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에너지기본계획 앞두고
다시 밀양과 주민들을 떠올리는 이유
[에정칼럼] 우리는 '탈핵·에너지전환'의 길 들어섰나
    2018년 09월 27일 10:5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에정칼럼 역사상 가장 긴 칼럼이다. 그만큼 많은 고민들이 녹아 있다. 나누지 않고 게재한다. <편집자>
——————-

들어서기에 앞서 먼저 밝히자면, 이 글은 아주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탈핵과 에너지 전환’의 길에 들어섰는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 주요 정책으로 올라가 있고, 정부의 관련 계획과 보도자료에도 여전히 인용되는 말이 에너지 전환이다. 광역지자체들의 공약에서도 에너지 전환은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지 않는가. 이러한 구호가 현실의 진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구호를 실현할 의지와 실천이 빈약하다면 기득권의 반발에 힘을 실어주며 순식간에 후퇴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것을.

위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만큼 불안한 적신호가 포착되어 왔기 때문이다. 최근 에너지 전환을 주장해 온 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찬핵 세력의 ‘근거 없는 탈원전 반대’를 규탄하며 정부의 자세를 함께 꼬집고, “행정과 입법 과정에서 더욱 과단성 있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라”고 촉구한 것 역시 비슷한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불안감에는 특히 찬핵 세력을 포함한 산업계의 탈핵과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공격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어쨌든 처음으로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정책 추진의 우선순위로 올렸던 문재인 정부인데 이러다간 실패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식 에너지 전환 정책은 산업계의 공격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아니다. 문재인식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시작부터 패착을 보였다.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는 고리1호기 영구 정지 기념식에서 스스로 “탈원전과 함께 미래 에너지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아무리 하락해도 70%를 넘기던 시기였으며, 대통령 선거 당시 캠프의 정책을 소개하는 ‘문재인 1번가’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정책’, 즉 탈핵과 에너지 전환의 의지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어야 할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최적기였다.

2017년 6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기념식의 문재인 대통령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 가장 중요한 출발에서부터 후퇴하였다. 모두 알다시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공약을 물리고 공론화에 부치겠다고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 과정에서도 건설 중단 시 발생할 수 있는 일자리 감소 등 정부의 문제해결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이슈가 핵심임이 분명한데도 중립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이후 탈핵 선언을 무색케 하는 소극적, 수동적 행보를 충분히 예상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결과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히며 발표된 에너지전환 로드맵(2017.10.24.)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포함에 그치지 않고 “에너지전환에 따른 국내산업 보완대책으로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사우디, 체코, 영국 등에 대해 정상회담, 장관급 양자회담 등을 추진”하겠다는 말을 버젓이 담고 있다.

비슷한 시기(2017.10.), 청와대는 탈원전이라는 표현을 더는 쓰지 않고 대신 에너지 정책 전환이라는 용어로 통일하기로 방침을 정한다. 함께 인용된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언이 가관이었는데, ‘탈원전’이라는 표현이 핵발전소를 모두 폐기하는 것으로 비쳐져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뒤이어진 “쉬운 용어라 썼을 뿐, 정책은 바뀐 게 없다”는 멘트와 함께 볼 때, 2080년까지 핵발전소를 모두 폐기하겠다는 약속마저 애초에 감당할 생각이 없었단 말로 해석된다.

이어서 수립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12.29.)은 더더욱 우려를 부추긴다. 이미 수차례 비판 받았듯이 계획대로라면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핵발전소는 오히려 증설되어 2022년에는 무려 28기로 늘어나게 된다. 청와대 스스로도 부정하고 싶어 했듯이 이런 정부를 탈핵 정부라 볼 수 있을까. 늘어나는 것은 핵발전뿐만이 아니다. 8차 계획에 따르면 문 정부 임기 내 석탄화력의 설비와 비중 역시 최대치에 이르게 되고, 2030년까지 최대 발전 비중을 유지하게 된다. 이미 물 건너 간 목표였지만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37%와도 위배되는 계획인 셈이다.

