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미 무역전쟁①
    패권국가 미국의 최후 공세
    [기고] 오마바 행정부부터 이어진 대중전략의 연장
        2018년 08월 20일 06: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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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세계 정치경제 등 국제정세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 중의 하나가 중미 간의 무역전쟁이다. 격화와 확전 양상을 보이던 양국의 경제 갈등이 최근 협상으로 전환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중미 무역전쟁은 경제 화약고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중미 무역전쟁을 분석하는 ‘패권국가 미국의 최후 공세’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기고 글을 김정호 씨가 보내왔다. 두 번 정도로 나눠도 제법 긴 분량이지만 더 나누지 않고 2회에 게재한다. 관심과 의견을 부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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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0. 들어가며
    1.중미 무역전쟁 전면화의 필연성
    2. 트럼프라는 ‘우연적 요소’
    3.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4.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
    5. 역사적 의의

    0. 들어가며

    한국의 보수세력에게 요즈음 신나는 일들이 하나 둘씩 벌어지고 있다. 경제가 날로 악화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인데, 이 때문에 재벌에 손을 벌리는 등 과거 역대 정권에서 수차례 되풀이되었던 시나리오가 다시 재현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신나는 일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로부터 장차 중미관계의 악화와, 군사와 경제면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여전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중국의 기를 꺾어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보기에 지금 너무 빨리 진행되는 한반도의 긴장완화 속도를 늦추게 하고, 과거의 남북 대립구도를 어느 정도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지금 G2인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은 한반도를 비롯한 향후 국제질서에 있어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미국은 현재 중국만이 아니고 유럽연합과 일본 등 거의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전을 벌이고 있지만, 그러나 그 주요한 전장은 엄연히 중국이다. 때문에 우리는 작금의 국제정세를 우선 중미 간의 무역전을 중심으로 바라보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다른 나라와의 무역전을 감안하는 것이 올바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1. 중미 무역전쟁 전면화의 필연성

    (1) 전통적인 대중국 억제전략의 한 단계 발전

    먼저 전면적인 중미 무역전이 지금 와서 왜 발발하였으며, 그 필연성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중미 무역전은 트럼프 정부 들어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기보다는, 그전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이어져온 대중전략 발전의 연장선상에서 그 연유를 찾아보아야 한다. 물론 미국의 대중 전략은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간다면 1949년 신중국 성립 시기로까지 이어져야 하겠지만, 그러나 논의의 집중을 위해선 우선 오바마 시기와의 연관성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볼 때 현재의 무역전은 오바마 시기 본격화한 ‘아시아 회귀전략’으로 대표되는 대중국 억제전략의 연장이자, 그 새로운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치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이 해방 이후 남북 전역에서 전개된 지주 및 친일반동세력과 기층민중 및 혁신세력 간의 크고 작은 대립과 충돌의 전면화이듯이, 그간 공식 비공식적으로 진행되어 온 중미 간의 제 측면에서의 대결이 ‘무역전쟁’이라는 형식으로 공개화하고 전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핵무기의 존재 때문에 강대국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전면화할 수 없는 조건에서, 이렇듯 거의 전 산업에 걸친 대규모의 ‘전면적 무역전’은 전쟁을 제외한 강대국 간 갈등의 최고 표현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이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미 대립의 현 단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환구시보> 2018년 4월 6일자 사설은 ‘세계대전급 중미 무역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필자가 보기엔 매우 적합하게 생각된다.

    이처럼 지금의 중미 무역전은 그간 중미 간 대립갈등의 발전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는데,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회귀전략’ 이후부터 살펴보자면 당시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대리전적 갈등’을 제1단계라 부를 수 있다. 그것은 미국이 필리핀을 앞세우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역내 관련국들의 권리주장을 적극 부추기면서 그 배후에서 미국·일본·호주가 지원하는 형국이었다.

    이 단계는 필리핀 정부의 국제중재법원에의 제소가 승소판결을 받은 2016년 7월에 최고점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후 점차 기세가 누그러지면서, 특히 당해 말 실시된 필리핀 대선에서 아키노 정부를 잇는 친미파가 정권을 상실하고 현재의 비교적 자주적이며 친중국 성향의 두테르테 신정부가 탄생함으로써 ,이 단계에 있어 미국의 전략은 거의 실패로 끝났다.

