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램프가 뜨면
왜 가슴이 내려앉을까?
[기관사의 현장] 우선 순위는 '안전'
    2018년 09월 19일 10: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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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열차를 운전하다 보면 간혹 운전실 계기판에 빨간 고장 등이 들어온다. 그것은 불시에 기습하는 복병과 닮았다. 당할 때마다 매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차량의 고장 같은 내적 요인이나 전차선 정전의 경우처럼 외부 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빨간 고장 등이 들어와 기관사를 놀라게 한다. 당황하여 한동안 어쩔 줄을 모른다. 왜 그러는 것일까. 무엇이 두렵고 무서운 것일까.

고장 상황을 적시에 조치하고 정상적으로 열차 운행을 계속하지 못하면 가해지는 피해가 두려운 것이다. 승객들에게서 쏟아지는 항의와 욕설, 회사 내부징계 등이 뒤따를 것이기에 겁부터 나는 거다. 안전문과 열차 사이에 승객이 끼여 사망한 사고도 있었고 그 승무원은 구속되고 해고된 사실을 알기에, 언젠가에는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자신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관사의 운전차량 내부 모습(사진=필자)

승객은 천 명 혹은 이천 명이 통상 타 있다. 열차가 고장나 한 곳에 5분 정도 정차해 있다면 승객들은 묵묵히 기다려줄까. 대개 열 명 중 한 명은 거친 항의를 해온다. 또 무전기로 관제 지시가 빗발친다. 그때 기관사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섬과 자신이 같음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극심한 심리적 고립감을 느낀다. 집중력을 더욱 잃게 되고 아득한 미궁 속으로 떨어진다.

‘처벌은 달게 받자’ 나는 평소 운전을 하다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자신을 훈련시키곤 한다. 조작이나 처치를 잘못할 수도 있다. 그로 인해 열차 고장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때 나는 현상대로, 사실 그대로 관제에 숨김없이 보고하고 조력을 받으려고 한다.

이런 당연한 일이 실제 상황에서 쉬운 것은 아니다. 인간이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 경우에도 자기 보호본능이 발동해 될 수 있으면 축소시키고 은폐하려 한다. 그렇게 되어서는 결과가 더 나빠지기 마련이지만 덫은 강력하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사람이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마치 솔개를 피한다고 닭이 거름더미에 대가리를 박아 보지만 결국 희생되는 것과 같다.

두려움과 공포에 지배된다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이성은 마비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자신을 훈련한다.

언제였던가, 갓 입사한 같은 승조 차장에게 ‘뭔가 미심적다 싶은 상황이면 무조건 비상제동부터 체결해라. 판단은 나중에 하고 행동이 먼저’라고 말한 적 있다. 그리고 그 경우를 가정하고 열차 운행 중에 실제 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선배님, 이렇게 해도 되요!” 하고 묻기에, “유비무환이다!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가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 주저 없이 손이 비상제동 스위치로 나가고 조작하는 게 몸에 배게 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훈련을 시켰다.

또 이런 적도 있었다. “차장이 해야 하는 일이 많지?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니?” 후배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내 얼굴만 쳐다보았다.

“우선순위를 한번 매겨보자. 먼저, 출입문을 개폐하며 승객 상황을 살피는 일이다. 객실 승객 중에 응급환자가 생기면 조치하는 일이다. 승객 생명과 안전에 관계되는 일이 최우선인 거지. 다음에 냉방과 난방을 적당하게 조절해 주는 일이다. 마지막으로는 안내방송이다. 분명하면서도 친절한 방송이면 좋겠지.”

후배는 일면 수긍하면서도 흔쾌히 동의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말하는 나 역시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교통공사 콜센타로 승객 불편 민원이 제일 많이 들어오는 건 여름에는 냉방 관련이고 겨울에는 난방이다. 그만큼 잘 처리되지 않으면 승무원이 여러 모로 괴롭다. 관제에서도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해당 승무원을 호출해서 조치하라고 주의를 준다. 승객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며 안전하게 출입문을 적절히 개폐하는 것은 표가 안 나는 일이다.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이다. 물과 공기처럼 그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로 친절 감성방송을 한 차장들에게는 칭찬 민원이 쏟아져 들어온다. 매스컴에 보도되기도 한다. 사업소에서는 모범 승무원이라며 관련 내용을 공람으로 게시한다.

후배는 알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일하면 승진에 유리한지를. 그것을 짐작하고 있기에 나 역시 개운하지 않다. 그러나 선배 된 도리로 그에게 쇄기를 박는다.