반면 에너지 소비감축과 효율화의 의지는 발견하기 힘들다. 2029년을 기준으로 7차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비교하면, 8차의 최대전력 기준수요는 거의 7차의 목표수요에 가깝게 낮춰져 있다. 그러나 수요전망은 말 그대로 전망일 뿐, 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수요전망은 지난 정부들에서 정부 정책의 숨은 뜻을 숨기기 위해 악용되어 왔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는 수요전망을 부풀려서 핵발전소 증설을 숨기고 핵발전 ‘비중이 낮아진다’는 말장난을 한 바 있다.

방송화면

문재인 정부는 역으로 수요전망을 낮춰서 에너지 소비 감축을 위해 노력한다는 외양을 만들어냈다. 실제로는 8차 계획의 절감목표량이 7차 계획보다도 떨어진다. 한 마디로 정책노력을 통한 에너지 소비 감축과 효율화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8차 계획의 앞머리에 쓰인 ‘공급 확충보다 수요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정책 기조가 무색하다. 결국 이런 꼼수가 후에는 전력수요를 과소 추정했다며 에너지 전환 정책을 비판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후퇴의 적신호는 아직도 남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에너지전환 로드맵에서 정부는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 결과에 따라 공사를 재개하되, 현재 계획된 신규원전 건설계획은 백지화”하겠다고 밝히고 감축 대상에 신한울 3·4호기를 명기한 바 있다. 그러나 찬핵 세력은 아직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 ‘신청’도 완료되지 않은, 정부 공식 표현으로 ‘계획 중’인 신한울 3,4호기를 두고 “백지화 때 매몰 비용이 6400억원+α”라는 억지를 부리며 즉각 건설하라는 압박전을 펼쳤다. 그러자 정부는 급기야 에너지전환 로드맵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에너지전환(원전부문) 후속조치 및 보완대책(2018.6.21.)”에서 신한울 3·4호기를 뺀다. 이렇게 신고리 5·6호기에 이어 신한울 3·4호기마저 물러난다면, 정부가 부담스러워하는 그러나 얼토당토 않는 2080년 핵발전소 제로마저 장담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게다가 핵폐기를위한전국네트워크(준)에 따르면 지난 8월 13일, 산업통상자원부는 SNS를 통해 꽤 노골적인 홍보자료를 유포하였다. 현 정부 들어 1기의 핵발전소를 폐쇄하지만 4기를 추가 건설하기에 사실상 “원전 총 3기(4,921MW) 증가”이며 “에너지전환(원전감축)은 60여 년 간 천천히!” 할 테니 사실상 (찬핵 세력은) 안심하라는 신호가 담긴 것이다. 글쎄, 이 정도라면 정부의 탈핵이든 에너지 전환이든 그 후퇴의 신호 아니 족적은 충분히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닌가. 이제 인정하자.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특히 탈핵과 전환 선언의 그 순간부터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정부가 왜 산업계만 달래고 있을까?