    물론 이 단계에서도 미국이 남중국해 카드 하나만 단독적으로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5년 위안화 위기와 중국 주식시장 대폭락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당시에도 보이지 않는 미중 간의 치열한 금융전쟁이 존재하였다. 이렇듯 G2라 불리는 중미 간 대결은 전 영역으로 확장된 지 이미 오래이며, 다만 특정 시기 발발하는 주요 형태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2015년 중미 간 금융전쟁에 관해선 이후 다시 언급)

    남중국해 카드가 실패로 끝나면서, 미국은 할 수 없이 새로운 전장을 물색하게 된다. 그 경우 지금 미국에게 남겨진 것은 ‘대만’과 ‘무역전쟁’ 두 개의 카드이며, 그중 대만 카드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후 과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미국 의회가 대만에 대한 미국 고위관리의 정기적인 방문 결의를 통과시킨 것이라든지, 미군 장비의 대만시설 이용에 대한 승인 등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대만 카드는 자칫 중미관계의 근저를 뒤흔들면서 진짜 ‘전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위험한 카드이다. 예컨대, 대만 독립파인 현 민진당 정부가 미국의 지원을 믿고 독립을 선언할 경우, 중국은 ‘반국가분열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대만을 무력통일하게 되어 있다. 그럴 경우 미국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지게 된다. 대만 독립파를 지원하자니 그것은 곧 중국과의 정면 무력충돌을 의미하게 되고 세계 3차 대전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고 중국에 의해 대만이 무력통일 되는 것을 수수방관한다면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된다. 그 때문에 트럼프 정부로서도 대만 카드에 대해선 아직까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무역전쟁’이 중미 대결의 제2단계 주요형식이 될 수밖에 없다.

    (2) 폭발직전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중미 무역전쟁 필연성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선, 우리의 시선을 그 촉발자인 미국 내부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지금 중미 간 무역전쟁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로부터 중미 간 대결이 지금 단계에서 ‘무역전쟁’이라는 형식을 빌려 표출될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설명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파생되는 다른 문제들, 예컨대 미국이 자신의 동맹국으로까지 무역전을 확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미국의 경우 깊은 내적 연관을 갖고 있는데, 이 같은 상호연관을 이해하기 위해선 다소간 경제학적 지식이 요구된다. 이들은 ‘쌍둥이 적자’로 일컬어지는 대단히 미국적인 현상으로서, 1980년대 중반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본질은 ‘국내저축 부족’과 이에 따른 ‘산업공동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같은 경제학적 해석은 일반인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과 같은 세계 최강의 부자나라에서 산업부문에 투자할 국내저축이 부족하다는 말은 얼핏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같은 현상은 패권국가인 미국이 자신의 국내 자원을 국방부문에 지나치게 쏟아 붓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금도 미국은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하면서 세계 다른 모든 국가들의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또 선진국으로서 복지부문에 지출해야 할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이 같은 과도한 지출이 수십 년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누적된 결과이며, 지금에 와선 이미 GDP의 130%에 육박하고 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진작 파산선고를 해야 할 수준인 것이다.

    (표1) 미국 정부 부채비율 (단위: % of GDP)

    년도 2001 2005 2007 2008 2009 2010 2011 2015 2016
    부채비율 63.9 78.5 77.1 93.1 106.5 116.9 122.5 125.8 127.6

    출처: 한국 국가통계포털 (KOSIS)

    위 표1을 보면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9년을 전후로 하여 미국의 재정적자가 특히 악화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미국이 이무렵 소위 ‘양화(양적완화)정책’을 썼던 것과 무관하지 않는데, 미국은 당시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거의 무제한 적인 통화 공급을 실시하였으며, 그것은 또한 막대한 재정적자를 동반하는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정적자의 천문학적인 누적에 따라 미국 재무부가 그 이자를 지불하는 것만도 매우 힘겨운 일이 되고 있다. 현재 총 21조3000억 달러(한화 약 2경4026조원)에 달하는 미국의 국가부채는, 최근 미국 국채금리 3%의 이자율을 적용할 경우 이자비용만 하더라도 년 간 6000억 달러가 넘는다. 2009년~2017년 8년간의 미국 연평균 국민총생산(GDP) 증가액이 6216억 달러였음을 감안할 때, 그것은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갚는데 고스란히 써야 간신히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임을 뜻한다. 그런데 이 부채규모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미국인은 정상대로라면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존 자산(부동산, 주식, 산업설비 등)을 하나씩 둘씩 팔아치워야만 할 실정이다.

