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도 비판적 지지론이 등장하는가
        2006년 05월 09일 08: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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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 7일 민주당 대표에 선임된 오자와 이치로

    지난 4월 7일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가 새로이 일본 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오자와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고이즈미 총리의 외교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취임 직후에는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A급 전범은 합사할 가치가 없다", "현 정권의 외교정책은 낙제다"라는 말까지 쏟아냈다. 우리 언론들은 오자와의 이런 발언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보도했다.

    오자와 대표의 취임 이후 민주당의 지지도는 약한 회복세로 반등했다. 비중있는 정치인인 오자와에 대한 기대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민주당의 하락세가 바닥을 쳤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만큼 민주당은 전임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 취임 이후 혼란을 거듭했다.

    창당 이후 줄곧 상승세를 유지하던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마흔이 갓 넘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당시 젊은 대표의 선출은 당내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를 통해 당이 혁신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자민당내 보수파보다도 더 보수적인 마에하라 대표는 평화헌법개정이나 자위대 파병 문제에서 민주당의 전통적인 리버럴 입장을 버리고 적극적인 우경화의 길을 선택했다. 당내에서는 여당인 자민당과 대립각을 세워도 모자란 판에 여당의 정책을 추종한다고 불만이 쌓여갔다. 지지율도 변함이 없었다.

    여기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비리연루와 거짓폭로 사건이 겹치면서 지도력을 상실한 마에하라 대표는 3월 31일 사퇴했다. 그리고 오자와 이치로 전 자유당 대표가 새 대표가 됐다.

    자민당과 차별성을 잃어버린 민주당

    오자와 대표는 자민당 출신의 정치인이다. 1969년 27살의 젊은 나이로 의원배지를 달았다. 그 이후 항상 정치무대의 중앙에 있었다. 지난 1993년 자민당 정권이 붕괴 할 때는 그의 막후 조정이 큰 힘이 됐다. 1998년 자유당을 결성했고, 2003년 총선거 직전 민주당과 통합해 민주당이 약진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민주당 안에서는 그리 두드러지는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옛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무엇보다 정책적 색깔이 민주당의 주류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오자와는 ‘보수 본류’를 자임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1993년에 쓴 베스트셀러 <일본개조계획>에서 개헌과 재무장을 통한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주장했다. 이런 입장에서 ‘반미’가 아닌 미국과 대등한 일본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고이즈미 총리 같은 신자유주의자들과의 차이는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 같은 전통적인 기업모델을 선호하고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정도다. 개헌문제와 같은 우익적 의제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런 그가 민주당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고, 아시아 중시의 외교정책을 주장하면서 여당과 대립각을 세우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특히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정책분야에서도 ‘시장만능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 정권을 비판했다.

    오자와의 파격적인 행보는 고이즈미에게 쏠려있는 대중의 이목을 민주당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4월 23일 취임 한달도 지나지 않아 치른 보궐선거에서는 무명의 20대 여성 후보를 내세워 관록있는 자민당 후보를 꺾었다. 언론들은 고이즈미의 독주에 드디어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이즈미와 대립각 세우는 오자와

    그의 이런 발언들은 ‘정치를 아는’ 오자와 대표의 노련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일본 언론은 이대로라면 오는 9월의 당대표 선거에서의 재선은 무난하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의 수권정당 이미지도 회복하면서 잃어버렸던 지지율도 회복할 것으로 전망 된다.

    오자와 민주당의 기사회생을 왼쪽에 있는 혁신정당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선 사민당은 오자와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성명을 내고 그의 대표 당선을 축하했다. 후쿠시마 미즈호福島みずほ 당수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에서 사민당은 양극화 해소와 개헌 저지를 위해 야당공투를 강화하고 싶다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당세의 격감 속에서 민주당과의 공동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민당으로서는 마에하라 대표 취임 후 소원해진 양당의 관계를 복원하고 향후 선거에서 사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몇몇 지역의 민주당 공천을 양보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사민당은 앞서 이야기한 23일의 보궐선거에서 당조직을 동원해 민주당 후보를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고이즈미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의 기대가 표출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에는 지금도 사민당의 전신인 일본사회당 출신 의원들이 큰 정파를 이루고 있으며 사민당과 민주당은 노동조합을 매개로 해 다양한 공동활동을 전개했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우경화가 진행되면서 지역 수준에서의 공동활동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사민당, 민주당과의 관계 개선에 기대

    이에 반해 일본공산당은 오자와 대표 아래의 민주당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민당과 마찬가지로 공산당도 전임 마에하라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과 자민당의 차이가 옅어지는 것을 당혹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오자와 등장 이후 공산당이 발행하는 일간지 <아카하타(赤旗)>의 논조를 보면 오자와 민주당이 자민당과의 정책 차이를 더 벌려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개헌문제와 관련해서는 보다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오자와 취임 후 바로 이어진 보궐선거에 공산당 후보도 출마했기 때문에 사민당처럼 민주당 응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선거를 의식한 자민당과 민주당 비판 기사가 지면을 채웠다.

