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한순간에 누추해지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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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0일 04: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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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홍기돈씨가 중국의 근대 문학가이자 사상가로 중국혁명과 모택동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준 노신과 그의 대표작 <아Q 정전> 에 빗대 요즘의 한국정치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386 정치인과 ‘노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을 앞으로 4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는데 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임현치(林賢治)의 〈노신 평전〉(김태성 역, 실천문학사)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노신의 지적에 깊이 공감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 문장을 통하여 역사의 어떤 패턴이 막연하게나마 느껴졌던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문단의 젊은 작가들은 죽음으로 경사하는 의식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었다. 나는 그 까닭을 사회학의 관점에서 설명해 왔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사(前史)를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사회를 인식하고 줄기차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참혹한 좌절감만을 끌어안게 된 그들의 기억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1991년의 분신 정국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제 몸에 스스로 시너를 쏟아 붓고 불을 붙여 분신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다. 모든 것을 내걸고 극단적인 대결을 펼쳤던 셈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꿈은 타락한 사회의 견고한 장벽에 부딪쳐 그저 맥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 세대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노동을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 어른이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존재, ‘철’이 든 존재가 아니던가. 허나, 이 세계는 견고하면서 동시에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질서로 작동된다. 그들 젊은 세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사회로의 편입을 거부하는 의식이 그들 사이에 팽배한 것은 당연했다. 사회의 바깥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펼쳐져 있기에 사회 바깥을 꿈꾸는 젊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죽음의식으로 덧칠하는 것 또한 당연한 현상이었다.

아마 1920년대 전반의 이탈리아 분위기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람시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낡은 것은 멸해 가는데 새로운 것이 오지 않을 때 위기가 온다.” 그래서 나는 작품 분석에서 이 문장을 몇 번 인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는데 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라는 노신의 발언 역시 이 위에 그대로 겹쳐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역사의 어떤 패턴이란 이를 가리킨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1980년대의 성과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발판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자 했다. 스스로를 ‘386세대’라 지칭하는 정치인들이었다. ‘386세대’란 단어에는 어떠한 정치적 지향도 들어있지 않다.

‘긴(급)조(치) 세대’라는 단어와 비교해 보라. 시대와의 길항이 거세된 앙상한 말장난일 뿐이다. 또한 80년대의 성과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욕망이 그득하게 배어난다. 그래, 군사정권과의 투쟁은 당시 대학교에 다녔던 사람들만 전개했었나. 왜 스스로를 특화시켜야만 했던가.

386세대임을 자처한 정치인들은 ‘새로운 것’(그람시)이랄까 ‘새 길’(노신)을 모색한 바 없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넙죽 절을 하였던 선거를 마친 국회의원 낙선자를. 이러한 풍경 또한 하나의 상징이라 이를 만하다. 노골적인 충성 경쟁과 줄서기가 그들의 생존 전략이며, 생존 전술이라는 말이다. 자,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미국의 한국군 이라크 파병 요구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 하였다. 대학 시절 “이 땅 모든 악의 근원은 미국입니다”라고 주장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지금 평택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군사 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평택을 동북아 지역 군사 개입(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전략 실현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벌이는 노력이다.

386정치인들은 침묵을 통해 이런 현실에 동조하고 나서고 있다. 이맘때 쯤 농활을 가면서 ‘농민가’를 부르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대동제 때면 마이크 잡고 풍악 소리에 맞춰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라고 목소리 높이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는데 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노신의 이런 문장을 다음과 같이 이어받는다.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배반하여 아무도 못 가도록 군홧발로 짓밟아버릴 때, 인생은 한순간에 누추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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