    여기서 우리는 ‘쌍둥이 적자’ 즉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중 그 발단이 ‘재정적자’임을 알 수 있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미국 정부가 달러를 마구 발행하고, 그 다음에 증가된 달러를 가지고 국내의 공급부족에 따른 물품 결핍을 해외수입을 통해 메우다 보니 무역적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세계 기축화폐 즉 달러를 가진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다른 나라 같으면 재정적자가 발생할 경우 긴축을 할 수밖에 없으며 함부로 지폐를 찍어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늘어난 국내 통화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자국 경제를 더욱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그간 이 같은 쌍둥이 적자는 미국 역대 정부 하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누적되어 왔는데, 이제 새로이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미 의회는 지난해 12월 법인세를 현행 35%에서 20%로 낮추고 이와 함께 개인소득세도 낮추는 대폭적인 감세정책을 감행하였다. 이렇듯 세금이 줄어들면 재정지출을 줄여야 마땅한데, 2018년 국방비는 전년 대비 107억 달러 늘어난 6030억 달러이었으며, 내년도(2019년) 책정된 국방예산은 6860억 달러로 13.8%나 증가한 규모이다.

    이 경우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 하반기 미 재무부의 국채 발행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63% 늘어난 7690억 달러(약 867조 432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많은 물량이 시장에 공급되다 보니 최근 미국 국채 가격이 하락해서, 재무부의 국채입찰 확대 발표 후의 10년 만기 미국 국채수익률은 6월 13일 이후 처음 3%를 넘어섰다. 미국 경제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세수를 늘려 재정적자를 낮추는 데 충분한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규모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 실정이 이러할 진대, 이에 따라 무역적자 문제 역시도 전혀 호전되지 못하는 상황임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래 표2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은 해마다 무역수지에 있어 적자를 보고 있으며, 그 규모도 7천억~8천억 불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2) 미국의 무역수지 (단위: 억 달러)

    년도 2001 2005 2010 2012 2014 2015 2016
    무역적자 4501 8340 6907 7908 7892 7436 7964

    출처: 한국 국가통계포털 (KOSIS)

    어떻든 겉으로는 ‘무역적자’ 문제로 표출되는 ‘국내저축 부족’ 문제는, 다음 두 가지 방향에서 보다 직접적인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즉 세수부족과 산업공동화에 따른 고용문제가 그것이다.

    우선, ‘세수부족’은 재정적자로부터 직접 파생되는 문제인데, 그것은 현재의 행정부를 직접적으로 압박하게 된다. 미국 의회는 행정부의 무절제한 예산 확장을 제한하기 위해 재정적자의 폭을 제한해 놓고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와 오바마 정부 때도 이 같은 제한에 걸려 의회의 예산승인이 한참 늦어지는 바람에 한동안 행정 권력의 공백상태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뻔한 적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트럼프 정부의 사상최대의 ‘감세’로 당장 예산에 있어 수지균형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중국의 언론매체는 처음 트럼프 정부의 무리한 무역전쟁이 이 같은 세수 결핍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였다. 미국은 어쨌거나 근래 들어 그 성장 폭이 더욱 가팔라진 재정적자와 세수부족에 대해 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그것은 금번 무역전쟁의 강력한 직접적인 추동력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고용문제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한 발 앞서 산업고도화를 달성함으로써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제3차 산업부문의 비중이 높고, 또 일부 첨단제조업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밖의 분야에 있어 ‘산업공동화’가 진행됨에 따라, 정작 일반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할 수 있는 노동집약적 산업을 포함한 많은 전통 제조업 분야가 취약한 약점을 갖고 있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국내저축 부족‘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고용효과가 높은 자동차분야에 있어서도 국내 기업들의 해외공장 설립으로 인해 생각만큼 필요한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대로 일자리를 얻지 못한 기층 대중들의 불만이 높으며, 이는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미국 사회불안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이 같은 대중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등장하였는데,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고 차기 재선을 노리고 있는 그로선 어떻게든 이 문제에 대해 내세울 만한 업적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이다. 최소한 대중들의 일자리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데, 그를 위한 좋은 소재가 바로 타국과의 무역 분쟁을 이슈화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거대한 무역적자가 바로 중국을 비롯한 몇몇 흑자국가들의 탓이라고 그 책임을 전가시키는 한편, 그들로부터 수입을 규제함으로써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낡은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트럼프라는 ‘우연적 요소’