    그렇다고 해서 공산당이 민주당에 대해 사민당보다 원칙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 지난 2003년 총선거를 앞두고 공산당은 선거후 민주당에 이탈리아 올리브연합과 같은 방식의 중도좌파연정 가능성을 타진했다. 민주당이 승리하더라도 과반에 미달하거나 연정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에 적은 의석수지만 공산당으로서는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공산당은 이런 제안을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언론을 통해 흘렸지만 당시 민주당의 간 나오토 대표는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버리기 전에는 공산당과 손잡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는 말로 거절했다. 민주당은 공산당과 협력해봐야 표만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공산당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공산당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위원장은 여전히 이런 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 전 대표 같은 민주당 내 시민파도 공산당에 부담을 느끼는데 오자와 같은 당내 보수파는 말할 것도 없다. 공산당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공산당, 중도좌파연합 구성에 대한 미련 남아

    사회당이 사민당으로 이름을 바꿀 때 이에 반대한 사회당좌파로 구성된 신사회당은 민주당에 대해 어떠한 기대도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4월 11일 발표한 성명에서 신사회당은 오자와 당수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의 재건은 환상”이라고 잘라 말한 후 “양당정치의 복원이란 신자유주의 경쟁의 복원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신사회당은 민주당이 06년도 예산안 심의에서 여당에 협력한 것을 두고 이같이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신사회당은 원외정당이다. 지방의회 수준에서는 당선자를 내지만 중앙정치 무대에서는 발언권이 없다.

    신좌익이라고 불리는 극좌파들의 입장도 정파마다 차이가 있다. 중핵파는 올해 발표한 메이데이 선언에서 오자와 대표와 일본최대 노총인 렝고의 다카키 츠요시 회장의 정치적 입장이 일치한다고 분석하고 민주당-렝고의 연합체제 분쇄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 4월 29일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렝고의 메이데이 대회
     

    오자와 대표는 지난 4월 29일 도쿄에서 열린 렝고의 메이데이 대회에 참석해 정권교체를 위한 아낌없는 지원을 부탁했다. 전임 마에하라 대표가 민주당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혔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다. 렝고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중핵파는 민주당에 대해 특별한 반대를 표명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노동운동 내 대표적인 우파로 개헌을 지지하는 다카키 회장과 오자와 대표의 밀월관계가 노동운동의 우경화를 가속시킬 것이라는 전망 아래 민주당을 자민당과 마찬가지의 타도대상으로 설정한 것이다.

    신좌익정파, 오자와 민주당은 타도의 대상

    최근 지방선거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일본노동당도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일본정치를 보수양당구도로 만들려던 재계가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 의석이 기형적으로 늘어나고 민주당이 참패하는 것을 보면서 놀란 나머지 민주당 재건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노동당은 “노동 계급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의 근본적인 전환을 목표로 싸워야 한다”며 그러나 “오자와 이치로 취임 이래, 무너져 가고 있던 민주당에의 환상이 일부 노동조합 간부 사이로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연이은 분열에 활동력이 급감한 혁마르파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고이즈미 정권 타도만을 반복하고 있다. 제4인터내셔널의 일본 지부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도 올해 메이데이 호소문에서 민주당에 대한 특별한 분석을 담지 않았다. 이는 ‘혁공동’이 앞의 정파들과 달리 정권 타도 보다 브라질노동자당과 같은 통합적 좌파정당의 건설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혁공동’ 구성원들이 각종 시민운동영역에서 민주당내 시민파와 공동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자와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삼가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의 공조 강화인가 독자적 생존 모색인가

    고이즈미 총리는 오자와가 새 대표에 선출되자 기자들에게 “(오자와가) 조만간 민주당의 옛 사회당 출신들을 몰아내고 자민당내 반대파를 흡수해 정계개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자와라는 마뜩치 않은 경쟁상대가 등장하자 민주당내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내뱉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자와가 민주당내 좌파와 불편한 사이인 것은 사실이다. 또 고이즈미의 전망에 동의를 나타낸 언론인들도 많다고 한다. 결국 지금은 오자와가 생존을 위해 고이즈미 정권과 날선 대립을 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주당의 우경화로 결론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하지만 사민당과 공산당 등 파편화된 혁신정당들은 ‘지금’의 오자와 민주당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신사회당을 필두로 한 원외좌파들은 민주당에 기대할 것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자민당과 50년간 대립하며 일본의 반쪽을 지켰던 혁신세력은 이제 한 보수야당의 종속변수가 돼버린 것이다. 이는 마치 한국 진보진영의 비판적 지지론과 독자적 정치세력화론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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