“승무원 귀책 사고로 승객이 다치거나 하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법처리 된다. 절대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승무원이 처리해야 하는 일은 다양하고 많다. 사람이 한 번에 열 가지 일을 다 잘 할 수 없을 것인데, 그것을 요구받을 때가 종종 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체력과 집중력, 주의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핵심적이고 긴급한 일을 중심으로 처리하고 후순위 것은 여력이 생길 때 하면 된다고 믿는다.

기관사인 나에게 주어진 핵심적인 일을 무엇인가. 열차사고 없이 안전운행 하는 것이다. 신호를 확인하고 전방 선로상태를 주시한다. 속도를 지킨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즉각 열차를 세운다. 차량 고장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적합한 조치를 실행한다.

그런데 이런 업무를 말처럼 쉽게 술술 해 낼 수 있을까.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회사가 적지 않는 예산을 들여 3개월에 한 번씩 승무원 직무교육을 실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왕십리 열차 사고 모습

4년 전의 일이다.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열차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뒤따라 운행하던 열차가 역에서 막 출발하는 선행열차를 추돌했다.

펑하는 굉음과 함께 차체가 찌그러졌다. 객실에 서 있던 승객들이 일시에 쓰러졌다.

방송과 신문 등 매스컴에 중대 사고로 신속하게 일제히 보도되었다. 때마침 지방선거 기간이었다. 각 서울시장 후보들이 사고현장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현직 서울시장이기도 한 박원순 후보에게 대형 악재가 터진 거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수백 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고, 병원 치료 후에 귀가했다.

사고 주원인은 신호기 고장이었다. 상왕십리역에서 열차가 정차해 있을 때 후방 신호기들은 진행신호-감속신호-주의신호-경계신호-정지신호 순으로 현시되어서, 후속열차 기관사에게 열차속도를 떨어뜨려 허용속도에 맞출 것을 지시하여야 했다. 그러나 진행신호-진행신호만 현시되었다. 후속열차 기관사는 곡선구간을 지나 막 직선구간에 진입했을 때, 바로 코앞에 선행열차가 정차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즉시 비상제동을 체결했다. 열차는 속도가 떨어지며 계속 미끄러져 들어갔다. 막 출발하고 있는 선행 열차와 충돌했다. 충돌 당시 속도는 시속 15킬로미터였다.

하늘이 도왔다. 사망자가 속출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실로 천만다행이었다.

하늘은 무엇을 도왔는가. 그것은 기관사가 즉시에 발견하고 공포에 질식되지 않고 몸이 얼어붙지 않고 즉각 비상제동을 체결하게 해준 일이다. 만약 관제가 호출하는 무전을 받고 있었다면, 그래서 발견이 몇 초 늦어지고 비상제동 체결 시점이 늦어졌다면 충돌 당시 속도가 시속 30-40킬로미터였다면 차체는 납작하게 찌그러졌을 거고 사망자가 속출했을 거였다. 운전하다 무전을 받는 건 일상이다.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가 터지고 몇 달 후, 후속열차 기관사를 노조 집회에서 만났다. 그는 나와 입사 동기이다.

“아, 민수야. 너는 영웅이다!” 내가 말했다. 그는 겸연쩍어 했다. 그는 어깨가 탈골되는 중상을 입고 몇 달 입원 치료를 한 후였다.

열차 충돌사고가 나면 운전실은 찌그러지고 대개 기관사는 생명을 잃겠지만, 그는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운전실을 벗어나지 않았다. 공포에 질식되지 않은 거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나는 죽어도 좋아’ 하는 의식이 자기보호 본능을 밀어낸 것은 아닐까. 회사가 분기별로 일관되게 해오는 직무교육 즉 훈련의 효과일 것이다.

아직, 그 차장 후배에게 못한 말이 있다. ‘친절 감성방송도 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다. 승객 안전과 관계되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 회사에서 사업소에서 칭찬을 받진 못하더라도 우리 그렇게 하자…’라고.

상왕십리역 대형 참사를 막은 입사 동기가 특별 포상을 받았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물과 공기처럼 소중한 것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그것이 사라졌을 때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일까.

영웅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묻혀 있기에 진짜 영웅일지도 모른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법의 힘으로 밥 먹듯이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단죄되지 않고 당당한 것처럼, 정의가 전도된 사회에서는 영웅은 꽁꽁 숨어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2호선 열차를 운전한다. 차장 후배는 뒤쪽 운전실에 탄다. 무시무시하고 깜짝 놀랄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다만 정신을 차리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승객들이 먹이는 주먹감자는 달게 받아 먹겠다.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던데, 주먹감자는 더 오래 살 것 같아 그것이 신경 쓰인다.

필자소개
서울교통공사 기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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