이제 질문의 화살을 (당연히 필자를 포함해) 스스로에게 돌릴 때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전환이 무엇인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전환의 이유도 설득하지 못하고, 오히려 찬핵 세력을 포함한 산업계 달래기에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여기서 ‘우리’는 탈핵과 에너지 전환 모두를 분명하게 지향하며 실천하는 이들이라 해두자). ‘탈핵과 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역시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활동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후퇴를 거듭하는 동안, 사실 우리는 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의도 면에서 보자면 저항 대신 활용을 선택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수 있다. 지금은 간판을 내렸지만 처음에는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모두 내건 정부가 출범했고, 대통령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17석 중 14석의 더불어민주당 광역지자체장들이 탄생했으며, 이들 중 8명이 지역에너지전환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들 지역 중 상당수는 핵진흥 정책을 고수한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중앙정부와 충돌하며 지역에너지전환을 추구해 온 전력이 있다. 여기에는 지역의 에너지전환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정책을 생산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연구소들의 노력이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중앙과 지방이 발을 맞춰 에너지 전환을 추진해가기에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 셈이었다. 자연스럽게 활동의 전략은 정부와 민관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이 되었다. 그 전략 자체는 필요한 것이었고, 하기에 따라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빠진 것이 있다. 이런 전략을 취할 때마다 취약해지는 지점이다. 도대체 무엇과의 시너지란 말인가. 저항, 좀 더 풀어 말하자면 적극적인 비판과 능동적인 견인이다. 제한적인 시민사회의 역량에서 거버넌스에도 참여하고 저항도 조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도 문제는 남는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날카로운 매스를 들이대고, 지방과 약자의 고통을 호소할 이들이 하나도 없었다면 모를까, 왜 그들은 시민사회 엘리트들이 넘어선 거버넌스 참여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을까. 같은 지향을 가졌으면서도 거버넌스에 참여한 이들과 배제된 이들은 왜 정부와 하는 만큼도 서로 소통하지 못했을까. 결국 이 모든 것의 결과로서, 문 정부 후퇴의 순간순간마다 저항은 질적으로 양적으로, 내용적으로 형식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민사회·녹색당·정의당 등,
제대로 문재인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하고 압박한 적 있나

잠시 과거의 다른 사례를 이야기해보겠다.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과 함께 1996년 민주노총이 출범하고, 다음 해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다. 당시 담당 업무를 맡았던 관계자가 민주노총 간부와의 자리에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정부 내부에서는 그런 고민을 했단다. 만약 민주노총에서 4대 보험 운용권을 제기하면 이것을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정리해고 문제를 노동계에게 양보 받는 것이 다급했기 때문에, 세게 밀고 나왔으면 아마 자신들이 받았을 수도 있다고 했단다. 그런데 실제는? 아무도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정부와의 관계나 조직적 힘이 이 사례와 비슷한 것은 아니지만, 똑같이 뼈아픈 것은 우리가 과연 문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거나 압박해 본 적이 있느냐는 점이다. 요구와 압박은 늘 찬핵 세력과 산업계로부터 나왔다. 시민사회단체뿐만이 아니다. 각각 2030년과 2040년 탈핵을 외쳤던 녹색당과 정의당을 보라. 문재인 정부 들어서 각자의 비전을 요구하고 압박한 적이 있었던가. 시민사회 내에서 그러한 요구와 압박을 조직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매우 중요한 지점으로, ‘에너지 정의’ 혹은 ‘불평등의 시정’이라 해도 좋을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지역에너지 전환 계획의 대부분은 지금 시민사회 단체와 연구소의 손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갑을의 관계가 존재하고, 마지막에 관료와 정치적 계산의 손을 거치지만 그래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지역에너지 전환 계획들에서 과연 정의로운 에너지의 지향은 어디로 갔는가. 단적으로 말해 지역에너지 전환의 목표와 수준은 지역의 손에만 맡겨져 있을 뿐이고, 지역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는 논의는 사라졌으며, 시정할 만한 동기 부여도 안 보이는 상태다. 심지어 시민사회 주도로 만들어진 지역에너지 전환 네트워크마저 그렇다.

지난 9월 4일 226개 기초지자체에 「에너지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 참여로 에너지 ‘분권과 자치’ 시대를 열 것을 촉구한 ‘지역에너지전환 전국네트워크’ 의 논평에는 이러한 정의의 관점, 불평등의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담겨 있지 않다. 지역에너지 전환과 분권의 방향에서 중앙정부로부터의 자립과 자율이 결과적으로 정의로운 에너지를 보장할 순 없다.

