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통킹만 사건,
‘펜타곤 페이퍼’의 진실
[붉은오늘 사이드스토리] 베트남전
    2018년 08월 21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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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붉은오늘 사이드스토리’ 주제는 베트남전쟁을 촉발한 미국의 통킹만 사건 조작을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와 이를 다룬 영화 ‘더 포스트’의 이야기이다. 붉은오늘 관련 방송 링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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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의미하는 ‘스모킹 건(Smoking Gun)’과 어둠속의 제보자를 뜻하는‘ 딥 스로트(Deep Throat)’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유명해진 단어들이다.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불과 1년 전에 스모킹 건과 딥 스로트가 존재했다. 워터게이트의 딥 스로트가 40년 후에 정체가 밝혀진 반면에 이 사건의 딥 스로트는 그 정체가 탄로나 반역죄로 징역 115년 형을 선고받은 것이 차이점이었다.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 사건이었다.

1971년 6월 뉴욕타임즈에 실린 ‘펜타곤 페이퍼로 본 미국의 군사개입 확대과정 30년’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전 미국을 뒤흔들었다. 1964년 8월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가 북베트남 어뢰정에 의해 통킹 만에서 침몰한 것은 조작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미국 내 반전운동을 히피들의 하릴없는 짓거리로 생각했던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매독스는 구축함이 아니라 정보수집을 위한 소형함 데소토의 암호명이었다. 매독스는 침몰했지만 매독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을 승계한 부통령 린든 존슨은 민주당 내에서 왼쪽블록을 이끄는 대표주자였다. 예기치 못하게 대통령 자리에 오른 존슨은 베트남과 국제정세가 중요하지 않았다.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에 집중해야 했다. 민주당 좌파인 존슨은 베트남전쟁을 공세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미국이 북베트남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죽음의 게이트를 연 것은 국방장관인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였다.

우세한 화력으로 단기간에 베트남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존슨과 맥나라마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밀림에 익숙한 베트남군은 게릴라전으로 미군을 끊임없이 공격했고 사상자는 계속해서 늘어갔다. 이성을 잃은 미군들은 민간들을 학살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 내 여론은 계속해서 악화되기 시작했고 국내외에서 대규모 반전운동이 일어나면서 존슨은 궁지에 몰렸다. 진보주의자인 존슨은 ‘위대한 사회’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대적인 복지사회정책을 추진했지만 그의 지지율은 끝을 모르고 추락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존슨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은 본격화되기도 전에 군사개입 중단과 새로운 안보전략의 도입을 전면에 내세운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의 당선이 확실해질 정도였다. 민주당의 진보파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하면서 수만 명의 사상자를 가져왔고 공화당의 우파가 미군 철수를 주도하며 전쟁을 끝낸 아이러니한 소극(笑劇)이었다.

공화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것이 확실해지자 국방부장관 맥나라마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전모를 담은 기밀문서를 작성할 팀을 구성했다. 흔히 펜타곤(국방부) 페이퍼라고 불리는 ‘미국-베트남 관계, 1945-1967’는 3여년에 걸쳐 7,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작성됐다. 페이퍼는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손을 떼기 시작할 때, 즉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할 때부터가 아니라 일본이 패망한 직후부터 통킹만까지 23년간의 기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페이퍼에는 남베트남의 지도자 응오 딘 지엠에 대한 CIA 암살계획 묵인, 부정선거를 통해 사이공에 위성정권을 수립한 것,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북베트남을 선제공격한 후 의회결의안을 제출할 것 등 충격적인 내용들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전까지 제한전쟁 전략이었던 것을 대대적인 확대전쟁으로 전면 변경한 것은 존 F. 케네디라는 것과 통킹만 사건을 일으키기 훨씬 이전에 북베트남 직접공격 계획을 수립한 것은 린든 존슨이라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린든 존슨만이 아니라 존 F. 케네디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는 문서를 작성한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1971년 당시의 대니얼 앨스버그 모습

국방부 산하 연구소의 상임연구원인 대니얼 엘스버그(Daniel Ellsberg)는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참여한 인물 중에 한명이었다. 기밀문서의 작성에 포함될 정도로 검증된 반공주의자였던 대니얼 엘스버그는 3여년의 시간동안 베트남전쟁에 대한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면서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페이퍼 작성이 완료되고 미군의 베트남 철수가 본격화되자 반전운동도 사그라들자 진실이 영원히 묻힐 것을 두려워한 대니얼 엘스버그는 결단을 내렸다. 대니얼 엘스버그는 평소 안면이 있던 뉴욕타임즈의 닐 쉬한(Neil Sheehan)기자에게 펜타곤 페이퍼의 사본을 전달한 것이다. 뉴욕타임즈가 보스턴 글로브와 함께 양대 일간지라는 것도 감안한 선택이었다.