    이상 열거한 두 가지 필연적 요인은 지금 중미 간에 전면적인 무역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상당 정도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이것으로 분석 작업을 끝내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자세히 뜯어보면 이들 두 요인 사이에는 상호 모순되는 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간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세계 각국의 개방화를 요구하면서 지구화시대의 경제일체화를 선도하여 왔다. 냉전시기 설립되었던 GATT는 이에 발맞추어 자유무역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WTO로 확대 개편되었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이끌어 왔기에 미국은 탈냉전 이후의 지구화시대에 있어서 오늘날까지 패권국가로서의 지위와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앞서 두 번째 요인은 사실상 미국에게 ‘보호무역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비록 유일패권을 노리는 미국에 있어 대중국 억지전략이 매우 시급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중국을 억지하기 위해 그간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면서까지 지구화시대에 역행하는 보호무역주의를 내거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다. 미국은 이 때문에 지금 도덕적 명분의 상실과 함께 자신이 직접 구축한 국제경제 질서를 파괴한다는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전통적인 동맹국들과도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다. 이 같은 모순을 어떻게 비켜갈 수 있을까?

    그럴 때 워싱턴 정가의 정통노선과는 다소 이질적인 트럼프의 등장이 얼마간 이 같은 모순을 완화시켜 줄 수 있다. 이 경우 트럼프는 하나의 완전히 ‘우연적’인 사건으로 간주되며, 미국 전략의 내적 모순에 대한 일종의 절충적 해결방안으로 치부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 자신부터가 우선 매우 모순적인 존재인데, 그가 이끄는 행정부는 얼핏 보아도 상호 충돌하는 정책으로 가득 차 있다.