이제 물어보자. 지금의 지역에너지 전환계획들에서 밀양 송전탑의 비극은 기억되고 있는가. 가장 선도적이라 평가받는다는 광역지자체 서울과 경기, 충남, 제주의 비전과 계획으로 더 이상 수도권과 대도시를 위한 지역의 희생은 없을 것 같은가. 값싼 전기를 발판 삼아 성장한, 대부분의 에너지 다소비 ‘대기업’이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고 효율화에 투자할 것 같은가. 필자 스스로 질문을 던져 봐도 부끄러워진다. 현재 상태로 지역이 사회 전체를 견인하여 핵발전소를 폐기하고 초고압 송전탑을 걷어낼 아니 걷어내지는 못해도 지금 계획된 송전탑만이라도 멈추게 할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시스템의 희생자는 바람직한 미래의 거름으로만 남겨둘 것인가

요즘 밀양이 다시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얼마 전 다녀온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의 사전설명회와 그 자리에서 오랜만에 뵈었던 밀양 주민들 때문일 것이다. 진상조사위를 통해 故 백남기 어르신의 사망과 참혹했던 용산 사태, 그리고 결국엔 30명의 희생자를 만들고 만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진상이 밝혀졌고, 최근에는 그 결과가 10년만의 해고자 전원 복직 방안 합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을 듣고, 밀양에도 한 가닥 희망이 남았다는 기쁜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의 15년을 기록으로 남긴 백서의 마지막에서 스스로 작성한 아래의 문구가 머릿속을 스쳐갔기 때문이다.

“밀양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잘못된 에너지 정책과 시스템을 뒤집고, 그 결과로서 밀양 송전탑을 뽑아내는 그날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투쟁은 밀양 주민들의 어떠한 희생도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투쟁이어야 할 것이다.”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 백서 中)

이 문구를 작성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특히 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수립을 지켜보며 들었던 답답함이 작용했다. 계획이 수립될 무렵은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이 전국적인 이슈화는 물론이고 탈송전탑을 넘어 탈핵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운동을 견인하던 시기였다. 명백히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에너지계획 중 최상위 계획인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소비지역과 발전소 소재지역 간 불일치로 수도권방향 송전망은 포화 상태”, “그러나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에 대한 지역주민의 수용성이 저하되면서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문구를 남길 수 있었다.

이는 분명 밀양 투쟁의 성과로서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주기도 하였지만, 나는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이 시스템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왜 시스템의 희생자를 구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못하고 오직 미래에만 적용되어야 하는가. 의구심과 답답함은 백서를 작업하는 과정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투쟁 주민들의 고생 끝에 갈등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한전의 허점을 파고드는 활동 덕에 다시 제도개선위원회를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제도개선위원회가 만들어낼 제도 개선을 밀양에 소급 적용하는 것은 부정되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주민들은 십여 년 간의 투쟁 내내 반복 경험하였다.

밀양 송전탑 싸움에서 경찰들에 가로막힌 밀양 주민의 모습(사진=한국엠네스티)

그렇다면 한국전력의 압도적인 돈과 공권력의 힘으로 2014년 12월 송전탑이 완공된 후 4년이 지난 지금, 밀양은 어떤 상황인가. “주민들은 100미터가 넘는 철탑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것을 매일처럼 지켜보며, 그 아래서 농사를 짓고, 36가닥 초고압 선로 아래를 드나드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일생 일구어온 주민들의 생존권-논과 밭, 주택-은 물거품이 되었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 송전선로에서 나는 소음으로 잠을 못 이루는 주민들이 허다하다. (중략) 그 뿐인가. 송전선로반대 투쟁이 활발했던 마을공동체는 송전탑 건설 이후 한전이 뒷배를 봐주는 것에 대한 분명한 신뢰에 기반하여 한전이 제공한 돈으로 합의 주민들에 의한 온갖 전횡이 벌어졌고, 지금까지도 소송과 각종 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밀양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4주기 성명서 中) 다시 말해 밀양의 고통은 지금도 처절한 진행형이다.