트루먼부터 린든 존슨까지 네 명의 대통령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내용을 폭로한 뉴욕타임즈의 여파는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어둠의 제보자 대니얼 엘스버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역자가 깨끗한 사람이어서는 곤란했다. CIA는 대니얼 엘스버그를 파렴치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불법도청과 침입을 서슴지 않았고 이런 사실이 폭로되면서 오히려 무죄로 석방되는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전쟁이 추악한 진실이라는 것을 알리는 스모킹 건은 바로 통킹만 사건이었다. 리처드 닉슨은 안보를 이유로 후속보도를 금지했고 뉴욕타임즈는 즉각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에 위배된다면서 대법원에 항고했다. 대법원은 뉴욕타임즈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버드대 출신인 벤자민 브래들리는 뉴햄프셔의 지역지에서 기자로 첫발을 시작했지만 몇 년 만에 워싱턴포스트지의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유능했다. 20여 년간 워싱턴포스트지에서만 잔뼈가 굵은 벤자민 브래들리는 편집장에 오르자 탁월하게 기자들을 조련하는 능력을 보였고 몇 년 만에 사세는 계속 커져나갔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사주가 회사에 개입하지 않은 것도 벤자민 브래들리에게는 호재였다. 뉴욕타임즈의 후속보도는 계속되었지만 추가로 사본을 입수한 워싱턴포스트지의 기획기사는 더 큰 반향을 불러왔다. 지역 유력일간지였던 워싱턴포스트지는 뉴욕타임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급성장했다. 펜타곤 페이퍼의 진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벤자민 브래들리가 어둠속의 제보자로부터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면서였다.

영화 ‘더 포스트’ 촬영 장면

뉴욕타임즈가 펜타곤 페이퍼를 특종으로 터트리자 워싱턴포스트의 벤자민 브래들리(톰 행크스) 편집장은 기자들을 닦달하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벤자민 브래들리는 어느 날 뉴욕타임즈의 선임기자인 닐 쉬한이 두 달 째 기사 한 줄 쓰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했다. 닐 쉬한이 그 기간 동안 쉬고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고기 덩어리를 물고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고 있다는 징표였다. 벤자민 브래들리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인턴을 뉴욕타임즈에 위장 침투시켜 동태를 파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인종과 여성차별이 일반적이던 시기에 워싱턴포스트지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캐서린 그레이엄의 취임은 전혀 예고된 것이 아니었다. 여성이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당연히 금기시되는 시대였고 부친인 유진 마이어스도 회사를 사위에게 물려주었다. 그런데 우울증에 시달리던 남편이 총기로 자살하면서 캐서린 그레이엄은 갑작스레 언론사의 사주에 올랐다. 편집국의 독립이라는 미명이 뒤따랐지만 캐서린 그레이엄은 회사에서 발언권이 없는 유령처럼 배제됐다. 사주라는 직위보다는 여성이라는 성별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캐서린 그레이엄이 어느 날 회사를 물려받은 무능한 여성은 아니었다. 벤자민 브래들 리가 편집장을 맡을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은 그녀의 뛰어난 눈썰미를 보여주는 신의 한 수였다.

워싱턴포스트가 뒤늦게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보도를 강행하자는 편집장과 기자들에 맞서 임원진과 변호사들은 사운이 걸린 문제라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마감원고를 손에 든 벤자민 브래들리가 생일파티를 하던 캐서린에게 담판을 짓는 전화를 걸었다. 샴페인 한잔을 마신 케서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잠자리에 들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더 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를 최초로 보도한 뉴욕타임즈가 아니라 워싱턴포스트를 전면으로 다뤘다.

벤자민 브래들리가 주도한 보도과정도 눈길을 끌었지만 여성 사주인 케서린의 결단도 작품의 소재로는 매력적이었다. 벤자민 브래들리가 워터게이트사건을 파헤쳐 퓰리쳐상을 수상하는 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것도 스티븐 스필버그가 워싱턴포스트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였다. 영화가 개봉되자 뉴욕타임즈 기자들은 스필버그 감독에게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2011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린든 B 존슨 도서관은 40년 만에 펜타곤 페이퍼 전문을 공개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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