공작, 열사 시신탈취 같은 삼성의 반인륜적 행위를 규명한 것은 성과라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삼성이 무노조경영을 지시했는데 이재용이 한 것은 아니라는 수준의 검찰 발표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삼성이 재벌 차원을 넘어선 권력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수사진행에 강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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