    한편에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국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동맹국들과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같은 포퓰리즘적 국수주의 정책을 미국 내에선 ‘신고립주의’라고 부르는데,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최근 오바마 정부가 어렵사리 성사시킨 이란과의 협정을 파기하면서까지 중동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강력한 미국’ 노선의 관철을 위해 군비를 대폭 증강하는 정책과 함께, 트럼프 정부가 여전히 세계 패권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 목표 간의 충돌도 눈에 띤다. 눈앞에 닥친 중간선거와 앞으로의 재선을 의식해 세기적인 북미회담에 응함으로써 북핵문제에 있어 뭔가 획기적인 타협안을 내놓을 가능성을 비춰 주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새롭게 내세우면서, 대중국 포위망 구축과 관련한 장기적인 포석 역시도 두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트럼프의 돌출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개성’은 기존의 모든 공식과 상식을 깨트리기에 충분하며, 워싱턴의 정통엘리트들을 한편에선 골치 아프게 만들면서도, 다른 한편 그의 ‘파격’과 ‘돌발성’은 미국의 전략 목표 사이의 모순성을 은폐하는데 있어 아주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한다. 예컨대 전 세계인들이 그를 ‘미치광이’로 바라보면서 ‘트럼프니깐’ 하는 예외 규정을 인정하는 순간, 트럼프의 정책은 마치 미국 사회의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현상으로 치부되게끔 된다. 미국의 정통 보수 전략가들 역시도 슬쩍 이 같은 “예외성‘에 편승함으로써, ’보호무역‘ 이라는 낡은 형식을 통해 지구화시대의 패권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지금 시기 ‘무역전쟁’은 이 같은 절충적 통일을 위한 좋은 형식일 수 있다. 국내적으로 재정적자와 일자리창출 문제에 부딪쳤을 때, ‘무역적자’ 문제는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에 있어서는 좋은 돌파구가 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1970년대 초 닉슨 정부가 처음 정책무기로 삼았었는데, 그 후 그것은 중요한 고비 때마다 사실상 미국의 중요한 외교정책 수단이 되었다. 닉슨정부는 당시 대미 흑자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을 압박하여 달러와 금의 ‘불태환’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성사시키는데 무역적자 문제를 활용하였다. 이처럼 타국과의 무역 분쟁의 이슈화를 통해 미국 정책엘리트들은 실업자나 빈곤층의 불만을 외부 탓으로 돌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전략적 경쟁상대를 꺾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는 그 타켓이 일본에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중국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중미 간 무역전쟁에 있어 이처럼 ‘공격무기’로 바뀐 미국의 ‘무역적자’의 성질은, 미국이 단순히 과거나 현재의 양국 간 무역불균형의 시정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관련된 ‘첨단과학기술’ 관련한 사항을 요구사항에 포함시킨 데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즉 미국은 중국 제품에 대한 보호무역관세 부과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중국의 제4차 산업혁명 전략에 대한 견제와 억제의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중미 간 무역 전쟁을 단순히 ‘무역수지 균형의 회복’ 이라는 경제적 차원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대중국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이번 중미 간 무역전쟁은 기존의 대중국 억제전략의 한 단계 발전이자 ‘쌍둥이 적자’의 누적이라는 필연성의 작용과 함께, 새로 등장한 트럼프 정부의 독자적인 경제 및 정치 정책이라는 우연적 요소가 결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무역전의 촉발자인 미국 내의 이 양 측면을 대표하는 주체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에 대해 우리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대중국 억제전략은 주로 네오콘으로 불리는 미국 신보수 노선을 견지하는 세력에 의해 대변되는데, 이들은 한편에선 트럼프의 단기적 성향의 보호무역정책에 편승하여 가급적 그것을 자신들의 대중국 억제정책에 집중시키려 한다. 다른 한편 그들은 트럼프의 反정통적 독자노선과 곳곳에서 충돌하면서, 심지어는 현 트럼프 정부의 실패를 바라기도 한다. 이리하여 이번 무역전쟁은 애초 정통주의자들이 원했던 바와는 달리, 미국이 마치 혼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 양상으로 변모하는 등 매우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중미 쌍방의 겉으로 드러난 무역수지 내역만 보면 미국이 금번 무역전쟁에서 유리할 것 같다. 왜냐하면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5,020억 달러인데, 그중 절반이 훨씬 넘는 3500억 달러가 대중 무역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 이 같은 거대한 대중 무역적자를 등에 업고 중국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 내막을 보면 겉보기와는 다른 속사정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도이치뱅크가 3월 27일 발표한 중미무역 관련한 보고에 따르면, 2015년 GM, 애플 등 미국 기업의 중국 자회사에서의 생산판매액은 2230억 달러이며, 이 막대한 수치는 중미무역에는 계산되지 않았다. 미국 기업의 대중국 수출에다 이 같은 자회사의 판매액을 합칠 경우 3730억 달러가 된다. 중국 기업이 미국에 판매한 총 액수는 4030억 달러인데, 그렇게 되면 미국 측의 적자는 단지 300억 달러일 뿐이다. 이는 워싱턴이 통계한 당해 3600여억 달러 대중 무역적자와는 큰 차이가 난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중국경제가 지구적 산업가치사슬에 있어 중하단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국제 분업구조 하에서 일본과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조립한 후 미국에 수출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상의 일·한의 부분적인 대미 수출을 미국은 모두 중국의 대미 수출에 포함시켰다. 또 중국 내지에서 홍콩을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을 미국이 모두 중국의 대미 수출로 계산하지만, 미국의 대중 수출에는 홍콩에 대한 수출부분을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

    이 밖에도 통상 미국의 대중 적자는 단지 양국 간 상품무역에 관한 것에 국한되며 서비스부문은 포함하지 않는다. 그런데 서비스무역에 있어서는 미국이 흑자이며, 이 흑자 규모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중국의 대미 서비스무역적자는 67.7억 달러에서 556.9억 달러로 증가하였는데, 매년 증가폭이 52.4%에 달한다. 이렇게 볼 때 만약 상품과 서비스 무역 전체를 포함한 중미 간의 무역수지를 계산한다면 양국은 대체로 균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향후 두 나라 간 무역전쟁의 승패를 결정짓게 될 요인들을 하나씩 점검해 보도록 하자. (계속)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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