그리고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밀양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임기의 반이 지났지만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을 고통에 빠뜨린 법과 제도는 여전히 건재하고, 잘못된 정책의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고 있으며,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밀양 주민들이 직접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하여 올해 2월 이후로 감사원에 제기한 24건의 공익감사 청구는 주민들의 호소와 항의에도 불구하고 19건이 기각, 2건은 실시 여부 심사 중, 3건만이 감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한 5월 11일 백운규 당시 산업부장관 밀양 방문을 통해 구성하려고 했던 피해실태 ‘정부조사단’은 산업부의 거짓말과 기만으로 무산되었으며, 2017년 8월 25일 출범한 ‘경찰인권침해진상조사위’도 밀양 사건은 우선 조사 대상으로 지정되었지만 이제야 조사를 시작할 참이다. 밀양대책위의 행정대집행 4주기 성명서는 이렇게 끝난다. “도대체, 언제까지, 밀양 주민들의 고통을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앞두고 있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담기게 될 개선 내용이 있다면 그중 어떤 것도 이 정부가 잘해서도, 워킹그룹에 참여한 시민사회 인사들의 활약만으로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밀양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눈물을 밑거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왜 우리는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에너지기본계획의 중요한 원칙으로서 잘못된 시스템의 희생자들에 대한 치유와 철저한 조사, 사과, 책임자 처벌은 넣지 못하는가. 시스템의 희생자는 바람직한 미래의 거름으로만 남겨두어도 좋은 것인가.

단언컨대 바로 그래왔기 때문에 우리의 실천과 성과가 모래성처럼 위태로웠던 것은 아닐까. 예컨대 15년의 세월동안 주민들의 결정권을 막고, 오로지 보상만을 협상할 수 있게 만들고, 이를 핑계로 님비로 몰아세워 왔던 한국전력과 정부 관료들의 구조와 행태를 낱낱이 파헤치고 이의 책임을 묻게 하지 않는 한, 바로 그들로 이루어진 정부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겠는가. 현재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지 못하면서 미래의 고통은 방지하고 해결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후퇴와 우리의 후퇴가, 현장에서는 고통의 연장이자 미래를 꿈꿀 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에게, 잘못된 시스템을 만든 자들에게, 이만큼 너그러워도 되겠는가.

정의로운 전환이란 전환의 과정에서 나타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한 희생을 바로잡는 것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그 희생에는 밀양과 같은 초고압 송전탑 피해 주민뿐만 아니라 핵과 화력발전소 주변지역의 주민, 위험에 가장 가깝게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들, 그리고 파괴된 생태계가 있을 것이다. 이들의 희생을 바로잡는 것은 전환의 내용과 토대도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자 하지만 이 역시 반대에 부딪히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많이 충돌할 것이 우려된다.

이러한 갈등의 해결에서 수용성은 경제적 이익의 분배보다 이해와 신뢰가 핵심이다. 기존의 희생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피해보상, 사과가 이루어진다면 그것만큼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결정권을 빼앗고 오직 경제적 보상만으로 해결하려던 지난 오류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바꿔낼 때 이익 분배 말고는 딱히 보이지 않는 다양한 해결수단들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재생에너지도 결국 설비의 증설이고 따라서 어떻게 하든 갈등의 소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에너지 소비 감축’이 실질적인 정책의 최우선순위가 되도록 도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껏 값싼 에너지 가격을 바탕으로 성장하면서 그로 인한 각종 사회적, 환경적 책임은 도외시해온 산업계, 그중에서도 에너지 사용량/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20개 업체(국가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약 23%,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9% 차지)부터 최우선적으로 획기적인 소비 감축과 전환의 부담을 지워야 하지 않겠는가. 에너지 전환의 큰 그림을 담을 것이라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이렇게, 잘못된 시스템의 과거를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기획위원, 전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 대변인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